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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단상 사고방식으로서의 철학 김형효

평생 동안 철학을 공부해 온 필자는 요사이도 철학이란 학문의 본질에 관하여 자문하곤 한다. 나는 그 철학이 곧 인간의 사고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필자가 젊었을 때에 제기되지 않았다. 필자의 만년 생각이다. 철학은 과학처럼 자기의 고유한 대상을 바깥에 갖고 있지 않다. 외적 대상이 규정되어 있지 않는 철학은 그 대상에 따라 특정한 학문의 성격이 결정될 리 없고, 결국 마음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것을 취급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겠다. 물리학은 물리현상, 사회학은 사회현상, 수학은 수의 현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 이름을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외적 대상이 뚜렷한 학문으로서의 과학은 자기 학문의 성격을 애써 규정하고 또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 학문의 외적 대상을 누리지 못하는 철학은 예나 이제나 줄곧 철학이란 무엇을 공부하는 학문인가 하고 끊임없이 자문한다. 따라서 철학의 저 의미규정도 필자만의 생각이지, 모든 이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철학 강의를 처음으로 듣거나 독서로서 읽은 사람들은 철학이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겠다. 철학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대상으로 해서 그 사고방식의 성격과 그 사고방식의 현실적 영향과 힘을 고려하고 숙고하고 사색하는 그런 류의 학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철학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대상으로 해서 그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면, 심리학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고 물을 수 있겠다. 철학과 심리학이 대단히 유사해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구태여 그것을 따진다면, 심리학은 인간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발생하며,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경험적인 측면에서 탐구한다면, 철학은 인간의 심리적 사고방식의 전체적 수준이 다른 사고방식의 전체적 수준과 어떻게 다르며, 어떤 가치기준을 지니고 있는가 함을 논의한다. 그래서 그 사고방식이 인간의 생활전체와의 관계에서 무슨 정치・사회적 의미, 또 어떻게 물질적 경제적 생산에 충격을 끼치며, 인생의 교육과 인생관의 의미구축을 어떤 방식으로 초래하는가를 연구한다.

사고방식은 인간을 탐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몫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한 순간에 사람들이 어떤 지배적 사고방식으로 살아 왔는가 함은 역사연구의 기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연구는 너무 표피적 실증성에 얽매여서 역사적 사람들의 일반적 사고방식을 간과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것은 역사의 가장 중요한 요인을 모르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반드시 지나간 사건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현재적 대한민국 시대의 국민들의 일반적 사고방식도 철학의 주요한 연구과제다. 우리가 어떤 사고방식을 지녀서 가난한 후진국을 탈피하여 선진국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하는 까닭을 아는 것도 철학적 사색의 종류에 해당한다. 우리는 동양 전통문화를 몸으로 안고 살아 왔는데. 그 전통문화는 우리의 발판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갈 길을 막는 장애물이다. 그 전통문화의 사고방식을 인식하는 일도 철학적 탐구의 한 장르에 속한다 하겠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철학의 기초적 탐색작업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과학적 대상인식의 기초를 정초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연과학적 탐구에서도 그 과학이 어떤 시각으로 대상을 보는 것인가 하는 관점의 논리가 필요한데, 그 때에 한 과학의 대상 파악상 필요한 논리구축도 철학의 역할에 해당한다. 이런 기본적 논리구상의 일이 철학의 문제와 직결되므로 자연과학의 작업에서 뿐만 아니라, 문학과 소설의 구상에서도 모든 이야기의 전개도 철학적 사고방식의 수준과 직결된다. 철학적 사고방식의 수준이 결여된 이야기의 전개는 문학의 질을 떨어뜨린다. 시작(詩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겠다. 이상과 김춘수, 발레리와 보들레르, 괴테와 릴케의 시들은 그들의 사고방식의 문제와 직결된다.

철학은 한 시대의 사고방식에 의하여 지배되기도 하지만, 또한 한 시대의 사고방식을 개조하기도 하고 거슬러 가기도한다. 더 나아가서 어떤 현자의 사고방식은 한 시대뿐만 아니라, 인류사 전체의 사고방식을 통째로 지배하여 인류에게 거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붓다, 예수, 공자, 노자 등의 사고방식은 인류사에서 연면히 흘러오는 대하와 같은 흐름들이다. 이들의 가르침이 곧 이들의 사고방식의 전수이다. 철학은 이들 현자들의 지혜를 받아서 재탕 삼탕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철학은 인류역사상 현자의 가르침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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