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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온 하늘과 땅이 마침내 하나 되나니 오광근

DMZ 철조망 앞 벌거벗은 두 명의 남녀가 서 있다. 처연하도록 여자는 가슴에 두개골을 껴안고 남자는 향나무 뿌리를 하늘 향해 들고 서 있다. 벌거벗은 남녀는 한반도 기를 들고 철조망 앞을 뛰어도 가고 ‘I Love DMZ’를 외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DMZ에서 벌어진 한 퍼포먼스 장면이다. 그것은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위한 진혼이자, DMZ 생태 보존을 위한 축원이었다. 신동엽의 시 그대로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맞절할지니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는 외침이기도 하다.

이 퍼포먼스를 연출한 이는 화가 이반(62, 덕성여대 서양화과 교수). 88서울올림픽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비무장지대를 민족 대공원으로 만들자는 주장을 편 이후 14년 동안 DMZ문화예술운동을 벌여온 이다. 분단 현실의 최전선 DMZ의 비극과 희망을 퍼포먼스로, 설치 미술로, 또는 조각으로 담아내면서, 그의 작업은 통일이나 환경 운동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많은 예술가들의 관심을 한데 모아 DMZ를 통일과 평화를 담아내는 커다란 캔버스이자 예술 무대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반 교수가 강조하는 말 중 하나는 ‘조국과 창조’다. 조국은 예술 창조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통일은 예술 영역에서 가장 활기찬 운동력을 갖는 소재입니다. 나도 예술가로서 분단 현실을 담아내고 통일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려 했던 거죠.”
동해에서 서해까지 248km, 폭 4km, 약 3억 평의 공간, DMZ. 이반 교수가 DMZ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그 철조망을 걷어내고 이뤄야 할 통일 때문만이 아니라 그 철조망 안에 푸르게 움튼 생태적 가치 때문이기도 하다. “DMZ는 오욕과 죽음의 역사로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역설적으로 세계적인 생태 낙원이 되었습니다. 생태 문화, 생태 예술의 발원지로서 민족의 귀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최근 민통선 지역의 땅 값이 뛰고 개발 계획이 난무하는 등 벌써 DMZ의 생태가 위협받을 조짐도 보인다. 그는 남북을 잇는 철길과 도로가 건설되더라도 산양과 두루미와 풀꽃들의 터전을 남기고 땅밑(Eco-tunnel)으로, 고가(Eco-bridge)로 나야 한다고 말한다. 남북이 상생하고,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도록 신중히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요 근래 작업하고 있는 그림에서도 그의 생태주의적 관점이 엿보인다. 작업실 큰 캔버스에는 나무 뿌리가 남자 성기 모양의 줄기를 뒤덮고 있는 목탄화가 그려져 있다. 대지와 교감하는 팽창력이 주제라고 한다. 그처럼 힘찬 생명력으로 발기하는 DMZ를 형상화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반 교수는 한 책자에 이 그림을 소개하면서 그림 위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써 넣었다.

南男北女文物來去 南北大根發地通天 (남으로 북으로 사람이 오고가고, 온 하늘과 땅이 마침내 하나 되나니).

남북의 소통, 그리고 인간·자연·예술의 소통과 직결된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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