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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② 기초과학계 지키는 ‘세포연구의 달인’ 유인종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서울대학교 유전공학연구소 1층의 정종경(鄭種卿ㆍ50) 교수 실험실에 가장 먼저 출근한 사람은 15명의 연구원 중 한 명이 아니라 정 교수였다. 등산 바지를 입고, 등산화를 신은 편안한 차림이 인상적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건강도 관리할 겸 학교에 잇닿아 있는 관악산을 자주 오르는데, 그에 대비한 복장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명과학자를 언급할 때 정 교수의 이름은 항상 첫머리에 나온다. 그의 이름을 세계 학계에 널리 알린 연구는 유전성 파킨슨병의 발병 기전을 규명한 논문으로, 2006년 5월 4일 <네이처> 인터넷판에 게재됐다. 또한 이 논문은 600편 이상 직접 인용되었고, 관련 연구논문은 수천 편에 달한다. 아울러 당뇨병 등과 관련한 질병유전자의 기전을 연구하면서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제시하고 있고, 새로운 암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를 그치지 않고 있다.
정 교수가 제6회 아산의학상 기초부문 수상자로 결정된 것은 이러한 학문적 성과와 연구 자세를 인정받아서이다.

- 아산의학상 수상 소감을 들려 달라.
“내가 좋아서 재미있게 한 연구인데 이런 엄청난 상을 주어서 무척 고맙다. 앞으로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당부로 받아들이겠다.”
- 파킨슨병과 당뇨병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치료물질 개발은 어디까지 진행이 돼 있나.
“파킨슨병은 발병 기전을 규명하면서 치료 가능한 새로운 타깃을 찾은 것이다. 그 약물에 대해서는 특허를 냈지만, 내 특허가 치료제를 개발할 제약회사들을 구속할 가치를 갖고 있지는 않다. 파킨슨병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약을 개발할 생각도 없다.
현재의 당뇨병 약은 완치도 안 되고, 부작용도 많다. 그래서 앞으로 10년 동안 당뇨병에 대해 집중 연구하면서 치료제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지금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당뇨병이라는 말인가.
“당뇨병뿐 아니라 비만 치료제에도 관심이 많다. 전 인구의 10%가 당뇨 환자이고, 비만 환자는 20%여서 이에 대한 연구는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미국ㆍ일본에 한참 뒤진 생명과학
- 정 교수를 가리켜 ‘유전자 연구의 달인’이라고 하면 맞는 말인가.
“나는 수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우리 몸 중에서도 세포신호전달을 연구한다. 말이 어려울 텐데, 세포가 우리 몸 밖의 변화를 어떻게 아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가령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우리 몸에 어떻게 작용하느냐를 연구한다. 굳이 표현한다면 유전자보다는 ‘세포 연구의 달인’이라는 말이 사실에 가깝다.”
-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난치병 치료와 생명 연장인가.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은데…(웃음). 난치병 치료의 기초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내 연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나라 생명과학의 현재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솔직히 말하면 미국ㆍ일본에 비해 100년ㆍ50년 뒤떨어져 있다. 연구자도 그들이 우리보다 10배 이상 많다. 우리와 그들은 저변이 다르다. 잘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는 한두 명인데, 그들은 100명이다. 그래서 100년 뒤졌다고 말한 것이다.
다행스러운 건 앞으로 연구해야 할 생명과학 분야의 과제가 많다는 사실이다. 또 지난 20년간 우리 정부가 투자를 많이 해서 우리나라도 많이 따라갔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스포츠계에서 김연아, 박태환 선수가 나온 것처럼 기초과학계도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 실험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또 강의는 얼마나 맡고 있나.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0시쯤 퇴근한다. 가족들이 대전에 거주하고 있어서 나는 교수 아파트에서 혼자 지낸다. 우리 실험실 연구원들은 출퇴근을 자율적으로 하고 있다. 강의는 1주일에 3시간을 하고 있다.”
- 건강관리는.
“1주일에 두 번은 관악산 정상인 연주암까지 올라간다. 겨울에는 오후 3시, 여름에는 오후 5시경 산행을 시작한다. 빨리 올라가서 정상에 10~20분 있다가 천천히 내려오는데, 산행에 2시간이 걸리니까 걸음이 빠른 편이다. 일본 교토대학에 과학자들에게 유명한 산책로가 있는 것처럼 서울대에는 관악산 등산로가 있다(웃음).”
- 초등학생과 중ㆍ고등학생 대상 강의를 하기도 하던데.
“외부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되도록 간다. 최근 초등학교는 아들(초4) 학교에서 요청이 있어서 간 것이고,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주관하는 ‘금요일에 과학터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과학 정보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나는 공부에 관한 모든 걸 해봤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면서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겼기 때문에 직선거리로 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다.”

