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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담인 “아산장학금이 내 꿈에 날개 달아줬다” 채승웅

이번 호 ‘우리는 정담인’의 주인공은 추계예술대학교 동양화과 김지현 교수다. 김 교수는 1년 평균 12회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 화가다. 지난해 말에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 화단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기법에 있어서 기존의 동양화와는 다른 점이 많아 활동 초기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동양화의 매력은 기법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다”는 뜻을 세우고 조소와 판화, 회화 등을 동양화에 적용시켰다. 특히 닥종이를 활용한 부조 작품이나, 동판으로 만든 부조를 그림 속에 즐겨 사용한다. 그는 “형식은 구애받지 않되 내 작품의 정신세계의 근간은 동양화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충북 청원의 한 농촌에서 6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솜씨가 뛰어나 10세 남짓한 나이에 마음속으로 꿈을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배고픈 일은 안 된다”며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일을 반대했다. 그의 뛰어난 그림 솜씨를 지켜보던 학교 선생님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빨리 도시로 보내 미술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설득했지만 부모님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공고에 진학한 그는 그렇게 평범한 시골 청년으로 성장하는 듯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에 그는 무작정 서울로 가서 꿈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가진 게 아무 것도 없고, 바로 앞의 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청춘이었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항상 뜨거운 무엇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여러 화가 선생님들의 작업실을 전전하며 잔심부름을 하고 그림을 배웠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죠. 무척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군대에서 허물없이 지내던 친구가 알고 보니 당시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였던 안동숙 씨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제대 후에 오당 안동숙 선생님의 소개로 오영길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이전까지는 이 선생님, 저 선생님의 작업실을 옮겨 다니며 잔심부름만 하던 뜨내기에 불과했다면 그 이후에는 제대로 차근차근 그림을 배웠습니다.”
1980년, 그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추계예술대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한다. 학교에서 학비의 50%를 장학금으로 지원받았지만 나머지 학비와 생활비를 아르바이트로 벌어야 했기 때문에 힘든 생활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던 해,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된 것이다.

꿈을 향해 달리는 시골청년
“제가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학교에서 배려해줬던 것 같아요. 입학 전에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등 작품활동 경력도 인정받은 것 같고요. 아니 그보다는 제가 복이 많아서 그랬죠(웃음).”
아산장학금을 받은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학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림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수많은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며 조금씩 화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동생들이 많아서, 만약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면 동생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았습니다. 서울에 오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가겠다고 마음먹고 살았죠. 아산장학생이 된 후 부모님이 많이 대견해 하셨어요. 또 도움을 못 준 것에 대해 미안해하시기도 했죠.”
대학생 시절에는 나이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아산장학회 동기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당시 발행되던 정담회지 속의 삽화는 늘 그의 몫이었다.
“한번은 회원들이 정주영 설립자께 선물을 하자고 뜻을 모았어요. 무슨 선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당시 학생회장을 맡고 있던 조남두 씨가 ‘형 그림을 선물하면 어때?’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개인전에 출품했던 작품 중에 ‘달빛 아래 말을 타고 가는 여인’을 설립자께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현대그룹 회장실에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을지 궁금하네요(웃음). 또 설립자께서 ‘백인달관 여아산(百忍達觀 如峨山)’이란 문구를 좋아하셔서 제가 그 문구를 써드리기도 했죠.”
요즘도 정담회 친구들과는 가끔 만난다. 모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서로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지만 가끔 못 견디게 그들이 보고 싶어진다.
“정담회 친구들에게서는 뭔가 특별한 감정이 느껴져요.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과는 다르죠. 그냥 좋아서, 보고 싶어서 만납니다. 어경찬, 장석, 서상해, 김종원, 계흥석, 심재욱, 조수형, 오철승 씨 등이 제가 만나는 친구들이죠.”
그의 친구들은 김지현 교수를 두고 ‘영혼이 빛나는 사람’, ‘숲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작품 속에 새의 날개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제 작품 속의 날개는 ‘얽매인 것들로부터의 해방, 다른 세상으로의 전이’를 뜻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닫힌 공간에 존재하는 것들만을 실체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체, 사실성은 그 밖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안과 밖을 구분 짓는 벽을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이죠. 날개를 통해 밖의 세계, 이상세계로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의 모습을 보며 ‘아산장학금이 누군가에게는 날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아산장학금을 통해 더 큰 세상을 바라보고, 그들의 꿈을 비로소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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