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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다문화정책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이끌다 설동훈

아일랜드, 덴마크, 스웨덴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강대국들과 비교하면 인구가 작은 나라이지만 매우 높은 국민소득과 복지 수준을 누리고 있어, 강소국으로 꼽히고 있다. 이 세 나라의 외국인 인구 비율은 아일랜드 6.3%, 덴마크 5.0%, 스웨덴 5.3%다. 총인구 중 외국출생자 비율을 보면 아일랜드 11.8%, 덴마크 6,5%, 스웨덴 12.5%다.

아일랜드, 덴마크 및 스웨덴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정치가 복지국가의 틀 속에서 공존하며 번영을 구가하는 나라들로서 복지정책의 재편으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성장을 통해 고용을 늘리고, 동시에 사회복지 지출을 늘려 사회적 보호를 제도화하는’ 사회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파기한 것이 아니라, 지출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방식을 취했다. 그 핵심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직업훈련, 취업알선 등)에 대한 지출을 늘리고,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조기 은퇴, 산업재해보상보험 수급 조건 완화, 실업보험 등)에 대한 지출을 줄였다. 둘째, 사회연대협약을 체결하여, 임금 및 사회복지정책 전반에서 합의를 도출하였다. 셋째, 시장의 조정을 통해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유도하여 왔다. 사회적 대화로 임금인상 억제를 조정하고, 국가가 이를 사회정책으로 보상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차이도 있다. 아일랜드는 ‘규제완화를 통한 외국인투자 유치’, 덴마크는 ‘유연안정성과 재교육’, 스웨덴은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모델’ 등 각기 다른 방향의 발전 전략을 세웠다.

세 유형의 복지국가
첫째, 아일랜드는 1987년부터 정부지출과 조직을 과감하게 줄이고 소득세를 포함한 세율 인하 등 과감한 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노·사·정이 ‘국가재건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사회연대협약을 체결하는 한편, 규제 완화를 통해 고급기술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여 1인당 국민소득이 15년 만에 네 배로 늘어나는 비약적 경제성장을 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닥친 어려움을 긴축정책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둘째, 덴마크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소득의 안정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세 요소를 결합한 ‘황금색 삼각형’ 모형을 추구한다. 그 핵심을 추려 ‘유연안정성과 재교육정책’이라고도 한다. 덴마크 기업은 경영상 필요하면 사전통고를 거쳐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 해고된 노동자를 위해 국가는 매년 국내총생산의 4.4%를 실직자 재교육에 쓰고 있다. 다만 1년 내에 새 직장을 얻지 못하면 경고한 뒤 수당을 삭감한다.

셋째, 스웨덴에서는 1956년부터 대기업 노동자의 양보를 통해 노동자 전체의 단결을 도모한 ‘사회연대임금제’가 시행되어 왔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핵심축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에 기반을 둔 사회연대임금제는 무너졌다. 그러나 노사가 정책 자문 및 협의, 의견서 제출 등과 같은 방법으로 개별 정당의 정책결정 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산업별 수준의 단체교섭은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이나 노동이나 복지 혜택을 줄이는 것만으로 최근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공감하여  ‘복지국가 모델 폐기’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모델’을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국가 규모를 줄이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스웨덴의 정부 지출 규모는 1993년 국내총생산의 72.4%였는데 2006년에는 55.5%로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실업자 재교육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강력히 시행하고 있다.

이민정책은 정치·사회적 특성, 경제구조, 발전 전략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므로, 아일랜드, 덴마크, 스웨덴의 순으로 이민정책 또는 다문화사회정책을 살펴보기로 한다.

아일랜드: 서로 적응하는 ‘상호문화주의 정책’
아일랜드는 과감한 경제 개방 정책으로 빈국에서 선진국으로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였다. 아일랜드는 과거 이민 송출국이었으나, 1990년대 비약적 경제성장으로 이민 수용국으로 바뀌었다. 유럽에서는 드물게 단일민족이 살아오던 나라에, 최근 20여 년 경제성장으로 이민자들이 들어 왔고, 그 결과 ‘다문화적 상황’이 만들어졌다. 낮은 법인세와 소득세, 낮은 토지가격(특히 공장부지), 영어 사용 환경 등의 장점을 활용하여 외국 기업과 자본 및 인재 유치에 성공하였다. 이민자들은 아일랜드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였고,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아일랜드는 ‘다문화사회의 진입 단계’로 평가되고 있고, 이민자 통합 정책은 ‘상호문화주의’다. 그것은 이민자의 출신국 문화를 보전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다문화주의’와는 구분된다. 상호문화주의의 요체는 ‘쌍방적 적응’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주류사회와 이민자가 서로 상대방에게 적응하는 것을 뜻한다.

