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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를 찾아서 “위암 치료, 우리가 세계 최고다” 유인종

김병식(56) 교수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몇 해 전 일이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원장이 위암 진단을 받았다. 그 원장은 자신이 아는 모든 의사들, 특히 자신이 운영을 책임진 병원의 의사들마저 제쳐두고 김 교수를 찾았다. 김 교수는 그 원장의 요청에 따라 그 병원에 가서 위암 수술을 마쳤다. 결과는, 김 교수가 지금까지 집도한 수술들과 마찬가지로 성공적이었다.
다른 병원의 원장이 수술을 맡기는 의사! 이 정도로 김병식 교수는 ‘명의 중의 명의’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김 교수는 몸을 낮췄다.
“저 같은 사람을 명의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위암을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은 수술적 치료인데, 서울아산병원이 국내의 단일병원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그에 따라 수술을 많이 하면서 성공률을 높이다 보니 그런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1년에 300~400명 위암수술
국가암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위암 발생률은 세계 1위라고 한다. 특히 남성의 경우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해야 할 40~50대에 가장 많이 발생했고, 여성은 65세 이후 위암 발생률이 높았다.
위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약물과 수술 두 가지다. 그러나 완치율이 50~60%에 이르는 약물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지금으로선 수술이 가장 완전한 치료법이다. 수술은 개복수술과 복강경수술, 로봇수술로 나뉜다. 조기 위암의 경우 배를 열고 진행하는 개복수술보다 구멍을 뚫은 다음 기구를 배 속에 집어넣고 진행하는 복강경수술이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다.
김 교수는 “기본적인 수술 내용은 개복수술과 복강경수술이 동일합니다. 단 복강경수술이 복부 절개길이가 짧아 통증이 덜하고, 수술 흉터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회복기간도 빠르며, 면역성 저하율도 현저히 낮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복강경수술은 집도의가 모니터로 확대해 들여다보며 수술을 진행하기 때문에 정확하고 정교하다고 한다.
서울아산병원은 복강경 위암수술을 2004년 도입해 지금까지 4,300례라는, 단일병원 세계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김 교수팀은 위를 자르고 연결하는 모든 수술과정을 뱃속에서 마치는 ‘체내문합술’ 복강경 위암수술법을 2005년부터 세계 최다인 2천여 명에게 시행해 완치율 95% 이상의 높은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다. 체내문합술은 자르고 꿰매는 모든 수술 과정을 배 속에서 마치기 때문에 절제된 위 조직을 배 바깥으로 꺼내어 재건하는 기존의 체외문합술보다 정교한 테크닉이 필요하다.
김 교수팀은 고난도의 술기가 필요한 복강경 위 전체 절제술에도 체내문합술 수술법을 적용하여 2008년부터 세계 최다인 300여명에게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이 연구결과는 최근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국제학술지에 4차례나 발표돼 그 효과를 입증했다.
김 교수의 1주일 일정은 빡빡하다. 매주 월요일 오전과 목요일 오후에는 외래 환자를 20~40명 진료한다. 그리고 화ㆍ수ㆍ금요일에 수술을 하는데, 수술에 보통 세 시간이 걸리므로 하루에 3명, 1주일에 최대 9명을 수술한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1년에 300~400명을 수술하는 셈이다.
“위암 치료에 있어서는 서울아산병원이 세계 최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암을 연구하고 진단ㆍ치료하는 수준과 경험ㆍ기술이 우리 병원이 가장 높기 때문이죠. 지금으로서는 위암에 걸린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 병원에 가서 치료받겠다고 하면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팀워크 위해 캠핑ㆍ등산 실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암 수술 실적 1위 병원에서 가장 많은 수술을 한 의사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①환자와 스킨십이 강하고 ②의학 교과서에 충실하며 ③새로운 의료기술을 빨리 습득해 동료 의사들과 나누고 ④팀워크를 유지하면서 시스템을 구축하고 ⑤병원에 파묻히다 보니 가정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 또한 이러한 ‘명의의 조건’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김 교수는 우선 소화기내과에서 위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외과에 오면 환자를 만나 오랫동안 면담하며 수술 준비를 한다. 사후 관리에도 철저해서 수술 뒤 5년 동안 환자를 계속 살펴본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위암은 우리나라가 발생률이 가장 높다. 또 위암이 많이 생기는 나라가 일본인데, 이는 음식을 짜게 먹는 두 나라의 음식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위암에 대한 복강경수술과 체내문합술 아이디어가 나온 곳이 바로 일본인데, 학술대회에 참가했다가 이 정보를 접한 김 교수는 기술적으로 보급되기 쉽지 않은 이 수술법들을 빠른 시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동료ㆍ후배 의사들에게 전수했다.
