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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 생활의 발견 우애령

이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 이름이 바로 ‘생활의 발견’이다. 원래 이 이름은 임어당의 오래된 수필집 제목으로 낯이 익은 말이다. 임어당은 이 책에서 특유의 해학과 성찰을 지니고 인간의 위선을 벗겨내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유머 섞인 연민을 보여준다.

이 코너에 나오는 남녀는 식당이나 장례식장이나 피서지 등에서 만나 언제나 한쪽이 헤어지자고 심각하게 말을 꺼낸다. 이유는 다양하다. 아직 젊은 나이에 결혼에 인생을 파묻고 싶지 않아 날개를 펴고 유학을 가고 싶다거나, 초라한 상대방의 배경에 대한 집안의 반대가 심하다거나, 몇 번째 고시에 떨어진 남자가 보란 듯이 한 번에 고시에 붙은 여자가 부담스럽다거나, 여자가 원래 사귀던 남자에게 돌아가기로 했다는 등이 그 이유들이다.

흥미 있는 점은 이렇게 심각하고 중차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에도 세속적인 관심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다.
“무슨 그런 이야기를 삼겹살집에서 하냐?”
“지금 장소가 중요해?”
두 사람이 항상 갈등을 보여주기 전에 나오는 대사이다.

그렇다. 바로 이 말이 이 코너의 핵심이다.
아무리 비관적이거나 낭만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어도 우리들의 육체나 사회적 관계가 요구하는 소소한 일상은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 울다가도 우리는 국밥을 떠먹고, 아무리 사랑에 빠져 있어도 물건을 사러 가서 가격을 에누리하면서 흥정을 한다.

매스컴을 뒤덮은 수많은 신파조 드라마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만 하고 슬픔에 빠진 사람은 슬퍼만 한다. 그리고 분식집이나 닭백숙을 삶아 파는 초라한 집에서 인생의 중대사를 논의하지 않는다. 배우들은 스태프가 오랫동안 섭외해온 바닷가나 숲의 아름다운 장소에서 사랑의 눈빛을 나누고, 애달픈 음악을 배경으로 눈 내리는 창가에서 이별의 대화를 나눈다. 당연히 생활은 실종되고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장소인 가정이나 회사는 사람 사는 곳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차가운 모델하우스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이 코너를 보고 있으면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를 볼 때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 속에서도 삶의 씁쓸한 비애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저절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면서 인생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개그맨들이 꾸미는 이 프로를 내가 즐겨 보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렇지 않아도 무게가 만만치 않은 인생의 행로에서 위선적인 분장을 하고 한껏 폼을 잡으려고 드는 사람들에게 농담을, 그러나 연민이 담긴 농담을 던지는 이 프로에서 생활의 발견을 다시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생활은 실종되고 가치관도 실종되고 인간의 참모습도 실종된 채 성형미인과 명품과 가짜세트가 판을 치는 드라마들 틈에서 진정한 인간의 면모를 웃음 속에서 깨우치게 해주는 이 코너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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