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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편지를 써야겠다. 그가 배달해 줄 것이다’ 오광근

지리산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는 그는 시를 쓴다고 했다. 지리산의 집배원 시인. 산과 편지와 시가 낭만적으로 어우러진 이름. 영화 일포스티노를 떠올리게도 한다.

남원에서 함흥 마천면을 찾아가는 굽이굽이 길에 눈이 내렸다. 눈발 거세게 날리는 지리산 자락과 계곡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눈 때문에 버스는 기어기어 갔고 어렵지 않게 마천우체국을 찾아 최장식(47)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은 일찍 끝냈어요. 눈이 내리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수가 없거든요. 내일 아침 해가 뜨고 눈 녹지 않으면 일 못하는 거죠.”

가파른 길 적지 않을 이 지리산골에서 집배원 생활을 한 지 23년. 고향은 순천이지만 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우편 배달을 하면서 사람들 잔심부름도 자청한다. 어르신들 장도 봐주고, 은행 일도 대신 처리해 준다. 어느 집에선 편지를 전하다 밭일을 거들고 새참을 얻어먹기도 하고, 겨울날 길에 얼어 쓰러진 이를 발견해 구해 준 일도 있다. 어차피 오가는 발걸음이라지만 그 걸음에 푸근한 산골의 정을 담아 전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산골 어르신들의 영정 사진을 찍어 드렸다고도 한다.

“대수로운 일이겠어요? 여기 다른 집배원들도 다 마찬가지죠. 자연스럽게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점이 집배원의 좋은 점이죠.”
그의 표현대로 ‘반찬이나 하시라고 한번쯤 생선 사 드리는 정도’일지라도 남을 위한다는 것은 역시 따뜻한 일이 아니겠는가.

아, 그는 또 시를 쓴다고 말했다. 그는 시인이다. 1995년에는 ‘나의 물음표’란 시집도 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벌써 20년. ‘지리산문학회’란 지역 동인에서 지금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언젠가 우편 배달하는 길에 시상을 떠올리다 오토바이를 탄 채 논두렁에 빠진 적이 있다는 얘기에 웃음이 나왔지만 시를 사랑하는 이가 아니고선 그럴 일도 없으려니 싶다.
“이름 모를 들꽃들 보면서 나도 살아가면서 저처럼 꽃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한 그의 시적인 대답이다. 그는 자신의 시는 쉽다고 했다.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단상 하나하나 투명하고 따뜻하게 표현하는 시가 쉬운 시가 아닐까. 그의 시 가운데 하나 짧게 소개한다. 

강물도 추울수록 / 두텁게 얼음 이불을 덮는다 / 지난해 여름 뭇사람들이 / 헤집고 다니던 상처들 / 얼음이 녹기 전에 상처들을 / 아물게 해야 한다 / 메기의 입술에 걸린 / 낚시바늘도 빼내야 한다 (‘해빙기’ 중에서)

집배원이자 시인이며 따뜻한 이웃인 최장식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느 눈 내리는 산골 마을로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는 심정으로 어느 그리운 이에게. 

그곳 지리산의 마을에 전해지는 우편물은 고지서나 광고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편지가 드문 시대다. 편지를 써야겠다. 그가 배달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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