수술과 진료, 연구에 매진하느라 김 교수 또한 여느 의사들처럼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다. 그래서 주말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지만 여의치 않은 편이다.
김 교수는 위의 다섯 가지 조건 중에서도 특히 팀워크를 중시하고 있었다. 김 교수의 복강경 수술팀은 김 교수와 펠로우(전임의) 3명, 수술보조 임상교수 1명, 수술보조 간호사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실제 수술을 할 때는 김 교수와 수술보조 의사 1명, 수술보조 간호사 1명 등 3명이 참여하는데, 김 교수는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팀워크라고 강조한다.
“똑같은 열 손가락으로 수술하는데 무슨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겠습니까? 개복수술은 집도 의사만 능력이 있으면 큰 어려움이 없지만, 복강경수술은 집도의와 수술보조 의사, 간호사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술입니다.”
김 교수는 수술팀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하고, 무엇보다 인간적인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저녁 회식이라든가 주말 산행을 자주 갖는다. 특히 공동체 의식을 갖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야영이나 등산을 가는데, 이때는 가족들도 같이 참여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는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족의 지지가 없으면 병원 생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팀워크를 다진 탓인지 김 교수의 팀은 인원변동 거의 없이 몇 년째 같은 팀을 유지하고 있고, 팀원들간의 호흡이 잘 맞아서 난이도 높은 수술도 거침없이 성공시키고 있다.
김 교수 팀은 캠핑을 하도 많이 다녀서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야영장은 대부분 다 찾았을 정도다. 또 1년에 두 번, 설악산과 지리산 산행은 김 교수 팀의 필수 코스다.
“수술을 잘 하려면 기본적으로 체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등산을 자주 하는 편이죠. 운동 중에서는 걷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의사의 무식은 범죄다”
김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만 있는 직함인 교육부원장도 맡고 있다.
“전공의와 전임의, 간호사를 비롯해 서울아산병원 전 직원의 교육을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 교육이죠.”
수술과 진료 외에 병원 직원의 교육까지 책임지고 있다 보니 연구는 일과 후에 할 수밖에 없다. 퇴근시간 뒤에 연구를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논문을 쓰면서도 피곤하다는 생각보다 즐거운 마음이 든다는 김 교수의 말을 들으니, 그는 타고난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외과 의사의 지원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의료 현실에 미쳤다.
“의대생들이 외과 의사를 지망하지 않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그건 환자에게 합병증이 생겨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마음 놓고 치료할 수 있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환자에게 탈이 생기면 의사가 환자 보호자에게 멱살 잡히는 일이 다반사인데 누가 외과 의사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미국은 이런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를 통해 모든 게 해결되도록 시스템이 마련돼 있거든요. 환자를 고치고 싶지 않은 의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의사를 믿고 격려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평소 강조해온 ‘외과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두 가지를 언급했다.
“외과의사는 우선 의사 윤리에 철저해야 합니다. 저는 “내가 받고 싶은 수술을 환자에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최선의 치료를 환자에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사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말이죠. 또 하나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해서 모든 수술을 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맥락에서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의사의 무식은 범죄다”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수술팀을 세계 최고의 팀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인 김 교수는 1957년 서울에서 2남1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원래 이북 출신인 집안, 특히 큰집에 의사가 많아서 어릴 때부터 의사를 꿈꿨다. 경기고 졸업 뒤 소망대로 서울대 의대를 마쳤고, 전방 부대에서 군의관을 하면서 일반 외과를 선택했다.
같은 대학 4년 후배인 부인(조미경ㆍ52)과는 1987년에 결혼했다. 부인은 현재 피부과 개원의이고, 슬하에 딸이 두 명 있다. 큰딸(25)은 잡지 에디터이며, 작은딸(22)은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요리 스타일리스트 등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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