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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숨은 예인 밀양강변의 춤추는 사내, 하용부 진옥섭

예부터 “영남은 춤”이라 한다. 말마따나 영남사람들 참 춤에 각별하다. 이 사람들 오죽이 각별한지 침을 뱉고도 ‘춤’을 뱉었다고 한다. 첫 마디를 농(弄)으로 건네지만, 영남 땅은 걷노라면 그저 춤이다.
그중 멋스런 곳이 밀양 땅이다. 밀양강이 굽이치며 깎아지른 절벽에는 영남루가 솟았고, 건너편 둔치 삼문동엔 춤이 퇴적하였다. 물과 숲으로 이뤄진 삼문동. 예부터 백중날이 되면 “소 잡아 북 메우고, 말 잡아 장고 메고 안성마치 깽쇠 치고, 운봉내기 징 쳤다.” 그러면 너나없이 춤에 뛰어들었는데, 거기 백발의 신선도 날아들었다. 아! 하보경(河寶鏡, 1906-1997). 젊은 날 씨름판에서 부러진 왼팔이 처져 있었지만, 춤판에 나서면 외려 바람에 휜 가지처럼 절대의 곡선이었다. 사람들 말하길 “그저 서있기만 해도 춤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옛일, 하여 그 춤이 그리우면 하용부(河龍富, 55)를 찾는다. 경상도 사내가 그렇듯 “밥 묵었나” 정도 말하는 과묵형인데, 춤 이야기만 나오면 숨넘어가게 침 튀긴다. 댓님을 매면서부터 춤 지론을 펼치는데, 무용담(舞踊談)이 무용담(武勇談)이다. “관객이 오백이든 천이든 딱 한 사람만 거꾸러뜨리면 나머지도 다 자빠진다.” 순식간에 차려입고 꺼내는 춤사위마저 싸울 태세다. 다리는 굴신을 주고 양손은 흘러온 장단 쪽을 향해 들고 빈틈없이 대적하니 ‘춤’이자 ‘쌈’이었다.

