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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고 물 건너 서울아산병원·MBC ‘느낌표’팀의 의료봉사 박현숙

“대한민국 최초의 섬 버라이어티, 산 넘고 물 건너! 바다를 건너다! 저희가 서있는 이곳은 전남 진도군에 있는 팽목항입니다.”

촬영에 들어간 진행자 이윤석 씨의 코가 빨갛다. 거센 바닷바람과 자욱한 안개는 꽃샘추위의 맹위를 부추긴다. 문제는 짙은 안개를 뚫고 팽목항에서 2시간쯤 떨어진 섬들을 방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여 차로 6시간을 달려 진도에 도착한 문화방송 ‘산 넘고 물 건너’ 진행팀과 아산병원 순회진료봉사팀은 피로도 잊은 채 초조한 마음을 달랬다. 다행히 해안경비정과 베테랑 선장이 진두지휘하는 철부선의 도움으로 진료차량과 방송장비, 섬마을 어르신들께 드릴 생필품 선물을 싣고 항구를 떠날 수 있었다.

배가 출발하자 방송팀과 순회진료봉사팀은 저마다 남해에 시선을 던진 채 상념에 젖은 표정이다. 배가 출발하기 전의 상기된 얼굴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오늘의 초대손님으로 최근 영화 ‘복면달호’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이소연 씨 역시 귓전을 때리는 강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겨있다. 이삼일에 한번씩 들르는 배를 타고도 반나절은 족히 차를 타야 병원에 갈 수 있다는 다도해 섬마을 어르신들, 그나마 날씨가 허락하지 않을 때는 배도 뜨지 않아 속수무책이라는 그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바쁘다. 소연 씨는 빨리 섬마을 어르신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랑 실은 왕진가방, 반가운 일일 진료소
오늘의 진료봉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10여 곳의 섬 주민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을 드리기 위해 개그맨 이윤석 씨와 배우 이소연 씨, 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신찬임 전문의와 윤은미 간호사는 팀을 이뤄 큰 배를 대기 힘든 작은 섬들을 찾아 왕진을 다녔다. 개그맨 남희석 씨와 가수 박정아 씨는 아산병원 김형태 교수가 이끄는 진료봉사팀과 함께 조도에 진료 베이스캠프를 마련하고 각 섬의 어르신들을 모셔왔다.
 
 왕진팀이 가장 먼저 찾은 섬은 할머니 세 분만이 살고 계신 곽도이다. 강경업(75)·박민심(76)·조복례 할머니(80)는 염소 한 마리, 강아지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며 미역도 따고 김도 뜨시며 푸성귀 농사도 좀 지으신단다. 배 선착장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배를 타고 내리기 위험했던 이 섬은 작년 가을에야 비로소 작은 선착장이 만들어졌는데 선착장에서 마을로 올라오는 길이 고령의 할머니들이 다니시기에 상당히 가파르다.

“야! 사람 많다! 적적하던 우리 섬에 젊은 사람이 많으니 좋네 좋아! 여기는 공기는 좋지만 우리 같은 늙은이나 살지 젊은이는 살기 힘들어.”

박민심 할머니의 말에 조복례 할머니가 정색하고 반박한다.
“왜 못 살어? 다 살어! 얼마나 좋은디. 전국 제일로 맛있는 미역 맛도 보고. 어이 젊은이들! 이 섬이 왜 곽도인 줄 알어? 미역 곽자 곽도여. 옛날부터 그 맛을 알아줬어!”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두 친구를 바라보던 강경업 할머니는 다 좋은데 아플 때가 가장 문제라고 한다.
“배가 자주 오지 않으니 아파도 참고 이제나 저제나 배 기다려. 그럼 우덜은 애가 달아. 배를 타도 서거차도까지 가서 조도 가는 배 타고 거서 다시 진도 가는 배를 타야 하니. 고달프지. 자식들이 찾아오기도 그렇고. 자식들 얼굴 이삼년에 한 번 보면 잘 보는 거야. 그나저나 밥 때인디 내가 밥 좀 앉힐게.”

일어서는 할머니 손을 이윤석 씨와 이소연 씨가 잡고 만류하며 김밥을 싸왔다고 말씀드린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오랜만에 섬을 찾은 손님들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으신 마음이다. 말리던 김이라도 주고 싶다며 강경업 할머니는 다시 김 뜨는 일에 여념이 없다.

