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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편지 쩌띤을 찾아서 방현석

나는 지난 계절에 아주 특별한 시장이야기를 담은 짧은 소설을 한 편 발표했다. 베트남어로 ‘쩌띤’은 우리말로 하면 사랑시장이다. 베트남 북부 산악지대에 사는 소수민족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쩌띤은 사랑을 거래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을 찾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상봉하는 만남의 광장이다. 쩌띤은 지역과 민족에 따라서 그 기원과 형식이 조금씩 다르다. 그렇지만 미혼의 남녀뿐만 아니라 기혼의 남녀도 이 시장이 열리는 하루는 자신의 옛사랑을 만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 인상적인 공통점이다.

외부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사파에서 열리는 사랑시장이고, 가장 오래된 기원을 자랑하는 것은 커우바이에서 열리는 사랑시장이다. 사파의 사랑시장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발표하고 나서 나는 한 다큐멘터리 제작팀과 최근에 베트남 북부 산악지대를 횡단하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소수민족들이 서로 만나는 시장과 전통적인 삶의 형식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 방문이 주요한 여정이었다.

여정의 시작은 사파였다. 사파가 사랑시장을 대표하는 도시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외부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다른 지역에 비해 외국인들이 많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을 지배했던 프랑스는 20세기 초부터 이곳을 휴양지로 삼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파는 아래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층계를 이루고 있는 산악지대와 유럽풍의 시가지가 어우러진 아주 이색적인 도시를 이루게 되었다. 험준한 산악지역에서 논밭을 일구며 사는 흐멍족과 자오족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의 거점이면서도 유럽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사파의 시가지에는 여전히 외국인들로 붐볐다. 토요일 저녁, 관광객들을 위한 공연형태의 사랑시장이 열리는 수련광장은 현지인과 외국인들로 성황을 이루었고, 밤이 깊도록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사파와 달리 외부세계에 노출되지 않고 이야기로만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 커우바이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사파에서 포장한 흔적만 남은 왕복 1차선의 국도를 따라 커우바이까지 가는 데 이틀이 걸렸다. 소수민족 시장으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박하와 메오박을 거쳐 커우바이에 들어섰을 때 마을은 온통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사파나 박하, 메오박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시장거리는 마치 자신을 신비화하려는 듯 짙은 비안개에 들어 있었다. 커우바이를 가장 큰 사랑 시장으로 인식시키는 것은 장터의 크기가 아니라 이야기의 크기와 울림이다.

애절한 사랑이야기의 주인공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신 사당이 있는 숲속 언덕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사당에 모셔진 할아버지의 이름은 ‘바’다. 바가 사랑했던 처녀의 아버지는 이웃마을 부족장의 딸이었다. 부족장은 딸이 가난한 이민족 청년과 맺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집을 나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살기로 하였다. 딸의 아버지는 이웃부족이 자신의 딸을 빼앗아갔다고 화가 치솟은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고 바의 마을로 쳐들어갔다. 두 부족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다. 이 상황을 산꼭대기에서 지켜보던 바와 부족장의 딸은 각자의 마을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자기들의 사랑으로 인해 더 이상 마을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헤어지면서 한 가지 약조를 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지지만 일 년에 한 번, 헤어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 그리고 다음 생에는 꼭 영원한 사랑의 연을 이루자. 그날이 3월 27일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헤어져 살며, 일 년에 한 번 그날이 되면 그 자리에서 만났다. 그러다 또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어느 해 그들은 함께 생을 마쳤다. 그러니 그 날도 3월 27일이었겠다. 사람들은 슬프고 간절한 이들의 사랑을 기려 사당을 만들고 해마다 3월 27일이면 제를 올렸다. 이날은 커우바이 인근에 사는 서로 다른 마을사람들이 모여 우애를 다지는 축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이날만큼은 누구라도 이루지 못한 사랑을 만나 하루를 보내는 것을 허용하였다.

커우바이의 사랑시장은 다른 지역과 달리 일 년에 단 한번 3월 27일에만 열린다. 정확하게 말하면 3월 26일부터 1박 2일로 열린다. 내가 커우바이에 간 날은 3월 27일이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거리도 사당도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 사당에 있는 향로에는 더 꽂을 틈이 없게, 타다만 향들로 빼곡했다. 사랑의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빌어야 할 이루지 못한 사랑이 아직도 그렇게 많은 모양이다.

커우바이에서 돌아오며 북부 산악지대의 작은 계단 논이 하도 신기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제일 꼭대기에 있는 작은 논 뙤기에는 벼 16포기가 심어져 있었다. 이 한 뙤기에서 농사를 지어 한 가족이 몇 끼나 해결할까. 곡괭이로 이 논을 일구고, 모를 내고, 해와 비의 도움을 받아 기르고, 추수를 할때까지 이곳 사람들이 흘린 땀이 떠올랐다. 외부인이 보기에는 아주 낭만적인 풍경인 계단식 논이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고단하고 절실한 삶의 터전인 것이다.

사랑시장도 외부인이 보면 아주 낭만적이거나 자유분방한, 어떤 측면에서는 비윤리적인 문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아주 현실적인 문화의 한 형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마을의 제사장이 다른 마을의 제사장과 의논하여 혼인의 대상을 정하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는 풍습을 유지하는 소수민족이 많다.

계곡도, 바람도 낯선 마을로 시집온 처녀들 중에 낮에는 외로움으로, 밤에는 그리움으로 울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이 왜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해가 비켜가는 가파른 비탈에 산다고 사랑마저 비켜가겠는가. 그들에겐들 왜 스스로 마음에 담은 사랑이 없었겠는가.

살아 있는 목숨을 살아 있게 하는 것, 일 년에 한 번 쯤은 마음의 나침판이 향하는 곳으로 찾아가게 허용하는 것, 그것이 할아버지 할머니 사당을 만들고 사랑시장을 연 이곳 사람들의 지혜였고, 그 지혜의 핵심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헤아려 희망의 마지막 불씨 하나는 살려두는 것이 아니었을까.

산악지대의 밤이 아무리 길어도 아침은 오고, 한 해가 지나면 마침내 3월 27일이 다시 돌아와서 그리운 얼굴을 만날 수 있다는 이 희망보다 더 눈물겨운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 방현석: 소설가. 1961년 울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8년 실천문학에 단편 ‘내딛는 첫발은’ 발표하며 데뷔.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서사창작방법 안내서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 출간. 신동엽창작기금, 오영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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