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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장학생 농촌봉사 오지 마을에 퍼진 젊은 웃음소리 임유미




첩첩 산 속에 들어앉은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 소양강댐이 들어서면서 마을 대부분이 수몰된 채 내륙의 섬이 된 오지마을이다. 200여 가구가 북적이며 살던 시절은 옛이야기가 되고, 지금은 스물한 집만 호젓하니 남아 있다.
연일 땡볕과 폭우가 오락가락하는 여름날, 조용하던 마을은 젊은이들의 열기로 들썩들썩했다. 아산사회복지재단 장학생들의 자치 모임인 ‘정담회’가 하계농촌봉사활동에 나선 것이다. 대학 재학생과 동문으로 구성된 농활대원 60명이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조교리에 머물며 일손을 도왔다.

선후배 간 정을 끈끈하게
조교리엔 외지 사람들이 방문하는 일이 드물다. 홍천에서 들어오는 길이 뚫린 것도 최근, 그전엔 춘천에서 2시간 남짓 배를 타고 오는 길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농활도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마을에 이렇게나 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와준 것만도 고맙구만요. 이제야 사람 사는 동네 같소.” “노인들이 태반이라 젊은 일꾼이 보통 귀한 게 아녀. 밥들 많이 먹고 힘 좀 팍팍 써주더라고!”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과 함께 6박 7일간의 농활을 시작한 지 여섯째 날, 농활대원들은 홰를 치며 목청껏 우는 첫닭 소리와 함께 일어나 하루를 열었다. 지난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늦게 잠든 친구들은 눈 뜨기가 쉽지 않지만, 공동체 생활에 예외란 없다. 해 뜨면 논밭에 나가 일하고 해지면 집으로 돌아와 쉬는 것이 농촌의 생활 리듬. 농활대원들도 서둘러 아침을 지어 먹고 일터로 나갔다. 오늘은 마을 연중행사인 도로 청소에 합류하기로 했다.
울쑥불쑥 자란 풀들이 길가에 지천, 가로수로 심어놓은 벚나무 묘목까지 휘덮고 있다. 대원들이 낫과 호미로 나무 주변 풀들을 뽑아 놓으면, 마을 어른들이 뒤따르며 예초기로 말끔하게 베어냈다. 30여리 길을 오가며 작업하는 사이 해는 중천으로 옮겨가고 볕은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졌다. 걸음도 손놀림도 점점 처질 무렵 “기왕 하는 일, 힘들 내서 끝까지 열심히 합시다.” 최고참 천진권 동문이 독려하자 “알았당께~” “그러지유~” “열심히 한다 아이가.” 짐짓 사투리로 장단을 맞추며 흥을 돋우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보, 일하는 데는 웃음만한 에너지가 없다. 
전국 팔도에서 모여든 회원들, 정담회 활동을 하며 더러 얼굴을 익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처음 만난 사이다. 하지만 정담회원이라는, 농활을 함께 한다는 공통분모만으로도 금세 친구가 되었다. 함께 일하고 먹고 자고,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유대감이 깊어졌다.  
“농활을 하면서 좋은 친구들과 선후배님을 많이 사귀었어요. 주말에는 동문 선배님들이 맛있는 것을 그득그득 싸들고 찾아와서 일손도 보태주시고, 밤에는 대화의 자리도 마련해 주셨습니다. 1기부터 31기까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담회가 이어지고 있거든요. 여기 와서 ‘정담인’이라는 공동체 의식과 자긍심이 더 깊어졌습니다.” 김국병 봉사부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농활은 1979년에 시작돼 매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풀도 뽑고, 옥수수도 따고, 배추도 심고
도로 정비를 거뜬히 마치고 나자 때맞춰 들리는 반가운 소리. “자아, 자! 새참이 왔어요, 새참.” 마을 어른들이 수박과 참외와 삶은 옥수수를 한 보따리 챙겨들고 등장했다. 비지땀 흘려 일한 뒤에 먹는 새참 맛을 무엇에 비할까?  맑은 물이 콸콸 흐르는 계곡에서 땀을 씻고 새참을 먹으니 더위도 피로도 단박에 날아가 버린다.
농활 기간 내내 동네는 거의 잔칫집 분위기다. 농활대원에게 꼬박꼬박 점심을 대접하면서 덩달아 주민들도 회식을 했다. 한 동네에 살면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 자리에 모이기가 힘든 판인데,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주방 뒤편에 솥을 걸고 면을 삶아 즉석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을 만들어 먹는 오늘도 동네잔치나 다름없다. 주민들과 농활대원들이 어우렁더우렁 어울려 자장면을 먹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지나가는 우체부 아저씨까지 기어코 불러서 함께 먹는 시골 인심이다.
농활대를 이끌어 가는 안정환 대장은 “첫째 날 밤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저 왔다가는 농활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확실하게 힘이 되는 농활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서투른 점이 많지만 너나없이 협조하면서, 모두가 진심으로 참여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라며 대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재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농활에 참가한다는 김지성 군이 덧붙여 말했다.
“어제는 이장님댁 옥수수 밭에서 수확하는 것을 도와드렸어요. 이장님이 따놓으신 옥수수를 커다란 자루에다 담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거예요. 밭떼기 상인에게 하루하루 정해진 양을 내주어야 해서 일을 미룰 수 없는 형편이었어요. 모두가 군말 없이 아니 오히려 더 즐겁게 일했습니다. 비 맞은 생쥐 꼴이 된 서로를 보고 킬킬거리면서 말이에요.”
오후엔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고추를 따고 한 팀은 배추 모종을 심었다. 밭주인 할아버지가 나누어준 바구니와 비닐포대를 꿰차고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기 시작했다. 궂은 날이 많아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다행히 농사가 잘되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붉은 고추가 주렁주렁했다. 시골에서 태어나 농사일을 거들어본 친구들은 확실히 손이 빨라 도시내기들의 부러움을 샀다. 밭두둑을 성큼 앞서가는 친구의 바구니엔 어느새 붉은 고추가 가득했다.
한쪽에선 여리디 여린 배추 모종을 조심조심 심어 나갔다. 어린 일손들이 못 미더운지 밭두둑에 서서 감독을 하던 아저씨도 곧 합격 판정을 내렸다. 배추를 잘 키워서 김장철이 되면 내줄 테니까 와서 한 보따리씩 가져가라는 말에 너나없이 눈도장을 찍었다.



