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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인터뷰 “이야기를 들어준 게 전부입니다” 이연철

“올해로 꼭 25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이렇게 오래 할 줄 알았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용산역 부근의 성매매 여성들을 돌보고, 쉼터를 운영하며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옥정 대표는 어려운 처지의 여성들과 함께 한 세월이 꿈같기만 하다고 한다.

25년 전 이 대표는 보험외판원이었다. 일 때문에 용산역 부근을 자주 다니던 그는 여름철에 용산역 광장에서 자는 어린이들을 보았다. 성매매 하는 여성들이 일하는 동안 맡길 곳 없는 아이들을 그냥 광장 바닥에서 자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술주정뱅이들이 그 아이들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것을 보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칭찬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성매매 여성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파출소에서 오라 가라 하면서 직업이 들통 나고, 그것이 법에 저촉되어 여러모로 곤란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포주나 경찰도 괜한 것을 신고해서 일을 만든다는 핀잔을 주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는데 그때만 해도 이 일을 이처럼 오래할 줄 꿈에도 몰랐다.

생활 청산하는 포주 볼 때 보람 느껴
성매매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애환을 들어주거나, 집창촌에서 나와 갈 곳이 없는 여성을 거두어 함께 살면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대표의 일이다.

“어떻게 보면 한 일이 없어요. 그냥 그 애들과놀아주고, 얘기 들어주고, 갈 곳이 생길 때까지 데리고 있으면서 기술을 가르쳐주는 게 전부입니다.”

말이 쉽지 실제로는 하나 같이 다 어려운 일이다. 얘기를 들어주는 일만 해도 그렇다. 이 일을 하려면 자정이 되어 쉼터를 나서야 한다. 이때쯤이 집창촌의 ‘한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거리마다 다니며 그들이 건강한지, 어떤 사고는 없었는지 집 앞에 서서 또는 근처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먹으며 이야기를 들어준다. 포주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포주를 하던 분이 이야기를 나눈 후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나갔어요. 그러면서 데리고 있던 아이들도 모두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주었지요. 그럴 때 보람을 느낍니다.”

이 대표는 가톨릭 신자다. 전교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사제와 수녀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처음 4~5년은 내 힘으로 하려고 했어요. 맨날 싸움이고, 너무 힘들더라고요. 아가씨들에게 정성을 다했는데 변화가 되지 않고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너무 실망했어요. 기도를 하는데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나머지는 하느님 몫이라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때 내 안에 내가 베푸는 만큼 받으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그 마음을 내려놓으니까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세상에 무지렁이 인간은 없어요”
그 후로는 어떤 사람을 거창하게 변화시키려고 억지 노력을 하지 않았다. 내가 60% 행복하면 그것을 그대로 상대에게 보여주고 그 60%의 행복을 같이 나누려고 했다. 자연히 자신도 행복해지고 상대편도 행복해졌다.

“그래요. 저는 행복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나 혼자 쓰는 방이 없었지만 하나도 불편한 게 없어요. 기쁨과 걱정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베푼 것보다 받은 게 더 많아요.”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던 자매와 통화하면서 저쪽에서 먼저 걱정해주는 말을 들었을 때, 당장 치러야 할 돈 때문에 걱정하고 있을 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슬그머니 다가와 뭐가 걱정이냐고 물어주었을 때, 그럴 때 마다 이들과 함께 한 생활이 감격스러울 정도로 좋다고 한다.

거액의 상금은 이미 사용할 곳이 정해졌다. 지금 살고 있는 쉼터의 계약기간이 끝나 어디론가 옮겨야하는데 전세비가 많이 올라 걱정하던 터였다. 상금을 보태도 부족하지만 어디선가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떻게 수상 소식을 들었는지 나보다 쉼터를 거쳐 간 아이들이 더 좋아해요. 지방에 내려가 좋은 일을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어요.”

이 대표는 “대표는 직원이 만든다”며 자원봉사를 자청하고 있는 열댓 명의 직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세상에 ‘무지렁이’ 인간은 없어요. 조금만 도와주면 다 제몫을 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어요. 자기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가 존중할 때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이 일을 기쁜 마음으로 계속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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