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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 만난 예술가 조화로운 삶으로 채우는 공간의 마술 김재영

※ 김원 약력 : 건축가. 1943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건축공학과 졸업, 네덜란드 바우센트룸 국제대학원 과정 수료. 서울 가르멜수녀원, 한강ㆍ세검정성당, 부산 몰운대성당, 대한성공회 대성당(증축), 국립국악원, 통일연수원, 주한 러시아대사관, 조정래 문학관, 서정주 시문학관 등 설계. <새천년의 환경 이야기>,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건축은 예술인가> 등 출간. 현재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한국건축가협회 명예이사, 한국 실내건축가협회 명예회장, 김수근 문화재단 이사장, 건국대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가톨릭 문화대상 건축상 등 수상.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니/ 한 칸은 청풍이요, 한 칸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송순의 ‘면암정가’ 중에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김원(70) 선생을 만나러 대학로에 갔다. 김수근 문화재단 이사장, 건국대 건축대학원 교수, 대한민국 건축대전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한 그는, 10년 전 ‘건축가의 환경선언’ 이래 환경을 지키는 건축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인권과 건축’ 포럼을 만들면서 평등, 소통, 배려를 기본으로 한 공간을 구현 중이다. 현재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및 도서출판 ‘광장’의 대표인 그는 2층에 연구소와 출판사를, 옥상과 연결된 3층에 개인 집무실을 두고 있다. 옥상 한쪽 끝에는 작고 아늑한 온돌방도 있었다.
“건축은 예술일까요?”
건축가 김원은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진다고 했다. 햇빛이 사선으로 내려앉은 고즈넉한 온돌방에서 나 역시 그 질문을 받았다.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고개를 드니, 유리문 너머로 작고 예쁜 잔디밭이 내다보였다. 키 작은 꽃나무들이 바람에 가만가만 흔들리는 풍경이 정겨웠다. 대학로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고민 끝에 “여러 건축가들이 예술이라 주장해왔고, 그 결과 일반인들도 건축을 예술이라고 인식하게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선생님 생각은 다른가요?”라고 되묻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특유의 초승달 모양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는 건축의 예술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죠. 그래서 건축가들이 예술가임을 자처했어요. 하나 요즘엔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잘못이 너무 많아요.”
소년처럼 밝은 미소를 보이던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건축은 최소한 ‘공공예술’이라고 해야지 그냥 예술이라고 하면 안 된다, 이거지요. 가령 조각과 같은 조형예술은 남이 좋아하건 말건 작가의 표현욕을 최대한 발휘하고 혼자서도 즐길 수 있어요. 하지만 건축은 달라요. 공공에 바쳐진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편리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며 좋아해야 하지요. 사람들이 그 구조물 속에 몸을 담고 생활하고, 부대끼고, 꿈을 키우기도 하는 곳이니까. 그런데 요즘 건축물은 예술이라는 안목만 가지고 외양에만 치중하면서, 내부는 불편하고 에너지 낭비는 심한 경우가 많지요. 더 이상 예술성만 주장할 때가 아니라고 봐요.”

