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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법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김경석

들으면 알 만한 이들의 무료 변론으로 유명한 변호사, 엄상익. 그를 만나는 길은 내게 적잖은 부담이었다. 처음 해 보는 인터뷰에 미리 알고 있는 것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여느 법원 근처의 사무실과 달리 막다른 골목길 끝, 마치 한적한 시골 전원 주택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집이 엄 변호사의 사무실이다. 둥글둥글한 얼굴의 그는 인심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흔쾌히 나를 맞아 주었다. 부담을 한결 덜어내는 느낌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변호사가 꿈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다 보니 어느 순간 변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무료 변론을 많이 하는 이유를 묻자 그가 간단한 일화로 답을 해 주었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계단에서 김밥을 파는 할머니가 물도 없이 김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할머니 물도 없이 김밥을 드세요? 체하면 어쩌시려구요. 이거 드세요.” 하며 그는 콜라를 건네 주었다.

이처럼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접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따라 마음이 저절로 이끌린다는 것이다. 즉흥적일지언정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는 것. 단순하지만 아름답지 않는가. 머리보다 가슴으로 생각하고 따져 보며 변론을 한다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것 또 하나. 죄보다 사람을 먼저 볼 것. 엄 변호사는 의뢰인을 대할 때 그의 옷을 벗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죄를 지은 사람은 자기가 먼저 안다. 그의 허물을 벗기고 그 사람보다 낮아지고, 그 사람과 마음의 교감을 나눈다.

‘교만죄’라는 것이 있다. 물론 법에 있는 죄목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죄를 지은 전과자라고 하면 마음의 벽을 높게 쌓는 경향이 있다. 엄 변호사는 그런 생각을 ‘교만죄’라고 말한다. 사람은 본디 평등할 뿐 그가 단지 죄인이었다는 이유로 그가 더 못난 존재이고 내가 더 낫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이가 절도죄를 지었다면 그것은 법에 저촉되는 죄이겠지만 교만죄는 인생에 저촉되는 죄가 아닐까. 사회적 냉대로 마음 한 구석 서늘할 전과자들에게 따스한 볕을 주지는 못할망정.

날이 추울수록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을 향해 촛불을 켜고 나아가 스스로 낮아지는 이가 그립다. 그 따스함과 밝은 빛을 서로의 마음 가득 나눌 수 있을 날이 또한 그립다. 그러기 위해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우리가 그들과 다르다는 교만의 벽을 허물면 겨울은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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