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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얼굴 임종자들의 천사 이인영

소녀 하노라의 입회
스노우 드로피 하얀 꽃과 귀여운 크로커스가 봄이면 먼저 초록색을 내미는 곳, 아일랜드의 남부 농촌에서 그녀가 태어났다. 1남 6녀 중 둘째딸 와이즈맨 하노라(55세)는 일찍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농사를 짓느라고 구부린 등 너머 초원을 바라보며 자랐다. 피곤해도 일이 끝나면 정원에서 꽃 가꾸는 걸 좋아하던 어머니. 이웃집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정 많던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깔깔 웃고, 장미며 수선화를 벗하며 뛰놀았다. 그런 그녀가 생면부지의 땅 전라도를 밟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좋은 환경, 부자는 아니었지만 시야를 틔워 주던 들판, 열심히 일하던 맘 좋은 어머니, 구교의 신앙에 물든 정직한 영혼. 소녀 하노라는 저절로 착했고, 더 예쁜 게 뭘까 생각했다. 그래서 17세에 구수한 엄마의 빵 냄새와 떨어져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수녀회에 입회했다.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質) 없는 황금과 밤의 올(絲)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 한용운의 ‘이별은 미(美)의 창조’ 중에서

아름다운 이름   
‘호스피스’란 말은 중세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숙소를 ‘호스페스(Hospes)’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고, 지금은 ‘임종 간호’라고도 한다. 하노라 수녀는 젊은 엄마가 임종할 때 제일 가슴이 아프고 한다.
3살, 5살, 7살 자신의 소중한 아기에게 한 엄마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잘 살아라…. 아빠 말씀 잘… 들어라….” 눈물이 핑 돌아 옆으로 떨어진다. 엄마를 잃는 것도 모르고 둥그래진 눈으로 쳐다보는 아가 볼을 그녀는 만지고 또 만진다.
또 아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던 한 엄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목걸이를 힘겹게 풀고, 반지를 챙겨, “이 담에 좋은 여자 생기거든… 이거 너 결혼할 때 줘라…. 이건 네가 결혼할 때….” 엄마는 애써 미소를 짓는다. 아들들은 고개를 푹 숙인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새빨개진 아들들의 귀와 흔들리는 어깨를 뿌연 시야로 말없이 쳐다본다.
첫 서원 후 1970년 간호학교를 졸업한 하노라 수녀는 홍콩, 필리핀, 한국, 페루 중 페루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발을 디딘 곳은 고향처럼 들판이 이어져 있는 전라도였다. 26세의 처녀는 이방의 나라 전라도 목포 성골롬반 의원에서 뱀에 물려 독이 퍼진 환자들, 해마다 뇌막염으로 죽어가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목포에서 10년 넘게 간호 봉사를 하며 선교했던 그녀는 1984년 아일랜드로 귀국할 기회가 있었다. 4년 동안 본국에 있으며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심리학을 공부하고, 또 당시 그곳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던 호스피스 활동을 배웠다. 그리고 한국에도 호스피스를 도입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후두암 말기 할아버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장 꺼려하는 것을 봐야만 하는 거였다. 후두암 말기 할아버지의 스카프로 가려진 목. 병원에서도 포기한 할아버지의 얼굴은 너무나 크다. 스카프에 달라붙은 짓무른 암 덩어리가 아프지 않도록(?) 소독약을 부어가며 떼어냈다.
다시 가슴이 두근거려 왔다. 훅 숨을 들이쉬어 본다. 보기에도 너무나 아플 것 같은 불룩불룩한 암 덩어리! 암을 다독거리며 약을 발라 주는 사람…. 임종 때까지 방문하여 치료해 주고 벗도 되어 주고 기도도 해 준다. 하노라 수녀는 할아버지 손을 내내 잡아 주었다. 하노라 수녀를 본 순간부터 편한 미소를 거두지 않는 할아버지.
“ 24시간 돕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아픈 건 대부분 밤에 심해요. 아무 때나 연락하라면 굉장히 안심을 해요.”
아름다운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밝아온다. 전문 간호사가 자신을 끝까지 방치하지 않고 돌봐 준다니…. 게다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들어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아무 때나 온다니…. 마음을 열고 난 환자들은 모든 것을 편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가정 호스피스는 ‘병원에서 가능한 모든 치료를 받고 난 후 가정으로 돌아간 환자들을 방문하여 돌보는 것’을 말한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거의 다 다섯 단계를 거친다.  부정, 분노, 타협, 눈물, 수용. 그중에서 분노가 가장 힘든 단계이다. 이를 미리 알면 가족들도 대처하기가 한결 날 텐데 대부분 어쩔 줄 몰라하고 힘들어 한다. 무조건 짜증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구 화를 낸다. 그럴 때 잘 보살펴 줘야 한다. 옆에서 도와 주면 거의가 행복하게 하늘나라에 간다. 그러니 호스피스란 얼마나 소중한가!
그런데 또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가족들이다. 가족에게도 위로와 돌봐줌이 절대로 필요하다. 한 할머니가 계셨다. 자식들은 지성으로 할머니를 간병했지만 할아버지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바로 자신 때문에 할머니가 속상해 병이 생겼다고 생각해 나타나지도 못했던 것. 할머니가 가시고 며칠 있다 그 할아버지가 죄책감에 시달려 자살했을 때, 돌봐 줌이 필요한 건 환자뿐 아니라 가족 전부란 걸 알게 되었다. 두 분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어야 했던 것이다.