아일랜드에서는 이주민 자녀들의 모국어를 지원하는 수업 교사와 학생들을 일대일로 지도하는 추가교사 등 두 명이 동시에 들어가 수업을 한다. 추가교사는 보조교사가 아니라 정식 교사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교사다. 이주민 학생들이 아일랜드 학생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학부모들이 지역과 연관을 맺도록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덴마크: 고용 기회 확대로 사회통합 추구
덴마크는 1950년대부터 이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1960〜1970년대 경제 부흥기에 건설업 등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유고슬라비아, 터키 등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체류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족을 초청하기 시작하여 가족이민이 증가하였다. 1973년 석유위기로 덴마크의 실업률이 상승하자, 정부는 비숙련 이주노동자 충원을 중단하였으나, 인도적 관점에서 스리랑카, 유고슬라비아, 이라크 등 전란을 겪고 있는 나라 출신의 난민은 그 이후에도 수용해왔다.

덴마크에서 이민 수용은 2001년 선거의 핵심 쟁점이었다. “가족상봉이민이 복지 부담 증가를 초래한다”며 “이민 규제”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덴마크에서 이민자들이 없다면 경제가 붕괴될 것”이라는 시각이 더 지배적이다.

이민은 점수제(point system)를 이용하여 받아들이는 한편 의사, 치과의사, 정보기술 엔지니어,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기술자들은 점수제와 상관없이 수용하여 인도, 미국, 중국 출신의 우수 인재를 충원하였다.

덴마크 정부는 1960〜1980년대에 이민자를 방치한 것이 실수라고 반성하고, 1999년부터 사회통합 정책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2002년에 ‘이민자 통합 프로그램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 통합정책의 핵심은 이민자들이 교육을 통해 덴마크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고용 기회를 확대해 덴마크 사회의 통합을 추구하는 데 있다.

스웨덴: 이민자도 모든 복지혜택에 접근
스웨덴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민을 내보내는 나라였다가 제2차 세계 대전 후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로 바뀌었다. 소말리아, 이라크, 이란 등 내전 상황에 놓인 나라들로부터 피난민들을 많이 받아들였고, 최근에는 숙련 이주노동자 충원에 초점을 맞춘 이민 정책을 펴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2008년 노동, 교육 등 여러 영역에서 이민자의 배제를 극복하고 ‘통합’을 달성하려는 목표를 세워, ① 신규 이민자의 효과적 도입, ② 노동력 수요·공급 뿐 아니라 정부지원금 제공 등 인센티브 부여를 통한 기업가정신의 고취, ③ 학교의 질과 평등 추구 등 일곱 개 전략 영역을 설정하여, 신규 이민자가 스웨덴 사회에 들어오고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한층 더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노동조합은 이민자의 고용 관련 사항들이 단체 교섭과 직종·업종별 기준에 동등한가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지만 그 신청을 기각할 수는 없다. 스웨덴 이민위원회가 관련 인증을 실시한다. 또한 스웨덴은 외국인노동자가 귀국하지 않아도 되는 취업허가를 받을 수 있는 사증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스웨덴 입국이 허용된 이민자는 모든 사회복지 혜택에 접근할 수 있고, 내국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가족 초청 또는 동반은 즉시 허가되고, 취업허가가 6개월 이상인 경우에는 그 가족도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계속 취업을 위해서는 사증 갱신이 필요하지만, 4년 취업을 한 이후에는 영주권을 부여한다. 새로운 규정에 의하면, 유학생은 30학점(대략 1학기 수학 분량)을 이수하면 체류자격을 취업허가로 바꿀 수 있다.

1년 이상 스웨덴에 거주한 모든 외국인은 ‘이주민을 위한 스웨덴어’라고 불리는 교육과정에서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한국이 배울 점
한국의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은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고령화는 급속도로 진행돼 65세 이상 인구 구성은 2010년 11.0%에서 2050년에는 38.2%로 높아진다.

한국에 앞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겪은 아일랜드, 덴마크, 스웨덴은 암울한 미래를 회피하고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이민자 수용’을 선택하고 있다. 외국인 전문기술 인력과 숙련 노동자의 유치 및 이민자들의 자국 사회 통합에 주력하고 있다.

이 세 나라는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사회경제적 환경이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그렇지만 수백 년 동안 국민국가의 전통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역사가 짧은 이민국보다는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아일랜드의 ‘상호문화주의’, 덴마크와 스웨덴의 ‘다문화주의’ 정책 등 자국 실정에 맞는 이민자 통합 모형을 개발한 방식에 주목해 배울 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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