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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담인 “아산장학금 덕택에 법관 꿈 이뤘다” 고선희

아산재단은 1977년 2학기부터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2만1천여 명의 장학생을 배출했다. ‘정담회(淨淡會)’는 장학생들이 1979년 9월에 만든 자치모임이다. 1만여 명의 정담회 동문 중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회원을 만나는 칼럼을 신설했다.

서울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으로 2000년에 모교인 고려대로 적을 옮긴 정영환(51) 교수.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원 때까지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는 정 교수의 요즘 화두는 “내가 받은 혜택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 것인가?”이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 교수는 중요한 직업이긴 하지만 좋은 직업이 되기는 어려운 것이 법률가라는 직업인만큼 좋은 법률가를 양성하는 것이 현재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엄청난 추진력과 따뜻한 정 지닌 아산
“민사소송의 분쟁을 푸는 과정에서 법률가는 소송 당사자들의 엉켜있는 마음을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으로 정죄하는 것은 마지막 수단인 것이죠.”

정 교수는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민사소송법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많은 대답이 나오지만, 정 교수는 사법상의 권리관계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엉켜 있는 마음을 푸는 일련의 작업이라고 말해준다. 법은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 추구권을 회복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하며, 법률가는 인간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은 상식에 기초해야 하죠. 힘들고 어려우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법을 멀게 느끼는 순간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위에 군림하게 된다는 정 교수는 법관으로 12년, 교육자로 11년을 지내오면서 가슴 속에 점점 또렷하게 새겨지는 것은 ‘사람’이라고 한다.

“아산 정주영 재단 설립자는 엄청난 추진력과 따뜻한 정을 지니신 분 같아요. 기업의 공적인 책임이 전무했던 시절에 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어려운 일을 하신 걸 보면 정말 대단하신 분인 거죠. 그분의 정신이 아산재단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 게 아닌가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힘들어하면서 등록금 걱정까지 해야 했던 대학 시절에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된 것이 법관의 꿈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정 교수는 과수원을 하면서 일곱이나 되는 자식을 가르쳐야 했던 아버지께서 무척 고마워하셨다고 회고했다.

“농활 때 ‘노가다 공화국’이라는 풍자극을 했는데, 법대생이라는 이유로 제가 판결문을 작성했죠(웃음). 정담회 활동은 제 학창시절 중에 가장 소중한 기억입니다.”

정담회 동문들끼리 장학회 설립 추진 중
사법시험 후, 진이 빠진 상태로 포항에 농활을 갔다는 정 교수는 그곳에서 농사일도 돕고, 아이들에게 수학도 가르치면서 봉사의 보람과 정담인들의 정을 느끼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도 자체적으로 뭔가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담 동문들끼리 장학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아산장학생이 배출되기 시작한 지 벌써 34년. 한 세대가 흐른 만큼 이제는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책임과 의무를 보여줘야 할 때가 되었다고 강조하는 정 교수는 현재 정담회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동문들에게 장학금을 모금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2천여만 원을 모았으며, 5천만 원이 되면 재단과 함께 작은 장학회를 설립할 예정이다.

“한 학기에 한 명의 학생에게만이라도 가슴 속에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그 부분을 많은 학생들이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죠.”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지만, 법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이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라고 말하는 정 교수는 10년 가까이 강의한 민사소송법을 나름대로 정리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2008년, 미국 워싱턴대학에 교환교수로 가면서 1년 동안 학교와 인근 도서관에서 <신민사소송법>이라는 책을 썼다.

“신실한 사람, 처음과 끝이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은 학문에 집중하여 성경에 있는 분쟁 해결방식에 관한 연구도 책으로 출간하고 싶고, 다양한 민족을 한데 아우르는 미국의 민사소송 제도를 우리나라에 적용할 방법에 대한 연구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삶을 단순화시키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직업일수록 형식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정 교수는 법률가로, 교육자로 또 정담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늘 생각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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