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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역사 뒷편에 서서 미래를 본다 오광근

‘고인돌’ 하면 왜 자꾸 까마득한 옛날 원시인들이 떠오를까. 그렇게 오래 된 것은 아니다. 고작 3,000년 전의 것이다. 선사시대 옛 선인들 삶을 엿보는 대표적인 유물, 고인돌. 세종대 역사학과 하문식 교수(44)는 수천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뭉툭하게 서 있는 고인돌의 신비와 매력에 푹 빠져 살아온 이다.

최근 연천 지역의 고인돌을 조사하고 있는 그는 고인돌을 찾는 일이 늘 땅 속 보물을 발견하는 것처럼 가슴 설렌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가 발굴 조사한 고인돌 수는 200여 기. 10여 년 전 충남 보령에서 80여 기의 고인돌 무더기를 발견했던 일이나, 몇 해 전 국내 학자론 유일하게 중국 요녕성 일대 고조선 시대의 고인돌을 살펴봤던 일을 가장 인상 깊었던 일로 꼽는다. 앞으로 북한 지역의 고인돌을 살펴보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역사 이전의 시대, 문헌도 남아있지 않은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은 역시 땅을 파는 일이 아닐까. 땅 속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아 연구하는 일. 하 교수에게 ‘고고학은 무엇인가’ 묻자 “많이 걷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대답한다. 눈 크게 뜨고 많이 걸어야 유물도 찾고 발굴도 한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선문답 같고 어찌 보면 일차원적인 대답 같다. 여하튼 고고학이란 하 교수가 그렇듯 발굴 현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라 짐작해 볼 뿐이다.

하 교수에게 짧게나마 고인돌 강좌를 들어 보자.
“고인돌은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진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고인돌은 제단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것과 무덤으로 쓰여진 것, 두 가지가 있는데 당시 공동체 사회의 결집과 권력의 태동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인돌은 당시 사람들이 무척 현명했고 과학 수준도 높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석굴암이나 첨성대와 같은 것도 이 고인돌 제작 기술의 결집으로 이뤄진 것이죠. 한편 고인돌에서 자주 발굴되는 붉은 간토기의 붉은 빛은 죽음과 영생을 상징하고, 고인돌 표면에 많이 파인 구멍(3~10cm)은 다산이나 경외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고인돌에 대해선 아직 규명된 것이 많지가 않아요. 사실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인돌 왕국입니다. 한반도에 4만여 기가 남아 있는데, 왜 한반도에 그리 많은지 나중에 꼭 밝히고 싶은 연구과제입니다.”

다시 말해 고인돌을 연구하는 일은 우리 민족 문화의 원형을 밝히는 일이 아닌가. 기회가 닿는다면 어느 마을 어귀나 논두렁 옆에 덩그머니 서 있는 고인돌에 손을 대고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숨결을 느껴볼 일이다.

하 교수는 고고학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엄격함과 통찰력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을 얻기 위해서인가? 그는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또 선문답 같다. 뿌리를 알아야 줄기를 안다는 식의 얘기겠지만 나머지는 읽는 이의 몫으로 남긴다. 역사 뒤편으로 사라진 것들, 땅속으로 파묻힌 것들을 찾아 이야기한다는 것의 의미를. 당신도 손에 삽을 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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