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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인간의 손에 ‘생명의 설계도’가 쥐어지고 있다 김훈기

인간게놈프로젝트는 ‘표준 인간’의 청사진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이 자료가 확보되면 개개인의 유전자 상태가 표준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나아가 비교유전체학의 연구 결과를 통해 ‘사람마다 모습이 다른 것은 어떤 유전자 때문인가?’ ‘장수하는 집안과 단명하는 집안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를 밝힐 수 있다.

‘아폴로 계획’ 이후 최대 규모로 통하는 프로젝트
지난 6월 말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초안이 완성됐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총 소요 비용 30억 달러. 1960년대 미국이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목표로 추진한 ‘아폴로 계획’ 이후 최대 규모로 통하는 프로젝트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가장 큰 의미는 난치병 치료에 있다. 백혈병, 치매, 심장기형과 같이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난치병이 정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상 유전자와 질병 유전자에 관한 데이터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바로 불로장생의 비밀을 유전자 수준에서 밝힐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의 비밀은 DNA에 담겨 있다
금세기 들어 사람의 기대수명은 선진국의 경우 1900년 49세에서 1970년 70세, 1997년 76세로 늘었다. 그런데 이는 노화를 늦춰서라기보다 전염병을 퇴치했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으로 노화가 억제된다면 1백살을 훨씬 넘을 수 있지 않을까. 도대체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무엇이길래 이런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게놈(Genome)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말로서, 생물에 담긴 유전정보 전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유전자는 우리 몸의 어디에 존재할까. 세포다.
인체는 수조(兆)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 각 세포의 핵에는 1쌍의 성염색체(여성은 XX, 남성은 XY)를 포함한 23쌍의 염색체가 존재한다. 염색체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성분이 이중나선 모양의 DNA다. 유전자의 비밀은 바로 DNA에 담겨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의 10만여 개 유전자 하나하나의 정확한 위치를 밝혀내는 일이다.

유전자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는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된 후 연구의 나아갈 길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가지는지 밝히는 기능유전체학(Functional Genomics)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개인들의 염기서열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규명하는 비교유전체학(Comparative Genomics)이다.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는 방법으로는 생물학적 접근과 생화학적 접근이 있다. 생물학적 접근은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모델동물로부터 특정 유전자를 제거해 생리작용이 변화하는 상태를 관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어떤 유전자가 질병의 원인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인간과 유전자 구조가 비슷한 동물들로부터 얻은 데이터가 인간의 유전자 질환의 원인 규명에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의학계는 벌써부터 술렁이고 있다.
이에 비해 생화학적인 접근은 이미 알고 있는 유전정보로부터 어떤 단백질이 만들어지는지를 추적하고 제조해 그 구조와 기능을 밝혀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세포의 여러 소기관을 인공적으로 조립할 수 있고, 나아가서 인체의 모든 생체부품이 실험실에서 만들어져 상품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경우 현재까지 밝혀진 10만여 개의 단백질 가운데 기능이 제대로 알려진 것은 9,000여 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9만 개가 넘는 나머지 단백질의 기능을 파악하는 것이 지금 생명과학을 연구자들의 가장 큰 숙제로 남아 있다.

노화 유전자는 존재하는가?
한편 비교유전체학은 각 개인을 독특하게 만드는 유전자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표준 인간’의 청사진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이 자료가 확보되면 개개인의 유전자 상태가 표준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나아가 비교유전체학의 연구 결과를 통해 ‘사람마다 모습이 다른 것은 어떤 유전자 때문인가?’, ‘장수하는 집안과 단명하는 집안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를 밝힐 수 있다. 즉 개인간, 인종간, 그리고 생물간 게놈 정보를 비교해 차이점을 찾아내고, 이로 인한 생체기능의 차이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 자료는 어디에 쓰일까.
사람마다 키, 피부와 머리 색깔, 성격, 병에 대한 감수성 등이 분명하게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의약품의 대사와 반응 역시 환자별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차이는 대개 유전적 성향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환자가 어떤 약의 효과를 볼 것인지 또는 부작용이 생길 위험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유전적 요인들을 이해하면 투약 전에 이런 반응들을 예견할 수 있는 임상검사를 개발할 수 있다.
난치병 퇴치 외에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은 노화 유전자 자체를 찾아내는 일이다. 만일 인체를 늙게 만드는 유전자가 별도로 존재한다면 그 기능을 억제해 영원히 젊게 살 수 있지 않겠는가.
현재 상당수의 과학자는 노화를 지시하는 특정한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노화 현상을 거의 보이지 않는 바다가재나 무지개송어의 세포에는 텔로머레이즈가 많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세포수명에 관계되는 유전자인 텔로미어의 손상을 복구시키는 효소이다. 또 초파리에서 유해산소를 없애는 효소인 과산화물불균화효소(SOD)의 유전자를 과잉으로 발현시키자 수명이 40~50% 늘어났다는 결과도 나왔다. 항산화제를 투여하자 선충의 수명이 50%나 늘어났다는 연구결과도 최근 발표됐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사실, 인간에 대한 유전자 수준의 노화 연구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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