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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담인 “큰 세상으로 나아가게 해준 설립자” 고선희

정부에서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 부산을 기계설계공학 분야 특화지역으로 선정한 1973년에 부산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하여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경북대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와 박사 후 과정을 밟은 김덕줄(60) 교수. 김 교수는 1984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공과대학 교무과장, 대학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종합인력개발원장과 학생지원처장, 기획처장을 거쳐 부총장으로서 총장 직무대행과 학교발전재단 이사장까지 맡아 모교와 학생들을 위해 헌신해왔다. 대외적으로는 (주)LG마이크론과 (주)LG이노텍의 사외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기장 촌놈을 키워준 아산정신
9남매라는 대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부모님께 집이 있는 기장에서 학교가 있는 부산까지의 통학 열차표를 사달라고 하는 일이 그에게는 가장 죄송스러운 일이었다. 등교하면서도 멸치를 시장까지 운반해야 했고, 하교 후에도 늘 농사일과 멸치를 너는 일들을 도와드려야 했지만 그는 넓고 푸른 바다가 있어서 꿈을 꿀 수 있었고,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을 키워주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바로 아산장학금이다.
“살다보면 혼자서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칠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나침반과 희망의 등불 같았던 것이 아산장학금이었습니다.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그래서 꿈을 키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장학금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인 1978년부터 석사과정을 마친 1981년까지 장학금 혜택을 받은 김 교수는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다른 사람의 조언과 힘이 필요한 순간이 오게 마련이라면서 아산장학금이 바로 그런 시기에 만난 큰 힘이었으며, 그 혜택으로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서울에서 내려오신 이사진이나 직원들을 보면서 설립자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전적이며 진취적인 그 정신을요.”

시간 지날수록 더욱 빛나는 인연
지방 학생들도 서울에 와서 장학증서 수여식에 참석하는 요즘과 달리 그때는 지방을 나누어 순회하면서 장학증서 수여식을 개최했다고 한다. 당시 정담회 영남지부 회장이던 김 교수는 대구, 부산 지역의 장학증서 수여식을 위해 부산대학교에 온 재단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지식이 아닌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설립자의 훌륭한 정신을 알 수 있었던 또 다른 일은 1979년에 일어났다. 정담회의 하계 농촌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그는 봉사를 하던 중 쓰러져 그해 3월에 개원한 영덕아산병원에 실려 갔다.
“아산재단이 설립한 영덕아산병원은 전혀 수익을 낼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역사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병원이었죠. 그때 아산재단은 정말 훌륭한 일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작은 어촌에 들어선 종합병원은 굳이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그리고 세 살배기 아이라도 알 수 있을 ‘돈이 되지 않을 병원’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설립자의 의지와 뚝심, 그리고 추진력 덕택에 그곳에 종합병원이 실체로 서 있었던 것이다.
부산시 기장군 출신으로, 그곳 죽성초등학교의 제1회 졸업생이자 초대 동문회장인 김 교수는 이따금 모교의 어린 후배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초청을 받는다. 그때마다 김 교수는 설립자를 본받아 어린 학생들에게 자부심과 꿈, 그리고 포부를 키워주려고 애를 쓴다.
“정담회의 기억이 유독 또렷하게 남는 이유는 깨끗하고 순수하기 때문일 겁니다. 아마도 ‘불우한 이웃을 돕겠다는 설립자의 정신’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겠죠.”
지혜로운 스승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배우자, 그리고 즐겁고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 못지않게 힘들 때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는 김 교수는 정담회가 바로 그런 친구의 인연을 놓아 주었다고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몰라서 놓치고, 보통 사람은 알면서도 놓치는 것이 인연인데, 저는 아름다운 인연을 소중히 이어나가는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장학증서 수여식 전날 부산에 내려와 함께 행사를 치르고 광안리 바닷가에서 회를 먹으며 정을 나누었던 그 시절 그때의 사람들이 가끔 불현듯 생각난다는 김 교수. 지금까지는 서로 바빠서 만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서로 사회 각 분야에서 안정을 찾은 시기인 만큼 모임의 자리를 자주 만들어 정담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길 때라고 강조한다.
“경남, 부산 지역의 동문 활성화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혜택을 환원해야 할 때이니까요.”
김 교수는 지방에 거주하는 동문들이 서울로 가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많은 만큼 각 지역의 모임을 활성화시켜서 동문 모임을 재정비해 나가면 정담 동문회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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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담회(淨淡會) : 1977년 2학기부터 배출된 아산장학생들의 모임. ‘담담(淡淡)한 마음을 가집시다’라는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의 휘호에서 명칭을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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