당뇨병ㆍ비만 치료제 개발에 주력
- 연구에 초파리를 주로 사용하는 이유가 있는지.
“모델 동물로 생쥐ㆍ개구리를 검토하다가 전혀 모르던 초파리를 실험실에 도입했다. 초파리의 하루는 사람의 1년에 해당한다. 사람이나 생쥐에 적용하자면 5~10년이 걸릴 일을 초파리로는 10여 일이면 할 수 있다. 사람 질병유전자 연구를 초파리에 적용시킨 발상의 전환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 실험실에는 초파리가 10만 마리쯤 있는데 항상 25℃를 유지해야 하는 등 유지ㆍ관리가 쉽지 않다. 미국에선 초파리 사체를 쓰레기통에 그냥 버려서 우리도 그렇게 했다가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기도 했다. 지금은 생물위해성처리업체가 수거해 간다.”
-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 수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논문은.
“80여 편 발표했는데,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에 나름 긍지를 느끼고 있다. 라파마이신이라는 면역 억제제의 기전을 밝힌 논문인데, <셀(Cell)>지와 <네이처(Nature)>지에 실렸고, 1천 편 이상의 논문들에서 내 논문이 인용되었다. 내가 연구책임자로서 수행한 가장 중요한 논문은 앞서 말한 파킨슨병의 발병 기전을 밝힌 논문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내 연구 기간은 10년 정도 남았다고 보는데, 세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첫째는 누구도 하지 않은 중요한 발견을 하나는 더 하고 싶다. 둘째는 기존의 세포 수준의 연구를 발전시켜서 우리 몸전체를 네트워크적으로 묶는 연구를 하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당뇨와 비만 치료제를 만들고 싶은 것이 마지막 바람이다. 실험실에서는 파킨슨병에 걸린 초파리를 얼마든지 정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초파리의 특정 유전자 하나를 없애면 배가 터져도 먹이를 먹고, 아무리 굶겨도 먹이 근처에 안 간다.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해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우리나라에도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고 싶다.”

대학 2학년 때 기초과학 연구 결심
정 교수는 형제관계도, 공부도 늦둥이다. 1963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을 때 그는 4남3녀의 막내였다. 큰누나와는 15세 차이가 난다. 아버지(고 정진규)는 초등학교 교장만 40년 역임한 교육자이고, 어머니(고 서위수)는 신식교육을 받은 부잣집 외동딸이었다. 아버지가 매사에 엄격하고 꼼꼼한 반면 어머니는 관대하고 자유스러웠다. 그는 성격이 아버지를 닮았으면서도 모순적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지향했다.
큰형은 토양학을 전공한 대구대 교수이고, 둘째형은 약대 졸업 뒤 고향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셋째형 또한 고향을 지키고 있다. 누이들은 전업주부이지만 모두 교사 출신이다.
마산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의 꿈은 시인이었다. 형들의 영향으로 이과를 선택했지만, 정지용ㆍ박목월의 시를 탐독하면서 공상가ㆍ몽상가를 자처했다. 부모나 형제 중에 공부를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고, 공부에 대한 흥미도 없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1981년 서울대 약대에 입학한 건 둘째형처럼 사는 게 그나마 나아 보여서였다.
공부에 흥미를 느낀 건 대학에 들어와서였다. 감정적이던 그에게 논리 그 자체인 기초과학, 특히 화학이라는 학문은 충격이었다. 화학을 열심히 공부하다가 대학 2학년 때 비로소 약학을 배경으로 기초과학을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학원에서 생물화학을 전공하고, 석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뒤 하버드대학교 생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한 그는 이 시기가 공부를 가장 치열하게 한 시기라고 말한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분자세포생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미국 다나파버 암연구소(1993~1994)와 하버드의대(1995~1996) 연구원을 거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교수(1996~2009)를 역임했고, 2010년부터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좌우명은 ‘정심직행(正心直行)’. 선친이 준 교훈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올곧게 행동하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첫째는 ‘머리를 믿지 말고 눈을 믿어라’로, 범람하는 정보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라는 뜻이다. 두 번째는 ‘진실은 단순하다’는 점이다.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 뒤 꿰맞춰보면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경험을 자주 했기 때문에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점을 역설한다.
부인은 서울대 약대 2년 후배인 박미정(48) 씨로, 1988년 웨딩마치를 울렸다. 부인 또한 미국에서 약리학을 공부하고 귀국뒤 LG생명과학에 다니면서 외국 제약회사와의 수백 억짜리 연구에 관여하곤 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고 3인 딸과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딸은 대전에서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3년 전 그가 KAIST에서 서울대로 옮길 때 전학가기 싫다고 해서 그만 서울로 이사했다. 오는 6월 졸업 예정인 딸은 국내 대학이 아니라 MIT나 케임브리지대학교 같은 외국 대학에 진학해서 신경생물학을 전공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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