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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교실 공황장애, 현대사회의 유행병인가? 홍진표

인기 TV 드라마였던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이 공황증상으로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지는 장면은 공황장애 및 광장공포증을 수치스럽고 창피한 정신질환이 아니라 돈 많고 매력적인 사람도 걸릴 수 있는 질병으로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독도 공연과 기부행위로 유명한 대중 가수 한 분도 공공연히 자신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음을 커밍아웃한 덕분에 공황장애는 정의롭고 존경스런 사람도 걸릴 수 있는 병이고, 병력이 노출되어도 자신의 인격에 손상이 가지 않는 병임을 알게 하였다.
공황장애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恐)과 당황(慌)을 겪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이 질환은 정신장애인데도 특징적으로 흉부 통증, 숨막힘, 사지 마비감 등 심한 신체증상을 경험하므로 흔히 심장병이나 중풍 등 생명이 위독한 질병으로 오인되기 쉽다.
필자는 심장내과의 요청으로 스트레스 클리닉을 주 1회 진료하고 있는데, 심장내과에 두근거림·흉부 통증·심박동 이상 등을 호소하는 환자 중 많은 분들이 공황장애 같은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데도 심장병으로 잘못 진단받거나 불필요한 심장약을 장기간 투여 받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공황이나 공포장애를 포함하는 불안장애는 인류에게 가장 흔한 정신장애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10명 중 1명 이상이 불안장애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불안장애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진단과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대병이다.

인류에게 가장 흔한 정신장애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뇌가 우월하기 때문이고, 뇌는 인체 장기 중에 가장 섬세하고 정교한 회로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 뇌를 작동하는 프로그램은 원시인 시대에서 큰 진화가 없다고 한다. 원시인으로 살아가던 시대에는 위험한 동물이나 상황에 노출될 경우 싸움-도피 반응이 생존에 매우 중요하였다. 수풀이 흔들릴 때 호랑이의 공격인지 토끼의 움직임인지를 구분하여 도망칠지 싸워서 잡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기능이었을 것이다.
이런 외부 자극이 들어왔을 때 1차적인 판단은 인간의 지혜와 관련 있는 대뇌피질이 아니라 뇌의 하부에 있는 편도(amygdala)가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 편도는 생존에 도움이 되기 위해 위험 정도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을 중시하다 보니 자극을 정교하게 구분하지 못한 채 자동적이고 반사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인 반응을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과거의 자신이 경험했던 기억에 지배당하기 쉽다. 과거에 갈색 뱀에 심하게 놀란 경우 갈색 막대기만 보여도 놀라기 쉽고, 어려서 술 취한 아버지에게 사소한 일로 야단을 맞거나 폭행을 당한 경우 술 취한 사람만 봐도 두렵거나, 직장 상급자에게 조금만 야단을 맞아도 심한 불안감을 경험할 수 있다.

공포증상 동반되는 공황장애
공황장애 환자들은 유전적·환경적 요인으로 뇌의 편도가 과민한 상태에 있으므로 좁은 장소나 터널, 어두운 장소 등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자극에도 편도가 쉽게 흥분한다. 이는 이차적으로 교감신경계가 흥분하고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분비되는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서 심장 두근거림·발한·가슴답답함·어지러움 등의 다양한 신체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공황장애 환자들에게는 흔히 공포증상이 동반되고, 이 공포증상으로 인해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30세 여성인 김 양은 직장동료들과 회식을 갈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자신은 고기를 먹고 싶지 않은데 동료들이 고깃집에 가자고 할 때 구차하게 설명하는 것이 불편해서이다. 그녀가 원래 고기를 먹지 않던 것은 아니었다. 여덟 살 때 시골의 외갓집에 갔을 때 일이 생생히 기억난다. 며칠 전 태어난 새끼돼지들과 그녀가 놀고 있을 때, 외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딸 가족을 위해 근사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방안에서 놀다가 돼지의 비명 소리를 들었고 곧 음식상에 고기가 올라왔다. 가족의 대화를 통하여 아까 자신과 놀던 돼지가 음식이 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머니가 음식을 권유하여 입에 넣는 순간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고, 왠지 이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심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뒤 그녀는 20여 년 동안 고기를 삼킬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음식과 관련된 고통스런 기억들은 식성이라는 이름으로 생활 속에 고착화가 된다. 예를 들어 냉면을 맛나게 먹던 아이가 질긴 냉면이 목에 걸려 숨 막히는 경험을 한 뒤에는 면류를 거부하는 습관이 생기고, 남들에게 냉면을 싫어한다고 말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은 심한 불안을 경험하면 자신의 생활에 심각한 변화가 생겨난다.
과도한 스트레스·음주·카페인 남용·불규칙한 수면습관 등 현대인에게서 흔한 생활습관은 공황장애 같은 불안장애를 증가시킨다. 스트레스나 불안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권유하지만 많은 분들은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한다.
이런 현상은 스트레스 동물실험에서도 관찰된다.
탈출구가 있는 쥐 케이지에서 쥐에게 소리신호를 주고 몇 초 후에 전기 쇼크를 줄 경우 쥐는 소리 신호가 나면 바로 탈출구로 도망친다. 하지만 탈출구를 막고 전기 자극을 몇 번 당하면 쥐는 탈출을 아예 포기하고 전기 자극에 몸을 맡긴다. 그 후 탈출구를 다시 열어놓은 뒤 소리자극을 들려주는 경우 과거에는 탈출하는 법을 알았는데도 쥐는 탈출하려 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굳은 자세로 얼어 있게 된다.
인간은 쥐보다 훨씬 현명하지만 비슷한 원칙이 생활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이로 인해 좌절감을 경험하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체험하는 경우 학습된 좌절감이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삶의 문제에 닥치면 부정적인 생각이 우선 떠오르고, 스트레스의 악영향을 완충시킬 수 있는 다양하고 건강한 삶의 방식을 거부하게 된다.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
인간은 경험을 통하여 세상을 배우는데, 공황증상 등으로 고통스런 경험을 하면 비슷한 자극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작은 고통도 매우 심각하게 체험하고, 이를 유발하는 자극을 적극적으로 피한다. 비행기 타는 것이 두려워 가족여행을 가지 못하고, 버스나 지하철 타는 것이 두려워 외출을 기피하고, 쇼핑을 하고 싶어도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지 못한다.
불안증상을 보이는 분이 내원하는 경우 갑상선질환, 심장질환, 간질 등의 가능성을 배제한 후 정신과 진단을 내린다. 공황장애 치료제로는 2세대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처방하는데 대부분 2주 이내에 증상의 강도나 빈도가 많이 호전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외에 자율신경계 흥분을 경감시킬 수 있는 복식호흡, 긴장이완 훈련, 요가 운동요법 등 행동요법을 통하여 스스로 증상을 통제하는 능력을 키우고 공황장애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 증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치료 기간은 6개월 내외로 예상하는 것이 좋다. 공황장애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발걸음을 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진단을 내리면 쉽게 치료되는 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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