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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를 찾아서 제자 키우기에도 열정적인 간(肝)질환 분야의 대가 이영균

“의사가 되기 전 어렸을 때부터 제가 한 번도 의사가 아니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또 진료만큼 제자 키우는 데 관심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제가 해왔던 연구들을 동료나 후배들이 이어갈 수 있게 되니까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여름날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교수 연구실. 바쁜 진료일정 중 틈을 내 만난 정영화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의 첫인상에서는 학자다운 편안함이 느껴졌다. 느림의 미학이랄까.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던지는 말에도 차분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무더운 여름날이었지만 정 교수의 연구실이 시원한 숲속 같은 느낌이었던 것은 비단 연구실을 가득 채운 화초 때문만은 아니었다. 학자에게서 풍기는 여유로움과 인자함, 의사로서 가져야 할 자비로움 때문인 듯했다.
한없이 자비로워 보이는 그도 젊은 의학자 때는 한없이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열정적인 것과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다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이가 든 요즘에서야 새삼 깨닫는다고 말한다.
“젊었을 때는 가장 앞서가는 치료방식을 선호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것보다 환자들과 시간을 더 같이 보내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3∼4시간의 진료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일을 한다는 생각에 150여 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했다면, 지금은 그 절반의 환자를 보면서 더 많은 설명을 해줍니다.”

박사 제자를 많이 배출한 의사
그의 열정적인 면은 아직까지도 진료와 연구 패턴을 보면 남아 있다. 정 교수의 진료와 연구 패턴은 토론이다. 학문은 토론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원칙에서 만들어졌다.
“어떤 의견이 나오면 “아니다”, “그렇다”라고 서로 토론하면서 의견을 주고받고 해야 학문이 발전할 수 있어요. 의학은 법이나 성서와 달라서 윗사람이 이야기하는 대로 받아만 들이면, 발전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정 교수는 나이차이가 25년 이상 나는 제자들에게도 의견을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의료진들이 제 의견을 반론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한동안 ‘이제 그만할 때가 됐구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같이 파이팅하고 연구해야 하거든요.”
이런 분위기를 바꿔 보기 위해 정 교수는 최근 중간급의 의료진들을 활용한다. 실험 등의 연구를 수행할 때 중간급 연구진을 통해 토론을 시켜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이다. 젊은 의료진의 의견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실제 요즘 그의 관심사는 제자 키우기에 있는 듯하다.
“진료도 중요하지만 제자 한 명, 한 명 키우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의사로서 대학교수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가 이곳(서울아산병원)에서 박사 제자를 가장 많이 배출했을 거예요. 한 30명 이상 될 겁니다.”
물론 그의 제자 키우기 열정은 의사로서 환자 돌보기와 연관되어 있다. 그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실적을 동료나 후배들이 이어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어떤 원칙들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런 의지가 반영돼서인지 실제 저와 같은 패턴으로 연구하고 진료하는 후배 의사를 비롯해 교수들이 전국에 참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간 이식을 본격적으로 시작
정 교수는 국내에서 간 이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팀으로서도 유명하다. 정 교수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 지었다.
“지난 1992년 서울아산병원의 이승규 교수와 같이 독일 하노버 의과대학에서 간이식 연수를 하고 국내에 돌아온 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가 국내에서 처음은 아니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었죠. 처음에는 ‘실패하면 죽는다’는 생각에 긴장도 많이 하고 부담도 많이 가졌죠. 마침 이식 첫 환자부터 다섯 번째 환자까지 모두 제가 관리하던 환자였습니다. 그래서 환자분이 퇴원할 때까지 저도 집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는데 결과가 좋았어요. 오래 지났는데 지금까지 살아계신 환자도 많습니다.”
간 전문의인 만큼 간질환 환자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간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원인인 간염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방접종을 하고, 혈액으로 감염될 수도 있으니 면도기나 칫솔 등에 청결을 유지하고, 알코올과 지방간, 비만 등도 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환자들에 대한 섭섭함도 표현했다. 만성간질환 환자들이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지 먹는다는 것이다. 의료진이 말려도 소용없다.
“민들레, 가시오가피, 헛개나무 등 소위 말하는 간에 좋다는 식품들은 환자 상태에 따라서 상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그 환자의 조건과 상태에 따라 그런 식품만 섭취하지 않게 해줘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 교수는 약을 처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진료 환자의 절반 이상에게 처방을 하지 않고 생활패턴에 대한 지침 등 교육만 한다. 정 교수는 “사실 환자들의 생활패턴을 잘 교육해서 설득하고 따라오게 하는 게 치료의 기술입니다. 요즘에는 환자들이 잘 따라오고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끝으로 “우리나라에서 간질환은 40∼50대에게 많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잘 관리하면 오랫동안 큰 문제없이 정상에 가깝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할 때 전문의의 도움을 잘 받아야 합니다. 병원에 제대로 오지 않고, 의사에 대한 신뢰도 없는 환자들이 이 병원 저 병원을 쇼핑하듯이 다니면 본인의 건강만 나빠집니다. 꼭 믿을 만한 병원의 의사를 만나서 신뢰하고 오래 관리하면 좋겠습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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