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봄 편지 책에서 쑥으로 김 훈

지난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쌓인 눈이 얼기 전에 눈을 치웠다. 눈을 치우고 나서 책을 읽었다. 눈과 책 속에 파묻혀서 겨울이 지나갔다. 쌓인 눈은 녹아서 없어졌고, 읽고 나서 밀쳐놓은 책들이 방 안에 쌓였다. 입춘 날, 겨우내 읽은 책들을 비닐 끈으로 묶어서 지하실에 던졌다. 그 책들을 다시 펼쳐 볼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책을 읽기는 어렵지 않지만 책과 책 사이를 건너가기는 어렵고, 나 자신과 책 사이를 건너가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은 후가 마찬가지이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그것을 알면서도, 눈을 치우고 들어와서 돋보기를 끼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어서 나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그 사적인 새로움으로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내 책읽기의 지옥이다.

입춘 날 들에 나갔다. 누런 개가 눈 녹은 땅에 코를 들이대고 땅 속을 검색하고 있었다. 봄에는 부푸는 땅의 젖은 냄새가 개의 관능을 들뜨게 하는지, 개는 맴돌면서 쩔쩔매었다.

개가 흙을 헤집은 자리에서 쑥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개처럼 엎드려서 쑥 냄새를 맡았다. 쑥 냄새는 먼 실핏줄 끝까지 번졌다. 쑥 냄새는 아득한 태고의 지층에서 발신되고 있었는데, 흙 속에 스민 추위와 햇볕의 질감이 엉겨 있었다. 책은 멀고, 쑥은 가까웠다. 내 마음은 쑥 냄새에 실려서 냉이가 올라오는 2월, 미나리가 연두색으로 돋아나는 3, 4월 그리고 여린 두릅을 먹는 5월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단군의 엄마 웅녀熊女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21일을 견딘 끝에 사람의 여자로 환생해서 단군을 낳았다는 것인데, 봄에 된장을 풀어서 끓인 쑥국을 먹어보면, 그 고대적이고도 신화적인 맛과 냄새에는 사람으로 탄생하려는 곰의 염원을 실현시켜 줄 만한 주술적 힘이 들어 있는 것도 같다. 쑥국의 맛은 봄날의 부푼 흙을 고아서 먹는 것 같다. 그 맛은 아득한 시공을 건너와서 창자에 감긴다.

쑥국은 먹이의 추억이거나 그림자와 같다. 맛과 향기는 몸에 느끼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건더기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쑥은 애처로운 풀이다. 그 가녀린 것이 세상의 모든 풀 중에서 가장 먼저 언 땅을 열고 올라온다. 쑥국은 건더기가 영세해서 안쓰럽다.

봄맞이 국을 푸지게 먹으려면 냉이를 기다려야 한다. 언 땅 속에서 겨울을 버티어낸 냉이 뿌리는 흙의 정기가 가득차서 힘차고 거칠다. 냉이국은 건더기가 푸짐하다.

작년 봄에는 세숫대야만한 냄비에 냉이국을 끓였다. 된장 국물에 냉이와 모시조개를 넣고 끓인 다음 고추장을 약간 풀고 청양고추를 한 개 썰어 넣었다. 소가 여물 먹듯이, 건더기를 아귀아귀 씹어 먹고 국물을 다 들이켰다. 겨우내 책을 붙잡고 앉아서 뭉개느라고 꼬이고 뒤틀린 창자를 냉이국물이 쓰다듬어서 펴주었다. 그때 내 몸의 깊은 곳이 찢어지듯이 열리면서 분석되지 않는 울음 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다. 진시황이 이 세계를 모조리 뒤져가며 찾아 헤매던 불로초, 그가 결국 못 먹고 죽은 그 생명의 풀이 바로 이 냉이였구나! 

냉이는 겨울을 견딘다.
냉이는 스스로 겨울을 견디어낸 힘으로, 겨울을 겨우 지나온 다른 존재들을 위로한다. 동의보감을 펴 보았더니, 냉이는 간의 기운을 통하게 하고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삿된 기운을 잠재운다고 쓰여 있었는데, 내가 작년 봄에 먹은 냉이국이 그러했다.