비효율적으로 지어지는 공공건물
그는 유명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Fallingwater)’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폭포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건물의 아름다움은 사진작가와 관광객, 어설픈 평론가들에게는 ‘작품’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거기 사는 사람은 폭포의 소음과 물보라와 습기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았을 거라 했다. 미국인들은 과거 100년간 지어진 것 중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 칭송하지만, 정작 주인 카우프만은 불편함 때문에 주말에만 그 집을 이용하다가 결국 문화유산재단에 기증하고 말았으니, 과대평가된 사례가 아니겠냐면서.
“건축은 바깥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지어지기보다는, 내부에 아름다운 인간 생활을 채울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어야 해요. 건축가가 자신만의 ‘작품’임을 주장하거나 자신의 특정한 느낌을 감동으로 요구하지 않을 때, 그리고 채광, 통풍, 방습 등에 최선을 다해 건강함과 편안함이라는 보편 가치를 실현했을 때, 훌륭하다 할 수 있지요. 그 위에 다양한 느낌을 융통성 있게 표현하면 더욱 좋고요. ‘종묘’의 경우 의도적으로 아름답게 하려고 짓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서양 건축가들은 낮고 길기만 한 그 건물 앞에서 놀라고 경탄하지요. 왜일까요? 그 건물은 조상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하고 절제된 태도로 지었기에 독특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거예요.”
실제로 국립국악원, 독립기념관, 서울종합영화촬영소 등 수많은 그의 작품은 전통건축 사상에 기반하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완공된 서울 정동교회 역시 그의 소신을 잘 보여준다.
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은 1926년 영국의 종교 건축가 아서딕슨이 설계한 것인데, 반만 지어진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어느 날 성당을 완성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는데 순간, 강철과 유리로 된 현대식 건물을 덧붙여 자신의 감각을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아서 딕슨의 고향인 리버풀부터 찾아갔다.
“70년간 묻혀있던 원래의 도면을 찾아내어 마주하면서, 본래의 건축 의도를 최대한 잘 살리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어요. 저를 내세웠다면 칭찬, 혹은 비난을 받았겠지요. 하지만 원형대로 살려놓으니 모두들 아주 좋아했어요. 정동길이 간직한 1920년대도 그대로 되살아났고요.”
지자체 청사 등 요즘 신축되는 공공건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대뜸 경쟁적으로 ‘크기’를 키우는 경향을 나무랐다. 뿐만 아니라 통유리 등 에너지 비효율적인 소재로 지어져 혈세까지 낭비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정조대왕이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은 좋은 결과를 가져 온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좋은 뜻’으로 시작된 화성의 성역은 조선조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강건한 성채로 완성되었고, <화성성역의궤>라는 아름다운 준공 보고서로 남았지요. 이에 반해, 독일의 재능 있는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폐막식에서 ‘빛의 성당(Cathedral)’이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나치 전당대회장을 설계하여 감탄을 받았어요. 오늘날 그 전당대 회장인 제펠린펠트는 연합군의 파괴로 사라져 없어졌지요. 뜻이 좋지 않았기에 결과도 좋지 않았던 거예요. 요즘 공공건물의 문제는 전시행정, 이권, 건축가의 지나친 표현욕 등이 작용한 결과지요.”

“영구적인 건물 조성은 죄악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 조상들에게 ‘좋은 뜻’이란 대체로 순천적(順天的)인 것이었다. 건축은 늘 주변과 함께 존재했다. 터 잡기를 중요시하는 ‘풍수’는 생태사상이었다. 일례로 남향, 그리고 북에서 남으로 경사진 땅을 선호한 건 기본적으로 에너지 절감을 위한 것이었다. 자연을 조화롭게 끌어들여 겸손과 절제로 지은 건축물. 그것은 저절로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이게 되었다.
“우리 건축은 천지인 사상을 품고 있어요. 그래서 인문학적 접근으로만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 공간은 열려있어요. 비어 있으되 가득 찬, 내부와 외부가 하나로 연결된 공간. 어떤 기능도, 어떤 크기의 물체도, 어떤 인원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요.”
그는 송순의 ‘면암정가’라는 노래를 들려주고 나서 우리 건축이야기를 이어갔다.
“서양 건축은 돌의 건축이고 오래 남았어요. 그들은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았고,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자연을 희생해도 좋다는 그 생각은 물질지상주의를 거쳐 심한 생태계 파괴를 불러왔지요.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협소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인간과 자연, 인간과 만물을 근원적으로 동일하게 보았어요.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 두는 것처럼. 우리 건물은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졌어요. 돌을 써서 오래 남길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오래 남는 집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나무와 흙으로 된 건축물은 곧 소멸하여 자연으로 돌아가지요? 그러나 주춧돌만 남아 있으면 그 터에는 언제든 건물이 복원될 수 있어요. 우리 건축은 그 땅을 자연에서 빌리고, 집은 자연에 덧대어 짓는다는 개념에서 출발해요. 집 짓기는 기술이나 예술의 술(術)이 아니라, 우주적으로 삶을 이해하는 도(道)로 시행되었지요. 기본적으로 지구상에 돌이나 스테인리스스틸로 영구적인 건축물을 만들겠다는 생각과 행위는 죄악으로 여겨집니다.”
갑자기 어두운 미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콘크리트로 지은 아파트단지는 머지않아 슬럼화 되고 산업폐기물이 되어 처치 곤란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재건축이다, 재개발이다, 아파트 짓기에만 골몰하는 것은 왜인가? 우리에게 다른 대
안은 없는 걸까? 질문이 이어지자, 건축가는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지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시멘트 사용량은 ‘토건국가’로 알려진 일본의 두 배라며, 크기 경쟁과 서양식 주거문화 탓이라고 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근대건축의 표어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어요. 우리 건축은 기능이 달라질 때마다 다른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공간 스스로 변하지요. 이불을 펴면 침실, 밥상을 펴면 식당, 책상을 펴면 서재가 되어요. 최소 공간으로 모든 생활이 가능하니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이죠?”
그 때문일까. 김원이 출판한 ‘고건축 시리즈’에는 작고 허름한내설악 너와집도 들어있었다.