동네 주민들과 벌인 잔치 마당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고추를 따고 배추를 심고 나더니만, 다리가 저리다느니 허리가 욱신거린다느니 엄살과 하소연을 쏟아놓는다. 그 속사정을 익히 아는 동네 아저씨들이 당장 몸을 풀자고 제의했다. 동네에서 4~50대는 ‘젊은이’에 속한다. 그 몇 안 되는 ‘젊은이’들이 학생들에게 족구시합을 하자며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우리가 지면 돼지 한 마리를 내놓겠다는 말에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운동장에 후다닥 네트를 설치하고는 금방 선수들을 투입했다. 선수들의 맹활약에 양쪽 응원꾼들이 달라붙어 흥을 더해갔다.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이영선 이장이 한마디 한다.
“젊은 학생들이 참 대견합니다. 비가 오든 뙤약볕이 내리쬐든 군소리 않고 밭일을 하더군요. 삼밭에 풀도 매주고 가슴께까지 땅을 파서 배수로도 뚫었지요. 연로하신 분들이나 농사를 많이 짓는 댁 일을 돕게 했는데요, 혼자서 하면 하루가 좋이 걸리는 일도 여럿이 달라붙어 하니깐 순식간이더만요. 서울아산병원에서 의료봉사를 나왔을 때도 학생들이 접수를 봐주고 안내를 해줘서 수월했지요. 며칠 사이에 우리 동네가 확 젊어진 것 같습니다.”
이장님의 칭찬에 농활대원들은 몹시 쑥스러워하면서도 한편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정담회 30기 회장 박은선 양이 농활 소감을 밝혔다. “주민들과 말씀을 나누면서 농촌의 현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됐어요. 모두들 열심히 일하시는데 자유무역협정(FTA)협상 등으로 갈수록 농사짓기가 어렵다고 하시니 가슴 아픕니다. 힘들어도 고향에서 누대로 내려온 가업을 이어간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하신 어르신의 말씀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마지막날 저녁에는 약속대로 조교분교에서 돼지고기 파티가 열렸다. 주민들과 농활대원들이 얼싸절싸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며 신명 풀이를 했다. 농활대원들이나 조교리 주민들에게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시간이 밤늦도록 이어졌고, “정담회 만세, 조교리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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