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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이야기 로마의 만병통치약 ‘테리아카’ 이재담

서양의 오래된 만병통치약으로 ‘테리아카’가 있었다. 그 어원은 그리스어로 야수를 뜻하는 therion에서 파생된 theriaké에서 비롯됐는데, ‘짐승에게 물렸을 때 효과 있다’는 뜻이었으며, 애초에는 뱀·거미·전갈·광견 등의 독이 있는 짐승에게 물렸을 때 쓰는 해독약을 일컫는 단어였다. 그러다 점차 모든 독에 잘 듣는 해독약으로, 좀 더 세월이 흐르자 아예 모든 병을 다 낫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으로 그 뜻이 변했다.

이 약을 처음 만든 사람은 소아시아의 미트라다테스 6세 왕이었다고 전한다. 미트라다테스는 독살을 예방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조금씩 각종 독의 양을 늘려가며 복용했기에 로마의 폼페이우스에게 패한 후 듣는 독약이 없어서 칼로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로마의 저술가 플리니우스는 이 왕이 스스로 다양한 독을 시험하였으며 각종 해독제를 발명한 인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테리아카가 만병통치약이 된 것은 고대 로마가 독약이 번창한 나라였던 탓이 컸다. 로마의 의사들은 자살을 원하는 고객에게 흔쾌히 독약을 처방해주었고,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독약 전문가를 고용하여 틈만 있으면 정적을 독살하려 들었다.
그러자 독을 검사하기 위해 미리 음식을 시식하는 직업도 생겼는데, 이런 사람들이 모여 조합을 결성했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덕분에 소아시아에서 수입된 해독제 테리아카는 상비약으로서의 위치를 굳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뿐 아니라 모든 병에 잘 듣는 약으로 알려졌다.

테리아카에는 아편이 공통적으로 들어있었는데(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유일하게 효과 있는 물질이었다), 독사의 껍질이나 피 같은 각종 독과 관계있는 물질들을 시작으로 건조시킨 비버의 콩팥, 사프란, 고무나무 수지 등 40~70 종류에 이르는 기괴한 재료들이 이 신비한 약의 위약 효과를 높였다. 유럽의 각 도시에는 독자적으로 만든 테리아카가 있었으며, 특히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볼로냐의 것이 유명했다. 각각의 성분과 제조법은 절대 비밀이었다.

독을 물리치기 위해 그 독과 관련된 동물조직 일부와 신비하고 구하기 어려운 특별한 재료를 쓴다는, 소박한 상상력에서 비롯한 이 약은 모든 종류의 질병을 한 번의 투약으로 간단히 고칠 수 있기를 갈망하는 인류의 순진한 소망에 힘입어 일세를 풍미했다. 중세에서 르네상스 이후까지 테리아카는 이집트 미라의 가루, 소 위 속에 생기는 돌인 우황, 전설의 동물인 일각수의 뿔과 더불어 손꼽히던 만병통치약이었다.

19세기까지도 서양 약국에 진열되던 이 약은 ‘통계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치료법들의 몰락과 더불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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