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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여, 소통하라! 김영현

섬 - ‘너’와 ‘나’ 사이에 그리움 있나니   
태초에 모든 것은 하나였고 한 몸이었다. 너와 나의 구분이 없었으며, 이것과 저것의 분별 또한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빅뱅이 일어났고, 모든 것은 각기 분리되어 제각기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제가끔 얼굴과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분리된 삼라만상, 만물과 인간의 마음 속엔 처음 하나였고 한 몸이었을 적의 기억이 남아 늘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사람들은 사랑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래서 프랑스의 시인 쟝 그르니예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섬,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그리움의 섬, 서로가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더욱 안타까운 사랑의 섬…. 누군들 그 섬에 가고 싶지 않겠는가.

벽 - 높디높고 견고하디견고한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과 그리움의 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아니, 그보다도 더 많은 벽들이, 견고하고 높은 벽들이 가로놓여 있다. 미움의 벽, 편견의 벽, 고정관념의 벽, 오해의 벽, 증오의 벽들…. 서로가 서로를 감옥처럼 분리시켜 놓는 수많은 벽들…. 어쩌면 우리는 섬보다 많은 벽들의 숲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상의 한쪽에서는 포탄 연기가 자욱히 퍼지고 있고, 굶주림과 추위에 병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지금도 거리 곳곳에서는 시비가 일고 멱살잡이가 벌어지며 폭력과 광기의 풍경들이 연출되고 있다. 사람들은 더이상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큰 실수에는 태연하면서 남의 작은 실수는 결코 용서하는 법이 없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길에 차와 차가 접촉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두 운전수가 거리에 나와 욕설이 오가고 마침내는 드잡이가 벌어졌다. 흔한 풍경이라 모두 모른 척 지나간다.
외국에 나가면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는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서로의 생각이나 마음을 알 길이 없다. 그래도 외국은 어디까지나 외국이니까 서로 이해를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같은 말을 쓰면서도 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아니, 말조차 거추장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말을 하지 않아도, 가만히 침묵을 하고 있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만 있다면 도대체 말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도를 흔히 영적 존재와 나 사이에 일어나는 침묵의 대화라고 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저 영혼의 깊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대화를 자신과 나눌 수가 있을 것인가.
돌아가신 성철스님은 자기를 만나러 오기 전에 꼭 천배를 시켰다고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낮추었던 스님이 교만해서 그랬을까? 아니다. 천배를 하는 동안 그 사람의 마음에 쌓여 있던 벽들을 스스로 허물어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세상과의 소통, 인간과 인간의 소통 중에서 가장 첫번째의 일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벽부터 없애버리는 것일 터이다. 내 속에 있는 편견, 내 속에 있는 고정관념, 나라는 것, 나라는 괴물, 똥덩어리 같은 나의 자의식, 그것부터 없애야 한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리하여 남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의 곁으로 갈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이 벽부터 깨지 않으면 안된다. 

물 - 흐르고 흘러 하나 되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은 방울방울 녹아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간다. 티벳고원을 지날 때는 얄룽창포 강으로 불리워지던 물이 히말라야의 설산을 뚫고 넘어 마침내 인도의 갠지즈 강이 되고 거대한 메콩강이 되어 인도양과 남지나해로 흘러간다.
물은 생명이니, 모든 생명은 태초와 같이 하나요 한 몸이 되고자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것이다. 수많은 장애와 험난한 길에도 물의 흐름은 결코 주저하는 법이 없다. 어떠한 경계도 물의 흐름을 막을 수가 없다. 어떠한 편견도 미움도, 어떠한 오해와 고정관념도 물의 흐름을 막을 수 있는 벽이 될 수가 없다. 생명은 곧 이렇게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모인 것이다. 작은 민들레 씨가 어둡고 추운 감옥의 견고한 벽을 넘어 날아온 것을 보고 시인 김지하는 생명의 위대함과 무한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어찌 김지하뿐이겠는가!
우리가 곧 물이다. 태초에 그러했듯이 우리가 곧 우주며 삼라만상이며 생명 그 자체이다. 이제 너와 나 물이 되어 만나야 한다. 물이 되어 모든 벽을 깨어부수고 넘어뜨리고 알몸뚱이로 서로 껴안아야 한다. 그것이 준엄한 생명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저 고질병처럼 우리를 병들게 하는 분단의 벽, 지역 감정의 벽, 빈부의 벽, 학벌과 인맥의 벽, 모두 우리의 물처럼 흐르는 몸뚱아리로 부셔버려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그 사이로 바람이 불고 피가 흐를 것이다. 그러면 너와 나의 사이에 그리움과 사랑의 섬이 생기고, 비로소 우리는 그 섬에 가고 싶을 것이다. 모든 것은 소통하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여, 서로 소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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