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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향기가 안내하는 세상 광활한 우주를 여행하다 박미경




도시의 눈은 진즉에 자취를 감췄건만, 이곳의 눈은 곳곳에 남아 있다. 성질 급한 첫눈이 벼락처럼 다녀간 지 사흘째. 쌓일 틈 없이 녹아버려 원 없이 누리지 못했던 눈에 아이들은 금세 마음을 빼앗긴다. 응달에 쌓인 눈을 한 움큼씩 집어 들고 서로에게 뿌리며 노는 여섯 아이들. 어찌 눈뿐일까. 도시의 눈이 쉬이 쌓이지 않듯 도시의 별은 쉬이 빛나지 않는다. 쉽게 만날 수 없던 것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 원미(8), 운비(12), 수병이(10), 성재(11), 하늘이(12), 종민이(12). 호기심 가득한 열두 개의 눈이 수천 개의 별처럼 빛난다.

하늘 가까이로 간 개구쟁이들 
해발 450m, 장흥유원지 내 계명산 자락에 송암천문대는 있다. 한일철강 엄춘보 회장이 사재를 털어 세운 국내 첫 민간천문대. 구순을 앞둔 노회장이 미래의 우주개척자를 길러내기 위해 만든, 어린이들이 ‘주인’인 곳이다.

산이 토해내는 공기가 맑은 대신 차다. 느티나무공부방이 있는 의정부에서 이곳까지는 차로 불과 20여 분 거리지만, 하늘이 먼 그곳과 하늘이 가까운 이곳은 공기가 사뭇 다르다. 날씨에 비해 입고 온 옷들이 얇은 건 아닐까 싶은데, 아이들은 정작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들이다. 하긴, 변변한 외투 하나 없이 온종일 얼음판을 지치면서도 신나기만 하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겨울추위가 견디기 힘들어지는 때, 어른이 되는 건 그 때부터인지도 모른다. 

영화 상영시간이 다 됐다. 건물 안팎을 오가며 정신없이 뛰어놀던 녀석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한 줄로 선다. ‘스페이스센터’ 안에 있는 ‘디지털 플라네타리움’. 반구형 스크린이 천장을 가득 메운 이색영화관이다.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벌러덩’ 누워야 하늘을, 아니 스크린을 볼 수 있는 곳. “와~.” 아이들의 입에서 일제히 탄성이 새어나온다. 이내 불이 꺼지고, 진짜와 똑같은 밤하늘이 화면을 수놓는다. 입체영상인 까닭에 자신이 직접 하늘을 나는 듯한 착각은 기본. 재미있다며 점점 더 눈을 크게 뜨는 녀석도 있고, 어지럽다며 사이사이 눈을 감는 녀석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하늘을 나는 기분만큼은 만끽한 듯하다.

이제 ‘진짜 별’을 볼 차례. 천문대로 가려면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일명 ‘하늘의 계단’이라 불리는 케이블카에 오르자, 녀석들은 아까보다 더 신이 나있다. 희끗희끗 눈을 얹은 첩첩의 산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 계절 따라 날씨 따라 수천 번도 더 바뀔 그림에 모두들 넋을 빼앗긴다. “나 북한산 봤어.” “어디?”. “저~기.” 점점 더 작아지는 북한산을 수병이가 가리킨다. 하늘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북한산 인수봉뿐이 아니다. 도봉산 오봉이, 백운대가, 발밑으로 아스라이 건너다보인다. 방금 전 우리가 머물렀던 스페이스센터는 아이들의 주먹보다도 작아져 있다. 그곳을 떠나야 그곳이 보인다는 것을, 안에 있을 땐 굉장해보이던 것이 떨어져 바라보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녀석들도 알게 됐을까.

6분 만에 도착한 천문대 건물에는 통유리로 덮인 전망대가 있다. 귀염둥이 원미가 망원경으로 전망을 보려 하지만, 키가 작아 쉽지 않다. 어느 틈에 달려와 원미를 번쩍 안아주는 운비. 언니노릇을 톡톡히 한 운비가 이번에는 성재를 부른다. “성재야. 이 풍경 좀 봐봐. 너 케이블카에서 멀미하느라 하나도 못 봤잖아.” 누나노릇까지 마친 운비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뗀다.



오늘은 나도 우주비행사
주관측실인 뉴턴관으로 가니, 반구형 천장과 커다란 망원경이 있다. 스태프가 천장의 일부를 열자, 빠끔히 고개 내민 하늘. 대형망원경이 그쪽을 향해 움직인다. 순수 국내기술로 만들어진 이 망원경은 600mm급 리치크레티앙 방식의 반사망원경으로 낮에도 별을 볼 수 있는 주망원경이다.

“헌데 어떡하죠? 오늘은 날이 흐려서 뿌연 구름밖에 안 보일 거예요. 구름을 뚫는 망원경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망원경은 없어요.” 별을 볼 수 없다는 담당선생님의 말에 맥이 풀릴 법한데도, 녀석들은 그리 실망한 얼굴이 아니다. 한 줄로 서서,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뿌연 구름이나마 사이좋게 바라본다. “언니 봤어? 못 봤으면 이리 와.” 이번에는 원미가 운비를 챙긴다. 

보조관측실인 갈릴레오관에도 7대의 망원경이 있지만, 주망원경으로도 못 본 별이 보조망원경으로 보일 리 없다. 그렇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별을 볼 수는 없지만, 굴절망원경으로 사물이 거꾸로 가는 모습은 볼 수 있다. “와, 차가 뒤로 간다.” “어, 정말 그러네.” “또 보고 싶다.” 그 모습이 퍽 신기한지, 종민이와 하늘이와 수병이가 굴절망원경을 보고 또 본다.  

영상강의실에 들러 별에 관한 ‘별별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살짝 어둠이 내려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스페이스센터로 다시 내려오는 길. 산은 어둠 속으로 숨고, 건물은 빛 속으로 숨는다. 맑은 날이었다면, 지금쯤 별이 떠오를 것이다. 아쉬움이 커지기 전에, 시뮬레이션 우주여행 체험시설인 ‘챌린저 러닝센터’로 간다. 아이들이 직접 우주비행사가 되어보는 시간. 담당선생님의 설명이 시작되자, 멀미에서 회복된 성재가 눈을 반짝인다.

“1986년에 NASA(미항공우주국)에서 챌린저호를 쐈어요. 흥분된 마음으로 전 세계가 발사장면을 지켜보는데, 그만 발사한 지 1분 15초 만에 터져버렸죠. 그 때 폭발된 챌린저호 승무원을 기리기 위해 탑승자 가족들이 챌린저재단이란 걸 만들었어요. 지금 이 시설은 그 재단에서 만든 우주과학학습센터예요.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지에 있고, 아시아에는 여기밖에 없어요. 여러분은 지금 태양을 지나고 네 개의 위성을 건너 목성까지 갔다 돌아올 거예요. 자, 그럼 우주로 떠나볼까요? 10,9,8,7…2,1, 발사!”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광활한 우주를 돌고 돌아 모두들 안전하게 지구로 온다. 짧은 시간의 가상체험이었지만, 어떤 녀석은 지구를 닮은 어느 위성에 예쁜 집을 지을 꿈을 품었을지 모른다. 어떤 녀석은 외계인 친구와 한평생 마음을 나누는 소망을 품었을 수도 있고, 어떤 녀석은 광활한 우주 안에 한 점의 먼지처럼 존재하는 지구에서 겸손하게 살 것을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먼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눈 속에 별이 있다. 꿈이라는 이름의 별이, 열두 개의 눈 속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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