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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둣돌 세상에서 제일 먼 곳 안도현

만복이가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서울 다녀온 이야기를 들으려고 슬기와 난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만복이를 바라봅니다. 슬기와 난이는 아직 서울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서울에는 만복이의 작은아버지가 살고 있습니다. 
“우와, 우리 작은아버지네 가게에 신발이 억만 개쯤 되더라. 또 서울 사람들은 눈사람같이 얼굴이 하얗더라.”
만복이가 이렇게 말하면, 슬기와 난이의 눈동자가 주먹만큼 커집니다. 슬기와 난이 앞에서 만복이는 자꾸 으스대고 싶습니다. 슬기와 난이의 눈동자가 주먹만큼 커지는 게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자랑할 거리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만복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와, 서울이 이 세상에서 제일 먼 곳이더라.”
만복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난이가 입을 삐쭉거립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먼 곳은 미국이야.” 난이는 만복이의 콧대를 꺾고 싶습니다.
“그래, 아프리카도 얼마나 멀다구.” 슬기도 지지 않고 한 마디 거듭니다.
만복이는 서울도 안 가 본 동무들한테 지기는 싫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한 뒤에 만복이가 말했습니다. “아프리카보다 더 먼 곳은 달나라야.”
난이도 여기에서 밀릴 수는 없습니다. 서울 한 번 가 봤다고 자랑만 늘어놓는 만복이의 콧대를 꼭 꺾고 싶습니다. “아니야. 달나라보다 더 먼 곳은 하늘이야.”
만복이도 밀릴 수는 없습니다. “아니야. 하늘보다 더더 먼 곳은 우주 끝이야. ”
만복이의 말이 끝났는데도 난이는 입을 열지 못합니다. 만복이가 말했습니다. “더 먼 곳을 알면 어서 말해 봐.”
우주 끝보다 더 먼 곳을 난이는 알지 못합니다. 난이의 얼굴은 울상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만복이에게 밀릴 슬기가 아닙니다.
“우주 끝보다 더 먼 곳이 있어. 그건 우리 할아버지 고향이야.”
“뭐라구? 거짓말하지 마.”
“정말이야. 우리 할아버지께 한 번 여쭈어 볼래?”
만복이와 난이와 함께 슬기는 할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웃으면서, 슬기와 만복이와 난이의 머리를 쓰다듬으셨습니다.
“그래. 아주 먼 곳이지. 얘들아, 내 고향은 북쪽이란다. 함경도 원산이라는 곳이지.”
“거기가 얼마나 먼 곳인데요?”
“고향을 떠나온 지 오십 년이 넘도록 한 번도 못 가 본 곳이란다.”
“오십 년이나요?” 만복이와 난이의 눈동자가 또 주먹만큼 커집니다.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야. 휴전선만 없다면 한나절이면 갈 수 있는데….”

슬기는 휴전선을 잘 모릅니다. 만복이와 난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먼 곳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미국보다 더 먼 곳, 아프리카보다 더 먼 곳, 달나라보다 더 먼 곳, 하늘보다 더 먼 곳, 우주 끝보다 더 먼 곳, 그 곳은 휴전선 너머 슬기네 할아버지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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