옥자 씨와 어머니   
하늘은 청명했다. 춘천 외곽의 허술한 슬레이트 집을 찾았다. 4년 전 담관암으로 수술 치료 불가능이란 판정을 받고 하반신 마비가 온 옥자 씨(49세). 3개월 판정을 받았지만 4년 넘게 살고 있었다. “수녀님이 날마다 기다려지고 제 돌아가신 어머니가 오시는 것보다 더 반가워요.” 하는 그녀의 늙으신 어머니.
정말 이 세상의 어머니는 위대하다. 80세도 훌쩍 넘으신 어머니는 품으로 찾아 들어온 병든 딸을 살리고자 모든 것을 다한다. 병원에서 손들었지만 어머니는 그럴 수 없다. 아침이면 감자를 갈아 물을 먹인다. 오가피 물도 먹이고, 7시간 물에 담궜다 말린 가지가루도 먹이고, 삽주싹 뿌리며 돈나물과 다시마, 오가피 잎으로 만든 가루, 봄이면 민들레, 다시마, 콩으로 만든 가루…. 정성도 깊으면 하늘에 닿는가! 점점 좋아지는 딸을 보면 더 살아도 될 것 같다.
무엇보다 하노라 수녀를 보기만 해도 활짝 웃는 딸을 위해 매일 매일 기다린다. 갑자기 문 여는 소리가 노크도 없이 들리고 이웃 아낙이 부산하게 들어온다. 왔다는 기척만으로 쑥 들어오고 가는 사람들.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 난다. 손에는 밭에서 딴 호박이 대여섯 개, 옥수수 가루 등이 들려 있다.
“아! 수녀님 오셨어요? 왜 난 선물도 안 줘요. 나도 줘요?”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퍼진다. 하노라 수녀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이웃 아낙의 그것처럼 소탈하고 편하다. 걸핏하면 웃어버리는 그녀. 보기만 해도 안심이 되는 젖줄 같은 그녀가 벙글거린다.

푸른 웃음소리 가득하던 날   
하노라 수녀는 새벽 4시면 일어나 묵상을 한 후 좋은 일에 쓸 빵을 구워 낸다. 그 후 그의 하루 일과는 오전 오후의 환자 방문으로, 성골롬반병원 간호과장으로서의 업무로, 예비 수녀들의 교육으로, 꽉 차 있다. 하지만 하노라 수녀의 영혼은 늘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다.
함께 가던 길, 장례식장에서 만난 한 미망인에게 ‘정말 잘해 주었어요. 편히 돌봐 주셨어요….’ 하며 미소와 함께 다독여 주던 하노라 수녀의 말은 옆에서 듣는 사람에게조차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을까’ 싶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굳이 굳이 밭에 데려가 배추를 안겨 주던 이웃 아낙의 정다운 마음 곁에 하노라 수녀의 향기로운 웃음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푸른 하늘이 유별나게 맑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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