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우리는 정담인 “설립자 본받아 원칙 지키며 살았다” 고선희

지난 3월,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 회장 선거에서 회장에 당선된 김양수(45) 한빛맹학교 교장에게는 늘 ‘시각장애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전국 특수교사 1만7천여 명의 모임인 이 단체에서 장애인 최초이자 최연소 회장이 된 김 교장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열여섯 살에 시력을 잃었다. 세 살 아래인 동생(용수)마저 같은 병 진단을 받자 크레인 기사였던 아버지와 채소 행상을 하던 어머니는 절망감에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고, 다행히 온 가족이 다시 깨어나자 아버지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두 아들을 한빛맹학교에 입학시켰다.

부드럽고 따뜻하던 설립자의 손
1985년 시각장애인 최초로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하여 단국대 특수교육과에 입학한 김 교장은 아산재단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에 열중하여 7학기 만에 조기 졸업했다. 모교인 한빛맹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시각장애인 최초로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과에 입학한데 이어 2003년, 한빛맹학교 최연소 교장과 사회복지법인 한빛재단 이사장을 동시에 맡았다(그의 동생은 한국과학기술원 수학과에 입학해 국내 첫 시각장애인 이공계 박사가 됐다).
학교 시설을 현대적으로 개선하고, 시각장애인 뮤직 컴퍼니인 한빛예술단과 중증장애인 요양시절인 효정비전타운 등을 설립한 그는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열심히 노력하여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인정하고 칭찬하여 그런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설립자의 바람이 아니었을까요?”

1989년 아산재단 장학증서 수여식 때 학생 대표였다는 김 교장은 아직도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노동자 출신이라고 하여 손이 거칠 줄 알았는데, 악수를 하던 설립자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는 것이다.
그는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좌절은 사치라고 여겼고, 눈이 안보여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지만 대학생활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자신의 몸 하나 추스르기 어렵던 시절이어서 대학생활은 낭만이 아닌 생존 그 자체였고, 그래서 외부활동에 신경 쓸 여력이 전혀 없었다. 다행히 그때 받았던 아산장학금이 자신은 물론 부모님께 큰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

“시각장애인 최초의 교육부 장관 꿈꾼다”
“설립자는 굉장히 청빈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김 교장은 설립자를 본받아 원칙을 지키며 깨끗하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하면서, 학교와 재단을 관리하는 일이 버겁지만 올곧은 사람이 되려고 항상 최선을 다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추진한 일 중에서는 시각장애인 80여 명으로 이루어진 한빛예술단을 설립하여 장애인들이 국내외 공연을 통해 예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 가장 뿌듯하다고 말한다.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 회장은 봉사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특수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이루고 물러나고 싶습니다.”
그는 연합회를 역동성 있는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깨끗하게 일하다가 깨끗하게 나오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애는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힘이 들겠지만 꿈을 갖고, 하고자 하는 의지를 굳건히 세우십시오. 세상에 못할 것은 없습니다.”
항상 꿈을 지니고 산다는 김 교장은 자신이 꿈을 이뤄온 과정이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롤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앞으로는 시각장애인 최초의 교육부 장관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열심히 준비하고 단련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담회 활동도 열심히 하려고요. 그동안은 살아내기에 바빠서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는 후배들과 동문님들께 다가가겠습니다.”
살면 살수록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김 교장은 그동안 정담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내비쳤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습니다. 저로 인해 많은 시각장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혜택 받은 자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한빛’. ‘한 줄기 빛’이나 ‘큰 빛’으로 풀이할 수 있는 이 말을 좋아한다는 김 교장은 한빛맹학교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시각장애로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밝은 한 줄기 큰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 정담회(淨淡會) : 1977년 2학기부터 배출된 아산장학생들의 모임. ‘담담(淡淡)한 마음을 가집시다’라는 정주영 재단 설립자의 휘호에서 명칭을 따왔다.

이미지 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