신찬임 전문의가 왕진가방을 풀자 할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구, 겁나게 좋아! 고마워!” 하며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문진을 하고 혈압, 심박수 등을 점검한 의사는 할머니들 모두 노동후유증과 노화로 인한 퇴행성관절염을 앓고 있으며 젓갈 등 짠 음식을 많이 먹는 섬사람의 식습관으로 인해 혈압이 높은 편이라며 바람직한 식습관과 함께 간단한 운동요법을 알려드렸다. 할머니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한 것은 아산병원에서 마련한 구급상자이다. 늘 아쉽고 필요하던 약이 들어있는 구급상자를 선물 받은 할머니들은 어깨춤까지 추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꼭 한번 다시오라는 할머니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왕진팀은 발걸음을 맹골도로 재촉했다.



회한의 사모곡, 바다를 건너다
“교도소에서 방송을 보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사연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는 다리가 많이 아프십니다. 죄를 지어 영어의 몸이 되었으나 혹시 제가 편지를 보내면 어머니 다리를 낫게 해드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얼마 전 ‘산 넘고 물 건너’팀은 순천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김태호 씨(45)의 편지를 받았다. 새해 첫 방송 장소로 진도를 정한 것도 그의 절절한 사모곡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맹골도에 살고 계신 부모님, 특히 허리와 무릎의 통증으로 바깥출입조차 못하고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방송팀과 아산병원 순회진료봉사팀이 방문한 것을 모르는 김천순 할아버지(88)와 황동임 할머니(78) 내외분은 반갑게 서울손님들을 맞으셨으나 이내 얼굴에 수심이 어린다. 젊은이들을 보자 아들 생각이 나신 게다. 특히 할머니는 큰아들 얘기를 묻자 바빠서 자주 못 온다고 하시다가 눈물을 흘리셨다.

“내 앞에서 그런 소리 하지 마소.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소!”
젊어서부터 무릎과 허리통증이 있었지만 병원은 한번도 가보지 못하셨다는 황동임 할머니는 당신 육신의 고통보다 교도소에서 지내는 아들 걱정에 마음이 더 아프신 듯했다. 방송팀은 할머니께 미리 녹화해온 아들의 영상편지를 전했다. 꿈에 그리던 아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와 인사를 하니 부모님의 슬픔의 눈물은 이내 기쁨의 눈물로 변했다.

마을회관에서 15명의 마을주민들을 진료하던 왕진팀은 황동임 할머니 댁을 찾아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약과 식습관·생활습관 지침을 알려드렸다. 신찬임 전문의는  마음이 가볍지 않다고 한다.

“좀더 일찍 찾았어야 한다는 생각에 죄송스럽습니다. 대부분의 섬 어르신들이 지속적인 치료를 받으셔야 하는데 걱정도 되고요.”

배는 다시 바다를 건너 죽도에 이르렀다. 5가구 5명이 살고 있는 죽도에는 두 명의 등대지기, 주경신 소장과 노용태 씨가 있다. 각각 20년, 15년씩 바닷길에 빛을 비추는 일을 하면서 표류하던 배가 무사히 정박했을 때의 보람으로 아이들이 태어날 때조차 섬을 나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는 이들의 웃음이 미더웠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예측불허의 섬 날씨는 그리운 사람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눈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섬사람들의 그리움은 깊어갔다. 더없이 타인을 배려하며 잠시 대화를 나눈 봉사팀을 배웅하면서도 눈물짓는 섬사람들을 보면서 깊디깊은 정을 느낀다. 그들에게 섬은 먼 곳이나, 정은 가깝디가까운 것이리라.

아산병원 봉사팀, 변함없는 섬김의 활동 이어갈 터
밤늦은 시각에야 진료봉사는 마무리되었고 봉사팀의 수장 김형태 교수는 무릎과 허리질환이 심한 황동임 할머니를 서울아산병원으로 모셔 정밀검진과 그에 따른 치료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운신이 힘든 할머니는 경찰의 헬기를 타고 상경하여 아산병원에 머무르면서 정밀검진을 받았다. 오랜 세월 퇴행성관절염과 허리디스크를 앓아 오신 고령의 할머니에게 당장의 수술보다 약물과 물리치료를 통해 경과를 지켜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아산병원은 앞으로도 할머니의 병을 지속적으로 돌볼 계획이다.  
  
이번 순회봉사는 문화방송과 아산병원이 함께 하는 마지막 봉사활동이었다. 이제 아산병원 순회진료봉사팀의 활동이 방송전파를 타지 않지만 30여 년 전에 시작한 아산병원의 봉사활동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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