‘침’에서 ‘춤’이 난다
하용부의 춤은 침에 있다. 북을 치며 춤을 추는 건데,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북을 치는 것이다. 특별히 만들어진 자세가 아니라, 치느라 저도 모르게 만들어진 자세다. 북소리를 구하는 이 절실한 태도가 저절로 춤이 된다. 곧 ‘침’에서 ‘춤’이 나는 것이다. 북을 덩! 울려놓고 덱데구루루 굴러 떨어지는 장단 피해 가듯 사뿐히 튀어 올라 북통을 빵! 빵! 치며 앞으로 뛴다. 그리고 빵빵한 소리에 스스로 취해 “캬!”하는 추임새를 터트리고, 잔향 가시기 전 ‘딱딱!’거리며 둥글게 퍼지는 동심원 속으로 훌쩍 뛰어드니, <북춤>이 되는 것이다.
이윽고 춤이 충천하면 북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춤추는데, 이를 <범부춤>이라 한다. 그간 스스로 울린 북소리가 몸속에 태엽으로 감겼다 풀리는 양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골고루 퍼진장단이 서서히 숨으로 뱉어진다. 그리고 내재된 운율감에 들뜨는데 그 들뜸, 바로 호흡이 부여한 부감이다. 그저 두 팔로 활개만 벌리고 서 있어도 장내는 이미 흥에 흥건히 젖어 갔다. 이번엔 침 대신 숨이 보인다. 그저 숨 쉬는 대로 내맡길 뿐인데, 저절로 춤이 들리는 것이다. 그저 태연히 멈춰버린 무심한 한 지경. 그 춤을 가동하는 숨. 이 숨은 참으로 길고 깊다. 바로 ‘조상의 숨결’이기 때문이다.
증조부 하성옥, 조부 하보경, 부친 하병호 모두 춤에 몰두한 한량이었다. “북은 내 심장이라!” 삼문동에서 태어난 그날부터 줄곧 할아버지 하보경의 북소리에 들떠 살았다. 사춘기 때는 교복의 윗단추를 풀고 다녔다. 엉거주춤하다가 들이댓바람으로 펼쳐 관객을 쓰러뜨리는 ‘휨’과 ‘폄’의 탄력은 당시에 패거리들과 육박전 하다 움튼 것이리라. 1980년 할아버지가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가문회의를 열었고, 놀이판에 반말이 일쑤이기에 한 대를 걸러 손자인 그가 춤을 담당키로 했다. <북춤>, <범부춤>을 추었고, 1985년 한국민속촌 공연에서 감기가 든 할아버지가 도포를 넘겨주자 어느새 부채를 펼쳐 <양반춤>을 추고 있었다. “몸에 뼈다구가 없이”,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듯”, 할아버지의 한마디 한마디를 먹줄 삼아 몸을 다듬어갔다.
1989년 연극연출가 이윤택을 만나 연희단거리패에게 숨을 가르쳤고, <오구>를 필두로 <길 떠나는 가족>, <사혼>, <어머니> 등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작에서 연기와 안무를 하며 세계를 순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의 안무가 도미니끄 로보가 그의 춤을 보고 “물결”이라 했다. 1995년 프랑스 ‘발드마른무용축제’에 그를 초청하여 춤판을 벌였고, 배움을 청했다. 춤이 아닌 몸이 흐르는 비결을 숨으로 일러 주었다. ‘물결’에 흠뻑 젖은 그녀는 1997년 그를 다시 불러 숨을 배우고 춤을 무대에 세웠다.
그 무대에서는 태양극단의 연출가 아리안 뮤느스킨을 젖어들게 하였다. 그녀는 1998년 제1회 서울세계무용 축제에 참관하였고 ‘명무초청공연’에서 그의 춤을 보고 독일의 안무가 수잔링케와 함께 이구동성으로 “물”이라 말했다. 독일의 안무가 피나바우쉬 역시 그의 흐름을 보고 감격해 2001년 부퍼탈에 불러 무대에 세웠다. 20세기를 휘어잡은 무대 예술가들을 뒤흔든 춤의 실체는 숨이었다. 의식하지 않지만 더 깊이 드나드는 숨, 폐를 거치지 않고 직접 땀구멍으로 드나들 듯, 살아 숨 쉬는 숨이었다.
서구에서 춤의 기본은 발레였다. 예서 이사도라 던컨이 토슈즈를 벗어던지고 ‘맨발의 이사도라’가 되어 현대무용이 출발했다. 그러나 타이즈의 탄력으로 발끝부터 끌어올리는 발레식의 호흡은 여전히 기본이었다. 무법의 파괴를 무법으로 삼는 것이 현대의 무용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진일보한 측은 타이즈를 벗어 자연스런 호흡을 추구한다. 긴장을 통한 이완에서 이완을 통한 이완으로의 이동인데, 바로 하용부의 풀어헤쳐 추는 춤에 주목하는 이유다. 가문에서 전래한 옛 춤이 현대 춤이 도달하고자 하는 미래에 미리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대대손손 이룬, 강물 같은 춤
2002년 하용부는 <밀양백중놀이>의 보유자가 된다. 그러나 그의 춤은 멈추지 않고 진화해간다. 요즘 주목하는 게 그가 만들어 추는 <영무(靈舞)>다. 조상들이 일러준 대로 흐름에 내맡겨진 무의식(無意識)의 춤이다. 멈춰선 듯한 속에서의 움직임. 그 움직임 너머의 움직임으로 눈요깃거리를 넘어서는 춤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를 무가(舞家)에서 전승한 무의식(巫意識)처럼 본 지기(知己)에 의해 ‘영무’로 작명된 것이다. 그간 추어 온 <북춤>, <범부춤>, <양반춤>이 마개를 금방 딴 신선한 신명이라면, <영무>는 신과의 소통을 꿈꾼다.
신과의 소통이 원활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춤이 다른 춤꾼들, 가령 발레나 현대무용과 소통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대개 다른 분야 간의 만남은 뉴스거리는 되지만, 대개 볼거리를 주려다 웃음거리로 끝난다. 그러나 하용부는 흐르는 물줄기처럼 그들 속에 스며들어 압도적 갈채를 받는다. 관공서적인 용어로 ‘전통의 현대화’가 아니다. 원래 모든 전통은 당대의 유행 속에서 살아남아 오늘에 도달한 것이다. 대대로 춤을 물려온 집안이라, 유전자 속에 살아남는 비결 ‘소통’이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2009년 3월 하용부는 파리 바스티유오페라극장 무대에 섰다. 세계문화의 집에서 벌이는 ‘상상축제’에서 단순한 찬조 출연이 아닌 하용부란 개인의 완판을 부른 것이니 큰 경사였다. 사실 동행하지 못했지만, 기사 몇 편 읽기도 전에 ‘안 봐도 비디오’다. 엉거주춤 서 있다가 단숨에 한방으로 심금의 급소를 찔러 자빠뜨렸을 것이다.

밀양강변에서 성씨도 ‘물 하(河)’자를 쓰며 대대손손 춤을 전해온 사람들. 하성옥, 하보경, 하병호, 하용부. 그들이 이룬 강물같은 춤이 전국을 적시고 이제 세계만방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지금 춤의 종손 하용부에 의해 춤의 대하(大河)드라마가 절정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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