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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문학청년, 세계적인 의학자로 우뚝 서다 유인종

“제1회 아산의학상 시상식이 열렸을 때 수상자인 김효수 서울대 교수를 축하해주러 참석했기 때문에 아산의학상이 어떤 상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의학상이죠. 물론 나도 상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수상할 줄은 몰랐어요. 아산재단으로부터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믿기지 않더군요. 지금까지 최고의 임상의학자들이 상을 받았는데, 우리처럼 어두운 곳에서 일하는 기초의학자에게 상을 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지금까지 상을 받은 분들이 너무 훌륭한 분들이어서 아산의학상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됩니다.”
고규영(55)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기초의학자를 조명해준 재단에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실 박사학위를 취득한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그의 연구활동은 재정과 지원, 관심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정말 고생 많았다”며 지난날을 돌이켜보던 그는 신개념 암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 상을 수상하게 됐다.

수십만 명 살리기 위해 신물질 개발
고 교수는 이미 2004년에 건강한 혈관 생성을 유도하는 단백질인 콤프앤지원(COMP-Ang1)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의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콤프앤지원은 당뇨병 합병증인 족부궤양뿐만 아니라 혈관질환을 동반하는 심장병(심근경색·심장허혈증)과 뇌졸중 치료에도 적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암 성장과 전이를 차단하는 이중혈관 차단제 개발이라는 독창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콤프앤지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물질입니다. 그 덕택에 우리 실험실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죠.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지금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런 새로운 물질을 개발해 수십만 명을 살리는 게 우리 기초의학자들의 보람입니다.”
그의 연구는 혈관과 림프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심장의 병든 혈관을 건강한 혈관으로 만들고, 암혈관처럼 활동이 너무나 왕성한 혈관은 성장을 억제하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연구를 통해 암과 심장병을 치료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다.
현재 예비 물질이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그와 그의 실험실(혈관 및 줄기세포연구실) 연구원들은 본 물질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게 이루어지면 제약회사 같은 생산하는 쪽에 넘기고, 그 다음에 임상의학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가 개발하는 물질로는 대장암과 신장암 그리고 망막질환의 치료를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의 연구 성과는 국제적으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2010년 8월, 암 분야의 최고 권위지인 <캔서 셀>(Cancer Cell)과 2011년 1월 <이뮤니티>(Immunity)지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었고,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저명한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학술지에 1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2010년 10월에는 미국혈액학회가 발간하는 혈액학 분야 최고저널인 <블러드>(Blood)지의 임기 5년인 편집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매년 20여 회 국제 학회에 초청되고 있다.

