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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편지 병원에서 신경숙

일 년에 몇 번, 시골에 사시는 아버지께서 건강 체크를 받기 위해 홀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오시곤 한다. 아버지의 건강관련에 대한 서울행은 대체로 병원 근처에 살고 있는 셋째오빠네가 맡아 살피는데 셋째오빠는 가끔 내게 ‘아버지 상경. 2시 검진.’ 이런 짧은 문자를 보내온다. 그런 문자를 받으면 나도 시간이 될 때 가끔 병원으로 가거나 병원에서의 일을 마치고 셋째오빠네에 머물고 있는 아버지를 뵈러갈 때가 있다.

일찍부터 앓아온 지병을 제외하고도 연세와 함께 신체의 다른 기관들이 악화되어 어느 해는 관절수술, 어느 해는 허리 수술… 이런 상황이다. 이삼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있는 부분은 혈관 쪽이다. 병원에서는 좁아진 혈관을 넓히는 시술을 권하는데 아무리 시술이라고 해도 마취를 해야한다 해서 팔순을 넘긴 아버지께 그게 이로울지 확신이 없어 가족들은 약물치료 쪽의 선택을 해왔다.

혈관을 다시 체크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서울에 오신 날 셋째오빠로부터 ‘아버지 상경’이란 문자를 받고 오후 2시 무렵에 셋째올케가 아버지를 살피고 있는 병원 대기실로 찾아갔다. 의사 면담을 위해 올케와 아버지가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늘 웃는 얼굴인 셋째올케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반가워했고, 아버지는 기력이 달리시는지 목이 꺾일 정도로 수그리고 졸고 계셨다.

아버지 옆자리 대기실 의자에 앉아 아버지 손을 내 손바닥 위로 가져와 꾹꾹 눌러보고 깎지를 껴보고 하다가 호출을 받고 함께 의사를 면담하러 들어간 자리에서 아버지의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뇌혈관들을 모니터로 같이 들여다보는 일은 막막했다. 좋은 약이 많아진 세상이라고 하는데도 그 좋은 약들도 아버지 혈관이 좁아지고 있는 것은 막지 못해 지난번 체크할 때보다 좀 더 나쁜 쪽으로 진행되었고, 이런 경우 2년 안에 뇌졸중이 올 수 있는 확률 또한 높아진다는 얘기를 듣는 일은 더 막막했다. 뭘 잘못한 아이처럼 그저 손등만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의사 앞의 늙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일도.
그동안 아버지 병원 다니는 일을 쭉 체크해오던 올케의 질문과 의사의 답변을 듣고 다른 체크를 위해 병동을 옮겨 다시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아버지께서 화장실에 가시려고 일어나셨다. 시력이 나빠져 눈을 찡그리며 화장실 표시를 겨우 찾아 아버지를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게 안내한 뒤 벽에 기대선 채 아버지께서 나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무 살은 되어 보이는 장애우 모자가 무엇을 찾는지 두리번거리며 앞으로 지나가는가 싶더니 곧 장애우 남자 혼자 더딘 걸음으로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내가 기대고 있는 벽 바로 옆이 장애우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이라는 걸 그가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야 알았다. 쾌적하고 넓은 화장실이었다. 장애우들이 드나들기 쉽게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문제는 들어가서 문이 닫히는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그는 그걸 몰랐던가 보았다. 문을 닫지 않아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무심코 안을 들여다보게 되면 얼마간 민망한 구조였다.

분명 문을 닫는 방법이 있을 텐데 싶어 벽을 살펴보다가 클로즈 버튼을 발견했고 손가락으로 눌렀더니 스스로 문이 닫혔다. 조금 있으니 장애우 어머니가 두리번거리며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화장실을 가리키며 아들이 이 안에 있다고 말하며 오픈 버튼을 눌러주었다. 아들이 그 안에 있는 걸 확인하더니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어머니도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버튼을 눌러주니 문이 닫혔다. 그러는 사이에도 아버지가 나오질 않으셨다. 안으로 들어가볼 수도 없는 처지라 복도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사이에 나이든 할머니가 남자화장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거기 아니에요, 이쪽이에요, 할머니를 여자화장실 쪽으로 안내하게 되었다.

조금 후에는 슬리퍼를 끌고 퍼머 머리의 까칠해 보이는 중년여인이 벽을 의지해 걸어왔다. 힘들어 보여 도와드릴까요? 물으니 목이 마르다고 했다. 마침 내가 아버지 마시게 하려고 생강차를 타 보온병에 넣어가지고 온 걸 들고 있어서 이거라도 좀 드시겠냐?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보온병 뚜껑에 따라 드렸더니 호호 불어 뜨거운 기를 가시게 하면서 입을 축였다. 한 잔을 다 마시더니 보온병 뚜껑을 돌려주며 두 달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이렇게 되었다고 답답해죽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두 다리로 가고 싶은데 다 갈 수 있었을 때는 걷지 못하는 게 이렇게 불편한 일인 줄 몰랐다고.
뭐라 할 말이 없어 네네… 그러시군요, 하는데 이번엔 장애우 모자가 안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필시 안에도 오픈 버튼이 있을 것인데 못 찾은 모양이었다. 다시 바깥 벽에 붙어있는 오픈 버튼을 눌러주었다.

그들이 대기실로 걸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화장실을 못 찾아 헤매는 나이든 분을 여기에요, 몇 번 더 안내하고… 생강차로 목을 축인 분이 일을 보고 나와서 부축해주고…도 얼마나 지나서야 아버지가 나오셨다.

“왜 이리 늦게 나오셔요?”

아버지는 대답할 맞춤한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웃으시고는 올케가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빈 보온병을 가방에 넣고 아버지 팔을 잡고서 방금 내가 뜻하지 않게 도우미 역할을 하던 곳을 돌아보니 이번엔 어떤 청년이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을 부축해 화장실 안에 들여보내고는 기다리느라 벽에 등을 기대는가 싶더니 지팡이에 의지해 화장실 쪽으로 걸어오다가 한순간 미끄러지려고 하는 노인을 얼른 부축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모르는 청년 때문에 빙긋이 웃었다.

그저 그런 일상에 사는 게 뭐 이리 시원한 꼴이 없담? 싶다가도 병원에 가보면 그제나 어제나 늘 비슷한 일상이 기실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확인하곤 한다. 가족 중 누군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그날로부터 어깨고 마음이고 무거워지고 잠도 일도 비상시국처럼 위태로워진다. 그런 날이 길어지면 그저 별 탈 없이 아침에 일어나고 낮에 일하고 밤에 잠자리에 드는 단순한 일상이 그리울 지경이 되기도 한다.

늘 비슷한 날들이라 해도 어느 날 득 누군가의 친절을 받게 되거나 예기치 않았던 일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 자신도 모르게 밝게 웃게 되는 그런 순간…들 때문에 아는 사람들한테 폐는 안 되게, 가능하면 좋은 영향 끼치며 살아봐야지, 싶은 의지가 생기는 것이 우리 삶이기도 할 것이다.

※ 신경숙 : 소설가.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우화’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 시작.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방>, <엄마를 부탁해> 등 출간.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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