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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향기가 안내하는 세상 경생원 아이들의 개구리 체험 박미경

설마 꿈은 아닐까. 우리의 걱정은 ‘개구리’였지 ‘논’이 아니었다.  36년 만의 경칩 추위에 놀라, 도로 들어가 버린 개구리들. 녀석들이 다시 나올 때까지 꼬박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막상 와보니 ‘개구리’가 아니라  ‘논’이 사라지고 없다.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자락에 있는 개구리논. 해마다 경칩 무렵이면 잠에서 깬 산개구리들이 알을 낳기 위해 엉금엉금 건너오던 이곳이, 그들이 낳은 알이 올챙이가 되고 개구리가 되어 밤마다 개굴개굴 합창을 들려주던 이곳이, 몽땅 흙으로 메워져 있다.

“빨리 개구리 보여줘요.” “논은 어디 있어요?”
상원이(7), 하나(7), 이선이(7), 현빈이(8), 재림이(8), 태민이(8), 병진이(8), 태현이(8). 자연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경생원(둔촌2동에 있는 아동복지시설)의 여덟 꼬마들이 재촉을 한다. 뾰족한 수라도 있는 것일까, 이곳에 개구리논을 만든 류창희 소장(자연생태연구소 ‘마당’)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아이들을 반긴다.  

개구리논은 사라졌어도
“내 이름은 코딱지야. 말 안 듣는 사람에겐 코딱지 하나씩 먹일 거니까 그렇게 알아.”
“하하하. 이름이 코딱지래.” “에이~ 코딱지를 어떻게 먹어요?”

별명 하나로 아이들의 마음을 단번에 열어젖힌 류창희 소장이 말을 잇는다. “어제는 코딱지에게 무척 슬픈 날이었어. 논 주인이 어제 개구리논을 흙으로 메웠거든. 그래서 오늘은 논 대신 산과 개울에서 개구리를 볼 거야. 그 전에 우리 춤부터 출까?”

‘코딱지’의 살림집이자 이곳을 찾는 아이들의 생태교육장인 흙빛 오두막집. 봄 햇살 곱게 들이치는 툇마루에서, 그와 아이들이 ‘막춤’을 춘다. 만난 지 10분 남짓, 춤은 그와 아이들을 아주 쉽게 친구로 만들어놓는다.

몸 풀기 다음은 수수께끼 시간. “여름에 나오는 진짜 개구리를 뭐라 부를까?” 코딱지 선생의 물음에 재림이가 답한다. “청개구리요.” “다시 잘 생각해봐. 진짜 새는 참새, 진짜 나무는 참나무, 그럼 진짜 개구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덟 아이들이 동시에 대답한다. “참개구리요~.” 아이들의 우렁찬 ‘정답’에 코딱지 선생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 웃음이 너무 환해서 마음이 짠해온다. 자연생태연구소 ‘마당’을 청계산 자락으로 옮겨오던 96년. 알을 낳기 위해 이동하던 수백 마리의 개구리들이 청계사 오르는 차들에 치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 뒤, 도로 아래로 개구리들이 이동할 수 있는 간이 이동통로를 만들고 도로 옆 논을 빌려 개구리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든 지 올해로 11년이다. 8만 마리 개구리들의 서식지이자 수만 명 어린이들의 생태학습장이던 개구리논. 메워버린 흙 속으로 11년의 추억을 함께 묻어야 하는 심정이 오죽할까 싶은데, 그는 정작 이렇게 이야기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요, 뭘. 마음은 아프지만, 그 논 대신 개구리들이 또 다른 개구리논을 찾아낼 거라 믿어요.”

때마침 날아든 벌 한 마리가 그의 말을 자른다. 벌이 무서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에게, 그가 알려주는 비방이 재미있다. “벌이 가장 무서워하는 새가 뻐꾸기야. 그러니까 ‘뻐꾹!’하고 쫓으면 돼. 그럼 두 마리가 오면 어떤 소리를 내야 할까?” 상원이가 답한다. “뻐꾹! 뻐꾹!” 신기하게도, 거짓말처럼 벌들이 사라진다.  

마음으로 듣는 생명의 소리
다행이다. 개구리논이 아니라도 개구리와 도롱뇽을 볼 수 있는 곳이 지천이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집 앞 산길 위에 있는 작은 둠벙.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올라왔는데도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밝다. 흙길을 걸을 일이 거의 없었던 아이들에겐, 발에 감겨오는 ‘새로운 감촉’이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얘들아. 이게 개구리 알이야. 이건 도롱뇽 알이고. 한 번씩 만져볼래?”

뜰채로 건져 낸 알들을 아이들에게 내미는 코딱지 선생. 처음에는 징그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던 아이들이 하나둘 손을 내민다. “아, 되게 미끄럽다. 느낌이 이상해.” 태민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난다.  

이번에 건져 낸 것은 도롱뇽이다. 기나긴 겨울을 견뎌내고 또 한 해를 살아가게 될 작은 생명들. 난생 처음 보는 생명체 앞에서 여덟 아이들 모두 숨을 죽인다. “저건 죽었어요.” 죽은 도롱뇽을 가리키는 이선이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체험’이란 무릇 이런 것일 터이다. 실제로 만나 사귀는 것, 그리하여 그들의 귀함을 몸소 깨닫는 것.

“개구리 보러갈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코딱지 선생의 손가락 위로 여덟 아이들의 손가락이 붙는다. 드디어 개구리를 볼 차례. 앞장서던 코딱지 선생이 몸을 잔뜩 숙인 채, 도로 아래 작은 굴로 들어간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개구리 도로’다. 길을 건너다 차에 치는 개구리들이 없도록 의왕시를 설득해 도로 아래로 만들어놓은, 대한민국 최초의 개구리 전용통로.



몸을 납작하게 숙이고 스무 걸음쯤 걸어가니, 길 건너 개울이다. 코딱지 선생이 뜰채로 개구리를 건져내자, 아이들이 탄성을 내뱉는다. “와, 뒷다리 진짜 길다.” ‘올챙이와 개구리’란 동요는 수도 없이 불렀어도 개구리 뒷다리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현빈이. 아이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진다. “코딱지! 또 잡아줘요.” 낯을 가리던 하나도 코딱지 선생의 뒤를 따라 다니며 이런저런 요구를 하느라 바쁘다.
“뜰채 줘봐, 얘들아. 물고기 잡아줄게.”

병진이에게 뜰채를 양보했던 코딱지 선생이 뜰채를 건네받자마자 버들치 한 마리를 건져 올린다. “코딱지, 최고예요.” 뜰채 위로 파닥이는 버들치와 선생님을 번갈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태현이. 아이의 칭찬에, 코딱지 선생이 아이처럼 어깨를 으쓱한다.

잡았던 생명들을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고, 논두렁을 걸어 코딱지네 오두막으로 되돌아오는 길.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조금 전의 그 아이들과 많이 다르다. 방금 전까지 무서워 벌벌 떨던 벌을 피하지 않을 줄도 알고,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던 봄나물이며 들꽃도 허리 숙여 눈에 담을 줄 안다. 생명이 걸어오는 말을 들을 줄 알게 된 아이들의 걸음이 점점 더뎌진다. 녀석들의 등에 업힌 봄 햇살도 덩달아 느리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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