의대 진학 위해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
고 교수는 1957년 전북 전주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20여 년 전 별세한 부친(고석구)은 고건 전 총리와 먼 친척으로, 평생 전북도청에서 근무한 공무원이었다. 공무원 봉급만으로는 자식들 교육이 어려워 충남 한산이 고향인 모친(나정운·2009년 별세)이 모시를 팔아 학비에 보탰다. 고 교수처럼 의학자의 길을 걷는 형제는 없다. 큰형과 셋째형은 교직(영어 교사와 전북대 체육학과 교수)에 있고, 둘째형과 넷째형은 회사원(한국전력과 토지주택공사 근무)이다.
전주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소설가였다. <날개>로 유명한 이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학년 때 친구와 여행을 갔다가 결핵에 걸려 전주도립병원에 한 달간 입원했는데, 50명이나 되는 가난한 결핵 환자들이 집단으로 입원해 있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년여의 병치레 후 학교로 돌아갔고,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했다. 1977년 전북대 의대에 합격한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것이 동기부여가 되어 열심히 공부했고, 다시 한번 인생을 바꾸는 경험을 한다.
“본과 1학년 방학 때 생리학 실험실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 실험실에서는 신장 기능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 실험하는 것을 보고 연구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때 연구를 통해 신약이나 치료법을 개발하면 수십만 명의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은사인 조경우 교수님의 권유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바로 의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돈도 안 되고 힘들다며 만류하는 연구자의 길을 자신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의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후에는 전북대와 포항공대에서 교수로 일했고, 2003년부터는 ‘의사 출신 1호’라는 기록을 세우며 KAIST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KAIST 최고의 명예직인 KAIST 특훈교수(Distinguished Professor)에 임명됐다. 특훈교수는 70세까지 연구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현재 그를 포함해 8명이 선정돼 있다. 
“대부분의 KAIST 교수님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 외국에서 학위를 받으셨어요. 지방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나는 이력으로 보면 다른 교수님들과 상대가 안 되죠. 어떻게 생각하면 지방 촌놈이 세계적인 학자가 됐다는 게 기적 같기도 합니다. 내 실력과 노력도 있었지만, 유욱준 KAIST 의과학대학원장, 박성광 전북대 교수, 이균민·김선창·김인준 KAIST 교수 같은 분들이 많이 도와준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살아라
고 교수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7시 반쯤 퇴근한다. 지난해 6월까지는 아침 8시 반에 출근해 밤 10시 반에 귀가했는데, 지병인 위축성 위염이 많이 나빠져 생활 패턴에 변화를 주었다. 일단 귀가해 저녁을 먹은 뒤에는 외출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기초의학자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항상 다음의 8가지 사항을 당부한다. 기초의학은 매우 외롭다는 걸 인식하라, 그렇지만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라, 의사의 권위의식을 버려라, 군복무를 활용해 인생을 신선하게 하는 계기로 삼아라, 해외연수를 2년 이상 다녀와라, 좋은 연구업적을 쌓아라, 현재 일에 집중하며 새로운 지식을 흡수해라,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살아라.
“내 당부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 실험실 연구원들은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그런 인적구성 덕택에 우리 실험실은 이미 세계적인 랩(Lab, laboratory)에 도달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세계에서 연구성과가 가장  뛰어난 선도 랩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결혼식은 본과 4학년 때인 1982년 2월에 올려 내장산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같은 해 7월에 딸(명원)을 출산했다. 부인은 원광대 음대 대학원을 졸업한 백승희(53) 씨로 피아노를 전공했다. 그가 대학원을 다니고, 군의관으로 복무를 할 때의 생활비는 대부분 부인이 피아노 레슨을 해서 감당했다.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자녀들은 그의 표현대로 ‘좀 특별한’ 길을 걷고 있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배운 딸은 홍익대 부근 클럽에서 록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경희대 생명과학과를 졸업한 뒤 지금은 바이오기업에 다니고 있고, 아버지가 아산의학상을 받는 시상식장에서 빼어난 솜씨로 축가를 불러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아들(봉인·27)은 예술학교가 아닌 일반 중학교 1학년일 때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해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2008년 평양에서 열린 통일음악회에 첼리스트로 참석하는 한편 하버드대학을 거쳐 현재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음악과 과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그의 행보 역시 아버지 못지않게 관심의 대상이다.  

■ 고규영 교수 약력   
    - 1957  전북 전주 출생
    - 1983  전북대 의대 졸업
    - 1985  전북대 대학원 졸업(의학석사)
    - 1990  전북대 대학원 졸업(의학박사, 생리학)
    - 1990~1992  미국 코넬대 의대 박사 후 연구원
    - 1992~1995  미국 인디아나대 심장연구소 선임연구원
    - 1995~2001  전북대 의대 조교수·부교수
    - 1997~2003  과학기술부 혈관내피세포연구단 연구단장
    - 2001~2003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부교수 
    - 2003~현재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 2011~현재  KAIST 특훈교수

■ 수상 경력
    - 1994  심장연구 우수상(미국심장학회)
    - 2002  화이자 의학연구상(대한의학협회)
    - 2007  분쉬의학상(대한의학회)
    - 2011  경암상(경암교육문화재단)
    - 2012  아산의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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