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외사촌 형님 한 분이 계신다. 이천에 사신다. 오래도록 건설업에 종사하셨다. 이른바 ‘노가다’였다. 오십이 넘어서야 겨우 십장이 되었다.
명절이나 돼야 어쩌다 보게 된다. 이제 고향에는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지만 선산이 있는 것이다. 외갓집과 우리 집 선산은 이웃해 있다. 형님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산에서였다.
재주가 많았던 형님이었다. 노래도 잘 부르고 붓글씨도 잘 썼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동아를 잘 잡는 형님으로 기억하고 있다. 동아란 고향 마을 앞바다에서 잡히는 숭어 새끼를 말한다. 고향에선 오징어를 오징아, 병어를 병아, 농어를 농아라고 부른다. 숭어도 물론 숭아라고 부르고, 그것의 새끼인 동어를 동아라고 한다. 겨울에 잡히는 숭어 새끼라 하여 특별히 동아(冬魚)라고 하는데, 겨울에 잡히는 이 동아만큼은 배를 따지 않고 통째로 먹어도 아무런 탈이 없다. 고향 사람들은 이 동아를 생선 중의 으뜸으로 친다.

“동아 잡으러 가자!”
고향에 살 때 그 형님은 곧잘 어린 나를 데리고 바닷가로 나갔다. 형님의 아버지는 어부였다. 그래서였는지 형님은 남들보다 동아를 잘 잡았다.
썰물이 지고 나면 갯바위 틈 사이에 물이 고였다. 바가지로 물을 퍼내면 그곳에 동아가 있었다. 그러나 웅덩이마다 동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형님은 동아가 있을 만한 웅덩이를 귀신처럼 알았다.
동아는 어른의 굵은 손가락 만해서 한 입에 넣기에 좋았다. 퍼덕거리는 그 놈을 고추장에 찍어 입 속에 넣었다. 씹히면서도 그 놈은 한동안 입 안에서 꿈틀거렸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생선회 맛을 알게 마련이다.
“가고 말고요. 고추장 퍼 갖고 얼른 나갈께요.”
준비물이라고는 바가지와 고추장이면 충분했다. 형님은 바가지를, 나는 늘 고추장을 준비했다.
갯바위는 날카로웠다. 따개비에라도 긁히면 무릎에서 금방 피가 났다. 나는 종종 살을 긁혔다. 그럴 때마다 형님은 내 상처에다 담배가루를 붙여 주었다.

내 고향은 강화도 서북단. 북한 땅이 코 앞에 보이는 곳이다. 형님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외삼촌은 6.25 때 북으로 가셨다. 어부였던 외삼촌은 북한군에게 배를 징발당했다. 북한군의 물자를 수송해 주었다는 이유로 우익청년단의 표적이 되었다. 집과 땅을 죄다 몰수당하고, 외삼촌은 한 살바기 형님과 외숙모를 남겨둔 채 야반도주했다. 땅깨나 있던 외갓집은 졸지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형님은 집안의 억울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점차 바닷가에 나가는 걸 꺼렸다.
“이제는 왜 동아 잡으러 안 가요?”
내가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바닷가에만 나가면 보이는 북한 땅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리라.
외숙모가 돌아가시자 형님은 기어코 고향을 떠났다. 예전에는 외갓집 소유였던, 그러나 빼앗기고 만 언덕배기의 넓은 밭이며 다랑구지의 논들을 차마 곁에서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거라고 어머니는 한숨을 쉬셨다.

그렇게 형님은 고아처럼 객지를 떠돌며 나이를 먹었다. 아주 가끔씩 하나뿐인 혈육인 내 어머니를 보러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을 뿐이었다. 이제 이천에 정착했다. 명절 때면 선산엘 다니러 고향엘 간다. 나이 오십이 넘은 거였다. 그리고 나는 지난 추석 때 형님이 장정리 함씨네 집엘 들러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던 지난 해, 남쪽을 방문했던 북쪽의 이산가족 명단에 외삼촌의 이름은 없었다. 방문자들은 대개 북쪽에서 성공한 축에 드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살아 있더라도 외삼촌은 북한에서마저 변변치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형님은 또 한번 낙담했다.
그러나 장정리에는 가족을 만나러 북한을 다녀온 함정웅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인삼을 떼러 강화에 왔다가 전쟁이 나는 통에 영영 돌아가지 못한 연백 사람이었다. 북한에 살고 있는 그의 가족은, 다녀온 그의 말에 의하면, 차마 가슴이 아플 정도로 빈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말은 형님에겐 희망이었다. 언젠가 형님도 함정웅이란 사람처럼 북한 방문단의 일원이 될 수도 있는 거였다. 잘 살든 못 살든 생전에 아버지 얼굴 한 번 보는 것이 형님의 소원이었다.

올 설에 나는 성묘를 마치고 선산을 내려오다 형님을 만났다. 형님의 얼굴엔 모진 세파가 남겨 놓은 깊은 주름이 그새 더 늘어 있었다. 그러나 여느 때와 달리 형님의 얼굴엔 활기가 있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그래 보였다.
형님이 내 이름을 크게 부르더니 불쑥 말했다.
“야, 동아 잡으러 안 갈래?”
제철이야, 그 맛 죽여 주잖냐! 형님이 덧붙였다.
“그럼 난 고추장을 준비해야겠네!”
나는 얼른 가게로 들어가 커다란 고추장 통을 샀다.
그러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과연 그때의 그 동아가 아직도 있을까.
하지만 형님의 눈썰미는 여전했다. 두 개의 물웅덩이에서 여섯 마리의 펄펄 뛰는 동아를 잡았다.
“무릎 깨먹지 말아라. 나 담배 끊었어!”
형님은 나를 여전히 애 취급했다. 내 입에서는 벌써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먹어 보는 동아더냐.
그러나 나는 잠시 군침을 삼키며 기다려야 했다. 내가 고추장 통을 열 동안 형님은 바다 건너 북한 땅을 향해 세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