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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를 찾아서 “의사는 실력으로 말한다” 이용권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입니다.”
윤영희(54) 서울아산병원 안과 교수에게 의사에 대한 철학과 견해를 물어보자 돌아온 답이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거나 망설임 없이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실력! 윤 교수는, 의사는 환자를 고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아주 당연한 점을 강조했다.
환자로부터, 주변으로부터 친절함이나 부드러움, 자상함 등의 서비스 정신으로 평가받는 의사보다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신념인 것이다. 여의사인 만큼 다소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모습을 상상했던 인터뷰 전의 그림들은 윤 교수와 이야기하는 동안 모두 지워졌다. 예민한 눈을 치료하는 의사답게 냉철하고, 이성적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당연한 덕목이다. 윤 교수의 실력 중심론은 인터뷰 내내 거듭 강조됐다.
“의사가 인성이 좋아야 한다는 것은 어폐라고 생각합니다. 자비로운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실력이거든요. 말로 백 번 잘해도 의사로서의 기본실력이 없으면 환자에게는 해가 되니까요.”
그의 생각은 실력이 늘면 자신감도 배가 되고, 곧 환자에게도 신뢰감을 준다는 것이었다.
“환자에게 증상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할 만큼 실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니까요. 어느 분야든지 직업정신은 투철해야 하지만, 의사는 실력이 있어야 의사인겁니다. 전공의들에게도 실력을 키우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전공의 때가 실력을 가장 많이 키울 수 있는 시기니까요.”

안과 분야에서 ‘최초’ 선도해온 의사
연구로 쌓인 실력은 곧 환자에게 양질의 설명으로 이어진다. 윤 교수는 “진료시간이 많지 않아 충분하지는 않지만, 환자에게 최대한 많이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환자의 상황에 맞게 처음 만나는 환자에게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두세 번 설명을 들은 분들은 간결하게 설명하면서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 본인도 실력 향상을 위해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서울아산병원이 우리나라를 선도하는 위치인 만큼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바로 적용해 앞서 나가는 것이 제 역할인 것 같습니다.”
윤 교수는 최고 의사가 되기 위해 ‘최초’를 선도해왔던 의사다. 윤 교수는 200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봉합 유리체 절제술’을 도입했다. 수술 시간과 마취를 줄이고 절제 부위도 최소화하는 수술법으로, 환자들의 회복 기간을 크게 줄였다. 최근 들어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환자들의 회복 속도도 많이 빨라졌다. 이는 윤 교수의 신기술 도입에 대한 노력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 의료기술을 국내에 도입하는 역할은 그가 책임감처럼 느끼는 부분이다.
“최근 10〜20년 사이에 국내 안과분야 의료기술이 많이 발전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새로운 수술방법을 바로 들여오는 것이죠. 무봉합 절제술도 제가 처음으로 시작했죠. 원래 첫 시작이 어려웠지만, 미국에서 해봤던 수술이라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발전을 하려면 누구나 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올해 3월 과장직도 그만뒀습니다. 나이 때문인지 실력을 쌓는 게 예전 같지 않더군요. 생생한 젊은 후배들을 못 따라가는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역할은 후배들에게 길을
연결해주는 일인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외국 학계와 연결시켜 주고, 길을 터나가면서 후배들이 연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그는 선진 의료기술을 국내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다행이었던 점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 시스템이 우수해 최신기술의 도입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의 의료 시스템은 미국에서도 상위 클래스에 해당하는 시스템”이라며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려는 의사를 병원에서 지원해주는 분위기여서, 의사가 연구하고 진료하는 데 독보적으로 좋은 병원”이라고 말했다.

미국서 트레이닝 받은 망막 전문의
건강관리도 의사가 지녀야 할 필수조건이라는 게 윤 교수의 생각이다.
“의사가 건강하지 않으면 아픈 환자를 치료할 수 없습니다. 건강은 의사의 의무 중의 하나로 스스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합니다.”
윤 교수는 스스로의 건강상태에 대해 모친의 영향으로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고 평가했지만, 병원에 마련된 피트니스센터에서 틈틈이 운동을 하며 몸 상태를 관리하고 있다. 일주일에 사흘은 외래진료를, 이틀은 수술을 집도하고, 나머지 시간에 연구를 해야 하는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윤 교수는 망막 전문의사로서 미국에서 망막 분야에 관한 전문 트레이닝을 받았다. 윤 교수가 이처럼 자신만의 철학을 확고히 하게 된 계기는 이 당시 미국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의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충격을 받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미국 의사들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대부분은 불친절한 것이 정서였는데, 미국 의사들은 환자에게 정말 잘 하더군요. 한국에서는 서울대 나온 의사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며 미국에 갔는데, 그들은 서울대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기가 죽었고, 많이 배웠습니다.”
윤 교수는 이때 직업정신을 배웠다. 의사가 환자에게 잘 하는 것은 돈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철저한 직업 정신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의무는 수술만이 전부가 아니라 철저한 직업정신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의 전문직들이 항상 운동으로 자신을 관리하는 것도 이때 보고 느낀 점이다.
윤 교수의 가족도 의사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게 한 부분이다. 그녀의 남편은 같은 병원 신경과장인 고재영(56) 교수이고, 남편의 여동생도 삼성서울병원의 내과 의사다. 항상 전문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연구 등에서는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성과가 기대되는 이유
윤 교수는 의사로서의 실력을 강조했지만, 자만하거나 거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겸손했다.
본인이 거쳐 온 의사로서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운이 좋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윤 교수는 미국으로 망막 트레이닝을 가게 된 것도 운이 좋아서,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점도 운이 좋아서, 현재의 성공적인 망막 분야 안과의사로서의 위치에 대해서도 운이 좋았다고만 했다. 윤 교수는 “지금과 달리 저희 세대는 그저 열심히만 하면 각광받던 시기였던 것 같다”며 자신을 낮췄다.
윤 교수의 친구들을 살펴보면,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 등이다. 그저 열심히만 해서 잘됐다고 보기 어려운 사회지도층이다.
윤 교수는 미국에서 망막 전문 트레이닝을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 여의사이다. 서울대 의대 75학번인 윤 교수가 미국으로 트레이닝 받으러 갈 당시에는 한국에 여자 안과의사가 많지 않았을뿐더러, 미국에서 망막을 전공하는 자체가 어려웠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망막 트레이닝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으로 가는 경우가 없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이었다. 수술과에서 여의사를 잘 받지 않던 의대생 시절에 안과를 전공하게 된 사실도 윤 교수의 도전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에서 망막 전문의로서 교육을 받으며 연구 업적을 쌓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고 수술하며, 새로운 의료 기술도 국내에 들여왔다. 운이 좋았다고만 보기는 어려운 결과들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 윤 교수가 그동안 의사로서, 연구자로서, 교수로서의 성과도 우수하지만, 앞으로의 성과도 기대되는 이유다.
“현재 국내에서 망막을 전공하는 여의사는 40~50명쯤 됩니다. 저도 여의사지만,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요. 물론 여자로서 특별대우를 받게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있으므로 해서 그들이 밑에서부터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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