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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편지 조금은 남겨두시옵기를 유안진




용서해 주시옵고 용서해 주시옵기를
지워서 잊어버려 주시옵기를
그러나
스스로를 용서해버릴 만큼은
저절로 다 잊어버릴 만큼은
마시옵기를

조금은 남겨두시옵기를
용서 구할 거리를 더 만들지 않을 만큼은
때때로 울 수 있을 만큼은
흐린 자국 몇이라도.


묵상 중 신(神)에게 쓴 편지라고나 할까?  쓴 편지가 아니라 쓰인 편지지. 겨울에는 왜 늘 용서라는 단어가 찾아오는지. 엊그제까지도 유혹이라는 단어로 씨름했는데. 잠과 게으름, 외로움과 참을성 부족과 실언과 실수의 유혹 등등, 하루하루는 유혹으로 이어져, 시험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는데. 문득 같은 용서를 너무 자주 구하며 산다는, 용서 구함을 남용하고 낭비하고 산다는 생각에 너무 너무 죄송스러워져서.

추위를 몹시 타서, 겨울은 늘 힘들면서도 이상하게도 좋았지. 왠지 덤으로 받는 휴가처럼, 쫓기는 일생 속에서 얻는 휴가나 여유나 유예처럼 느껴지곤 했지. 쉬어가며 살라는, 쉬면서 생각해도 된다는, 안 늦다는, 그래야 제대로 된다는, 처음으로 돌아가 곰곰 생각하며 살펴보라는, 아무런 조건 없이 얻는 휴가가 겨울인 것만 같지. 우리 민속에도 겨울은 밤과 비 오는 날과 함께, 삼여(三餘) 중에서도 가장 긴 여유였다지. 그래서 바쁘게 사는 이들에게 덕담으로 ‘잉어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을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으니, 겨울을 공짜 휴가로 느낀 것이 우리 민속의 맥락과도 통했던 게 아닐까. 잉어라는 물고기의 발음이 중국말 여유의 발음과 비슷해서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지만, 다른 물고기들과는 다르게 잉어의 우아한 기품이나 품위가 상징하는 바도 여유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라지.

나는 잠자기를 좋아하고 게을러서 그런지 밤이 대낮보다 더 좋고, 밝고 맑아서 눈이 부시고 어지럼증이 이는 갠 날 보다는 눈길이 아래로 휘어지고 살갗이 촉촉해지는 비 오는 날이 더 좋고, 겉치레나 바깥으로 확산되기에 바쁜 듯한 봄 여름 가을에는 정신도 산만해지고 헷갈리곤 하여 한갓지고 호젓한 실내생활의 겨울이 더 좋아졌지.

순전히 사적인 느낌일 따름이나 겨울은 성찰과 반성과 계획과 준비의 유예기간 같아서 좋지. 사계절이 분명한 땅에 살면서 초목도 봄에서 가을까지는 너무 설쳐대기에 바쁜 것만 같지만 겨울에는 뿌리가 자라고 깊어지면서 내실을 다지는 듯, 사람도 봄에서 여름 가을까지 줄곧 밖으로만 뻗어간 시선과 관심이 휘어지고 꺾어져서는, 빈자리 허술했던 데를 찾아내어 돌보고 손보아 다독거리고 싶어지지. 안 보이는 데에 더 마음 써지는 때가 병을 앓는 때나 겨울이라고. 앓으면서 깊어지는 자기를 느끼게 되지만, 병도 심하면 의식조차 없어지지만, 큰 병이 없는 겨울에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 더 좋지.

봄나물을 하던 어렸을 때 배웠지. 냉이나 씀바귀도 겨울동안 뿌리가 길고 굵지만 봄이 되면 뿌리의 힘이 잎으로 올라와 잎이 무성해지고 뿌리는 가늘고 짧고 허약해졌던 것을. 냉이나 씀바귀뿐이랴. 모든 초목들은 겨울동안 제뿌리를 깊이 튼튼히 키워야 봄 여름 가을을 뿌리만큼 높게 드넓게 자라면서 꽃과 잎을 피우고 열매 맺어 익힐 수 있다지. 높은 만큼 깊은 뿌리를 가졌다니, 초목이 그럴진대 사람이야 하고. 긴 생애를 살면서 주기적으로 자신의 잘잘못을 성찰하여 계획하고 고치고 바로잡을 준비도 하는 여유나 유예기간으로서 겨울철은 축복이라고, 불운에 더 덕 보는 게 값진 삶이라고 오죽하면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싶지.

살을 에듯 추운 눈보라 속을 모퉁걸음을 걸어 발가락마다 얼음 알이 박히는 혹한을 견디어야 하지만, 그런 외적인 가혹함이 없다면 내적 가혹을 스스로에게 어떻게 부여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의지가 약해서 병약함과 여의치 못했던 외적 환경에 많이 자주 기대어 살아온 것만 같다. 불행과 역경에서야 진정어린 반성과 성찰 참회로 더 성장하고 성숙해 왔던 것 같다. 심리학 학설마다 건강한 발달과 성숙은 역경과 불행의 겨울철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지만. 겨울을 불행이나 역경 이상의 여유와 유예의 기간으로 수용한다면 겨울 나이에 이르러서는 인품의 향기도 흰눈의 향기처럼 그윽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칸트는 미적 대상의 분류 기준에 미(美)와 추(醜) 외에 숭고함을 추가하면서 숭고함이란 기나긴 고난을 거쳐서야 풍겨날 수 있어 언어로 정의할 수 없다고 했지. 겨울철은 이른바 역경과 고난의 시기여서 당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통합적으로는 인생에 유익한 유예와 여유기간이 된다고들 하지. 삶이 숭고하다는 것은 잊을 만 하면 다시 겨울 같은 고난과 역경이 끼여든 덕분이지. 몇 가지 불행 없는 이는 아무도 없지. 옆의 소품시도 그 비슷한 느낌에서 쓰였을 듯. 그러나 다 용서해주시기보다는 조금은 남겨두시어, 늘 용서 구할 거리가 되었으면 바라지. 나 스스로를 다 용서해버리거나 저절로 잊어버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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