춘분이 지나면 냉이는 겨울을 견디는 고난의 향기를 잃고, 줄기가 억세어져서 맛이 없어진다. 냉이가 억세어지면 미나리가 나온다.

어린 미나리의 연두색은 발생 초기의 색깔의 태아와 같다. 미나리는 청순하고 싱싱해서 생명의 앞쪽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시간을 꿈꾸게 한다. 그래서 미나리 속에는 태어나지 않은 음악의 잠재태가 들어 있을 듯하다.

미나리는 데쳐서 먹기도 하고 어린 순을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하는데, 나는 미나리 물김치를 좋아한다. 어린 미나리와 무를 썰어서 소금물에 담가 놓으면 엷은 연두색 국물이 우러나온다. 이 물김치를 먹으면, 심청 아버지가 눈을 뜨듯이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새로운 시간의 바다가 펼쳐진다.

땅 위에 널린 인간의 먹이 중에서 청량감은 미나리가 단연 으뜸이다. 미나리는 명석하고 단순하다. 미나리의 맛은 여러 겹의 층위나 배후를 거느리지 않는다. 그래서, 냉이는 뜨거운 국물로 끓여야 가문 몸에 깊이 스미지만 미나리는 서늘한 물김치로 만들어 먹어야 눈앞이 열린다. 그 미나리 물김치에 흰 쌀밥을 말아먹으면, 몸속으로 음악의 악보가 흘러들어간다. 내 어머니는 한식날 성묘음식을 준비할 때 쇠고기 산적 한 점에 빨간 실고추와 노란 달걀부침을 고명으로 얹고 연두색 미나리 잎으로 허리를 묶었다. 그래서 빨강, 연두, 노랑을 한 입에 먹도록 해주었는데, 이 미나리 산적을 먹을 때 음악뿐 아니라 온갖 색깔까지도 함께 몸속으로 들어갔다. 미나리는 경쾌하고 발랄한 새 시간의 풀이다.

미나리가 억세어지면 두릅을 기다린다. 봄의 산천이 어린 싹에서 신록의 숲으로 자라나듯이 봄에 먹는 푸성귀도 쑥에서 냉이로, 냉이에서 미나리로, 미나리에서 두릅으로 넘어간다.

두릅이 나오면 봄은 절정이다.
두릅은 5월 초순에 먹는다. 그때면 봄의 숲은 완성된다. 숲은 미성년의 시절을 지나서 청년의 문턱을 들어선다. 두릅은 그 5월 숲의 선물이다. 두릅은 그 어린 순 하나가 숲 전체의 향기나 질량과 맞먹는다. 그래서 두릅을 한 입 먹으면, 숲 전체를 몸 안으로 끌어넣는 것과 같다. 두릅은 줄기 꼭대기에서 움트는 어린 순을 따서 먹는다. 두릅은 줄기와 잎에 가시가 무성하지만, 두릅 순에는 아직 가시가 없다. 그 순을 잘 들여다보면 안쪽에 가시로 돋아날 싹들이 뛰쳐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가시가 나오기 전에 두릅을 먹어야 한다. 향기가 너무 짙어서 날로 먹을 때에는 물에 담가서 쓴 맛을 빼고 먹는다. 내 어머니는 부엌 아궁이 속 타고 남은 재에 두릅을 파묻어서 구워 주셨는데, 거기에는 숲의 향기와 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고, 두릅의 야성이 불의 열기로 순치되어서 숲의 기운으로 밥을 지어먹는 맛이었다.

두릅을 다 먹고 나면 봄날은 갔다.
입춘 날 뜰에 나가서 쑥을 들여다보면서 먹을 궁리를 했다. 책은 멀고 쑥은 가까웠다. 새로운 시간이 쑥과 미나리에 실려 오기를 바란다.

나의 입춘방이다.
입춘대길 立春大吉.

이미지 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