우리 고건축에 대한 관심과 애정
“조상님들은 장엄함이 요구되는 궁궐의 경우에도 하늘의 눈치를 보아가며 주변에 어울리는 건물, 인간적인 건물을 만들었어요. 우리 궁궐들이 지나친 위압감을 풍기지 않는 이유지요. 베르사유궁이나 자금성을 보고 ‘우리에게는 왜 그렇게 사치스런 궁궐이 없었을까’라고 부러워하는 것은, ‘왜 우리에게 그런 폭압정치가 없었을까’ 안타까워하는 것과 같아요. 고대 문헌에 왕이 궁을 크게 지으려 하면 신하들이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불치불누’, 즉‘사치하지 않고 누추하지 않으면 된다’라며 왕이 다른 중요한 일에 관심 갖기를 권했지요.”
노을 탓인지 자부심어린 그의 얼굴이 홍조를 띠었다. 우리 건축의 우수성에 대해 좀 더 묻자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화재 방지를 위해 팔만대장경을 콘크리트 건물로 옮겼는데 유지비만 많이 드는데다 곰팡이마저 생겼어요. 그러니 800년 동안 곰팡이 하나없이 완벽하게 대장경을 보존해온 해인사 경판각이 얼마나 대단해요!”라며 무릎을 쳤다.
우리 건축에 대한 그의 사랑에는 남다른 이유와 일화가 있었다. 젊은 날, 네덜란드 바우센트룸 국제대학원에서 유학했는데, 첫 날에 담당교수가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한국은 온돌이라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우수한 건축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여러분도 관심을 가지세요”라고 소개했다. 그때부터 우리 건축에 대해 더욱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우리 고건축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보여 왔다.
고 김수근 선생 밑에서 <공간> 잡지를 만들었던 김원은 나중에 광장출판사를 차려 ‘고건축 시리즈’를 냈다. 고 임홍식 사진작가와 함께 일곱 권을 만들었는데, 잘 팔리지 않아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결국 50권 시리즈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평생 아쉽게 생각해왔는데, 최근 그 책의 가치를 인정한 어느 기업인이 완간을 돕기로 했다며 좋아했다.
“우리 동요에는 달 속 계수나무를 베어다가 초가삼간 짓겠다는 내용이 있어요. 집을 작게 짓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우리 후손을 위한 미덕이에요”라고 말하는 건축가 김원. 요즘 그는 아파트 대신 세간에서 ‘땅콩집’이라 부르는 주거형태에 주목한다. 그리고 ‘땅콩밭’이란 마을 만들기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신적으로 고립되고 외로운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통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그의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은 곧은 마음과 강인한 신념이 눈부셨다.
문화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같다고 했다. 나는 우리 건축 사상과 문화가 더욱 발전하기를, 나아가 환경 위기를 맞은 인류를 구원하는 대안으로 자리 잡기를 기원했다. 생태건축가가 명상과 독서를 하는 온돌방 기운 탓일까. 혼잡한 대학로 거리를 걸으면서도 발걸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마음마저 따뜻하고 정갈해진 기분이었다.

※김재영: 1966년 경기도 여주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문학박사).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 받으며 데뷔. 소설집 <코끼리>, <폭식> 출간. 외국인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그린 단편 ‘코끼리’우리 고건축에 애정이 많고, 현실에서는 생태건축을 실현하려고 한다 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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