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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의료서비스 “주민 건강, 보령아산병원이 책임집니다” 김완영

며칠 전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이 먼저 맞아주었다. 황사와 송홧가루가 뒤섞여 불어오는 요즘 바람은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5월 20일)은 충남 태안해양경찰서가 도서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자체 이동봉사를 실시하면서 보령아산병원에 의료봉사를 요청해 합동으로 봉사활동을 실시하기로 한 날이다. 사실은 어제로 일정이 잡혔는데 강풍으로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바다에 배를 띄울 수 없어서 연기되었다. 그래서인지 우중충한 아침 날씨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다.

보령아산병원과 태안해경의 합동봉사
혹시나 하여 해경 경비정의 출항 여부를 몇 차례 확인한 뒤 강유섭 인턴 선생님, 고미화 간호과장님, 이은서 간호사, 김은지 약제과 직원 그리고 필자 등 병원 직원 5명은 삽시도 주민들에게 처방해 드릴 약 상자 등을 준비하여 오전 10시 30분에 대천항을 출발했다.
비바람이 약간 거셌지만 태안해경의 경비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살을 가르며 200여 가구 5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섬, 삽시도(揷矢島)로 향했다.
행정구역상 충남 보령시 오천면에 속하는 삽시도는 지형이 마치 화살이 꽂힌 활(弓)모양과 같다고 하여 삽시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충남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대천항에서 13km쯤 떨어져 있으며, 대천항에서 운항하는 여객선으로는 1시간 정도가 걸린다. 
해송숲이 울창한 거멀너머해수욕장과 서해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백사장과 바다가 깨끗한 진너머해수욕장 그리고 조개잡이 체험이 가능한 밤섬해수욕장이 있어서 사시사철 피서객과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경 경비정은 여객선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서 대천항을 떠난 지 20여 분만인 10시 50분에 삽시도에 도착했다. 섬에 내리자 비릿한 바다냄새가 제일 먼저 반겨주어 오감을 들썩이게 한다. 비가 계속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해경의 관계자들과 섬 주민 몇 분께서 미리 기다리며 육지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편으론 좋지 않은 날씨에도 방문해준 데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함께 표시하면서….
보령아산병원과 태안해경은 몸이 아파도 의료기관을 찾기 어려운 도서지역 및 오지를 매년 합동으로 방문하여 의료 및 대민 봉사를 실시하고 있다. 보령아산병원은 ‘지역주민의 건강은 보령아산병원이 책임진다’는 결의를 실천하고, ‘바다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태안해경은 무료 법률상담을 실시하여 지역 주민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다.

“아플 시간도, 치료할 짬도 없다”
우리 의료진은 오전 11시가 조금 지나 삽시도 복지회관에 임시진료소를 설치했다.
“가야는디 가지도 못하고 여태껏 살아서 남아 있네…!” 
삽시도 주민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김안임(93) 할머니가 막내아들의 부축을 받고 들어오면서 한마디 한다.
“언니, 혼자 가지 말구 같은 날 같이 가야 유~.”
김 할머니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남월난(89) 할머니가 맞장구치자 진료소는 금세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두 분은 삼시 세끼 청정해역에서 거둬들인 농수산물을 주식으로 삼아서 고령이지만 이토록 정정하고 순수하신 것 같다. 피부 또한 섬에 사는 분 같지 않게 매끈해서 말 그대로 18세 꽃순이마냥 곱기만 하여 인기가 절정에 오른 두 할머니들은 부끄러운지 몸 둘 바를 몰라 하시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귀여워 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 다정다감해 보여 두 분께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 드렸더니 남월난 할머니가 “아까두 많이 찍은 거 같은디~ 또 찍게? 그만둬~!” 거절한다.
그러자 주위 분들이 억지로 두 분을 붙여 놓아 한 컷 찍을 수 있었다.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진료하기 전 접수 때문에 김안임 할머니께 연세를 여쭤보았다.
“나이? 글씨~ 작년까지 세다 잊어버렸네~.  그냥 대충 적어~” 하면서 몇 개 안 남은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웃는다. 할머니 생각 같아선 더 이상 세월에 나이를 얹어 가기가 싫으신가 보다.
임시진료소 창문 밖으론 아침에 기운 없어 보이던 하늘에서 한 줄기 빗줄기가 내리친다. 바지락, 굴, 미역 채취 등 바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해야만 하는 섬 주민들. 하루 종일 힘든 일로 인해 온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욱신거리기 때문에 몸 자체가 종합병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그러면서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아플 시간도, 아파도 제때 치료할 짬을 낼 수도 없다는 말씀을 들을 땐 괜스레 가슴 한 쪽이 뭉클해진다.

3시간 동안 주민 60여 명 진료
지금은 500여 명의 섬 주민 중 외지인들이 적지 않게 이주해 와 원주민은 옛날처럼 많지 않지만, 정 많은 섬 주민의 특성상 한 가족처럼 정감 있게 지내는 그들 삶의 모습에서 충청도의 인심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하다.
오늘은 짓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60여 명의 주민들이 진료실을 방문했다. 우리 의료진은 그분들의 혈압과 당뇨를 체크해 드리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지어 드렸다.
바다에서의 노동을 잠시 중단한 채 허리를 구부리거나 지팡이를 짚고, 혹은 어린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진료를 받기 위해 힘들게 임시진료소로 향해 주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억을 뒤로 하고, 이제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원래는 오후 3시까지로 진료가 예정돼 있었지만 기상이 다시 급격히 나빠져 오후 2시 반에 진료를 마무리하고 다시 해경 경비정에 올랐다.
경비정에 몸을 싣고 비바람에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늘 만나 뵌 어르신들의 건강을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갈매기 여러 마리가 우리들에게 무슨 얘기를 전하려고 하는지 끼룩끼룩하며 경비정의 주위를 맴돌며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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