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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건강하게 ‘소리’를 찾아서-임영주 씨 김경석

죄인 아닌 죄인
임영주 씨는 조금씩 조금씩 청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임영주 씨의 어머니도 임영주 씨와 같은 증상을 보였으며, 그 어머니가 낳은 육남매 중 임영주 씨를 포함한 네 명의 자녀가 이와 같은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약해져 가던 청력은 약 8년 전 남편을 과로사로 잃은 충격 때문에 급격히 악화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데에 많은 불편이 생겼고, 시장을 가도 불편은 마찬가지였다. 안성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보청기를 맞추었지만, 청력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만 갔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다. 전화가 오면 아이들에게 받게 하고 자신이 외출중이라고 핑계를 대도록 시켰다. 너무 연락이 안 되어서 어떤 사람은 임영주 씨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녀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이유
자신의 병은 보이지도 않는 병이라 누구에게 속시원히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던 몇 년. 본격적으로 병을 치료하고자 동생과 조카딸이 있는 대전 큰 병원에 갔지만 고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조카딸이 인공와우에 대해서 들었고, 2000년 겨울 서울아산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서울아산병원 역시 처음에는 보청기 착용을 권하였다. 그렇게 보청기를 5개월간 꼈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여러 가지 검사 후 2001년 가을,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다름 아닌 자식들 때문이었다. ‘얘들이 밖에서 만에 하나 나쁜 일이 생겨 집에 전화가 왔는데 못 받으면 어쩌나. 상견례 자리에서 내가 애들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자식들을 위한 것이다.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기구를 장착하고 다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 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렸는데, 그때 기분은 하늘을 날아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기분이었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이 ‘이제 세상이 시끄러워질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로 세상이 시끄러워지대요.” 웃으며 말하는 그녀. 목이 매여 회상하던 과거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한마디였다. 압력밥솥이 ‘칙칙’거리며 밥 짓는 소리, 타박타박 경쾌한 자신의 발걸음소리,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방에 등을 대고 누웠을 때 초침이 ‘째깍째깍’거리며 가는 소리…. 이것들이 다시금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이유였다. 임영주 씨는 수술 후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은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이젠 수술 흔적(배터리로 연결된 줄 따위) 없이 보통사람들처럼 되었으면 하는 솔직한 욕심도 미소 지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은 행복을 너무 멀리서만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 틈 사이로 들어오는 봄 햇살을 볼 수 있고, 새소리도 들을 수 있는데 말이다. 우리가 주위에 너무 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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