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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재단과 함께 하는 캠프 정은 낙엽처럼 쌓이고... 이인모

울긋불긋 단풍이 곱게 물든 10월 24일 강원 춘천시 남이섬은 관광객들로 하루종일 북적였다. 서울 도심보다 더한 교통 체증 탓에 경기 가평읍내에서 선착장까지 1시간, 배를 기다리고 남이섬까지 들어가는데 또 1시간. 서울에서 가평까지 차로 달려온 것까지 더하면 지칠 법도 한데 남이섬을 찾은 관광객들의 얼굴에서 피곤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루함과 짜증은 모두 섬 밖에 두고 온 것처럼 보였다.
이날 남이섬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한 관광객들 중에는 다문화 가족 49쌍, 190여 명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과 경기 지역 거주자들로 서울 동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주관하고, 아산사회복지재단이 후원한 ‘아산재단과 함께 하는 다문화 가족 1박2일 캠프, 사랑 talk, 희망 talk~ talk’ 참가자들. 외국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이 가정을 꾸려 오순도순 살고 있는 이들이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나무액자 만들고 미니열차 타고
베트남 출신 원태희(23·여·서울 광진구 자양동) 씨는 “드라마 겨울연가 배경지인 남이섬에 가고, 멋진 콘도에서 하룻밤을 머문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신청했다”며 “무엇보다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중국 출신의 유진화(33·여·서울 중랑구 면목동) 씨는 “남이섬은 재작년에 이어 두 번째지만 올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든다”며 “이런 캠프를 마련해 준 주최 측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캠프 참가자들은 이날 오전 9시 서울 경희대에 모여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이들은 아침 식사대용으로 나눠준 떡을 먹으며 시종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전부터 친분이 있던 가족들이 많기 때문인지 버스 안은 화기애애했다. 더욱이 각 가정의 자녀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 덕에 여정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남이섬에 도착한 가족들은 조별로 나무 액자 만들기와 남이섬 열차 타기를 번갈아 했다. 가족들은 나무를 자르고 접착제를 이용해 추억을 담아둘 멋진 액자를 만들었다. 또 미니열차를 타고 남이섬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열차를 탄 다문화가족들이 손을 흔들자 열차를 구경하던 관광객들도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이곳에선 다문화가족에 대한 어떤 편견이나 거리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족들을 이끌고 캠프에 참가한 김점수(44·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씨는 “주말이면 나들이를 자주 하는 편인데 남이섬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경치도 뛰어나고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해 덩달아 즐겁다”고 덧붙였다.

상담하며 고민 나눠
남이섬에서의 짧은 여행을 마친 가족들은 숙소이기도 한 엘리시안 강촌을 찾았다. 북한강변 좁은 길을 거슬러 산 속 엘리시안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녹음과 단풍이 어우러진 계곡 사이에 우뚝 솟은 리조트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경치를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을 배정 받고 짐을 정리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전문강사와 함께 하는 신나는 레크리에이션.
이날 레크리에이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신문지와 전단지로 즉석 모델 꾸미기’였다. 각 조별로 모델 한 명씩을 정해 종이를 접고 찢고 붙여서 장식하는 것. 잠시 후 이들의 손을 통해 신문지는 치마, 왕관, 모자, 귀걸이로 변했고 그럴듯한 차림을 한 모델들이 탄생했다. 무대에 오른 이들은 저마다 모델 같은 워킹 실력을 뽐내며 캠프 참가자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부모와 함께 온 홍재민(8) 군은 “정말 너무 재미있다. 다음에도 다시 오고 싶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번 캠프가 웃고 즐기는데 그친 것만은 아니다. 동대문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오윤자 센터장(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은 부부들에게 ‘다문화가족 및 다문화사회 이해’를 주제로 특강을 실시했다. 이어 다문화가족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시간도 마련됐다. 별도 마련된 상담실을 찾은 한 중국 출신 여성은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결혼 생활의 가장 큰 고충거리임을 털어놨다.
“시어머니는 무조건 저에게만 시키고, 저만 변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나도 고집이 세고, 시어머니도 고집이 세서 다툼이 자주 생겨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우울해집니다.”
이에 대해 동대문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상담 직원은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우선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갈등 상황에 대해 시어머니와 이야기해 보고,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라는 것. 또 집에 있는 시간을 줄여 각종 모임이나 한국어 교육과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권했다. 남편과도 상담을 통해 아내가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모님에게 잘 말씀드리고, 아내의 입장을 지지해주면서 시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도록 처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밖에도 베트남 출신의 한 여성은 남편과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중학생 딸과의 갈등을 호소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박물관 관람 끝으로 “굿바이 춘천”
이번 캠프에는 동대문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아산재단 직원, 자원봉사자 등 25명이 참여해 진행을 도왔다. 자원봉사자 박귀훈(50·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씨는 “몸은 힘들지만 큰 보람을 느꼈다”며 “무엇보다 민간외교관이라는 자세로 이들과 소통하는 데 노력했다”고 말했다. 손순남(57·서울 도봉구 창동) 씨도 “시간은 뺏기지만 다문화 가족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매우 기쁘다”며 “이같은 행복 바이러스가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산재단은 그동안 다양한 사회복지 행사를 주관 또는 후원했지만 다문화가족 캠프는 처음. 지난 8월 부스러기사랑나눔회가 주최한 지역아동센터 아동의 유적지 및 산업체 견학에도 힘을 보탰다.
캠프 둘째 날인 25일. 가족들은 춘천시 서면 현암리에 자리 잡은 애니메이션박물관을 관람했다. 이 곳에서 아이들은 아기공룡 둘리, 마징가Z 등 낯익은 캐릭터들과 전시물을 구경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부모들도 옛 모습을 재현한 만화가게와 옛 만화책들을 보고 향수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어 가족들은 입체 안경을 쓰고 3D애니메이션을 구경한 뒤 아쉬운 귀경길에 올랐다. 1박2일 짧은 일정 동안 만든 커다란 추억을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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