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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의료서비스 “이렇게 찾아줘서 고마워…” 주명순

이렇게 찾아줘서 고마워

8월 20일 강릉아산병원은 강릉MBC와 함께하는 ‘사랑실천 의료봉사’를 속초시 동명동 기아대책 속초종합복지센터에서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펼쳤다. 이번 의료봉사에는 속초시 봉사단체들이 함께해 더욱 다양한 활동이 되었다. 강릉아산병원은 2001년부터 매주 2~3회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으며, 강릉MBC와는 2004년부터 분기별로 ‘사랑실천 의료봉사’를 진행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모과며 대추가 초록 열매를 튼실하게 키우며 가을을 부르고 있다. 입추와 말복을 지나,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를 며칠 앞두고 강릉아산병원이 무료진료를 펼칠 속초로 향했다. 회색 물감을 풀어놓은 하늘이 바닷가에 주저앉아 반가운 손짓을 해댄다. 이상저온으로 여름을 손꼽아 기다린 바닷가 사람들의 표정도 오늘처럼 흐려있다. 게다가 이틀이 멀다하고 물 폭격을 퍼부어 피서객을 서둘러 돌려보내고, 알곡도 영글질 못해 근심까지 보탰다.
이런저런 고달픈 형편에 병까지 찾아들면 몸과 마음이 지레 지치며 견디기 힘들다. 나이 들어 돌보아 줄 피붙이 하나 없는 노구를 이끌고 사는 어르신들은 더욱 그러하다. 속초 들어오는 길에 본 은사시나무 이파리가 가끔씩 얼굴을 내미는 햇빛을 받아 바람에 반짝이며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강릉아산병원과 강릉MBC가 ‘사랑실천 의료봉사’를 할 5층짜리 기아대책 속초종합복지센터 건물이 반겨 맞았다. 오전과 오후에 각 40명씩을 진료할 곳은 3층으로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고 들어오시는 어르신과 봉사자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혀있다.
강릉아산병원은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실시한 의료기관평가에서 2005년 지역 1위(전국 6위), 2008년 발표에서는 전 항목(의료의 질, 의료 서비스, 환자 만족도)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아 최상위 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곳 유지들은“최고의 며느릿감인 간호사를 중매해 달라”며 조르곤 한다. 친절이 몸에 배어 전문 간호를 사랑으로 수행하는 간호사들은 우리의 자랑거리이자 병원의 보배다. 
1996년 개원한 강릉아산병원은 최첨단 의료기기를 구비하고, 전체 654병상 중 강원지역 최대 규모인 69병상의 중환자실(신생아 중환자실 17병상 포함)과 암센터까지 갖추고 최고 수준의 의료를 펼치며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는 병원이다.
지역의 아픔을 보듬는 의료복지사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2001년부터 3억여 원을 들여 마련한 순회진료용 버스로, 일주일에 2~3회씩 의료시설이 전무한 산간벽지나 어촌 및 사회복지시설을 찾아가는 무료진료를 일 년에 150회 이상 실시하고 있다.

동문서답에도 또 들어주는
오늘은 강릉아산병원과 속초시 봉사단체가 참여했다. 내과·외과·신경과·부인과 및 노인병 진료 외에도 한방진료, 노안 안경 지원,  수지침과 이·미용 봉사가 함께 진행됐다. 순회진료를 총괄하는 의료복지팀장 이상룡 전문의의 따뜻한 눈빛이 유난히 반짝인다. 소홀하거나 불편함이 없는지 점검한다. 봉사자의 재빠른 안내가 빛을 발한다. 봉사자들이 모셔온 어르신들은 진료를 받은 후 이발도 하고, 돋보기도 맞추고, 한방침도 맞느라 꽤 넓은 장소가 비좁아졌다.
한종선 임상병리사와 이영미 간호사의 손길도 분주해졌다. 접수하랴, 혈압 재랴, 혈당 체크하랴 ….“약 드시는 것 있으세요? 혈당검사 바늘이 들어갈 때는 따끔해요! ” 문진과 검사를 하며 다정한 눈 맞춤을 한다. 옆에서는 처방전을 받아든 장춘희 간호사가 약복용은 이렇게 하고 주의사항은 무엇이며 조곤조곤 설명한다.
건너편 신경과 임수빈 과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 할머니는“어질어질 하구….” 한참 뜸을 들이며, “소화도 안 되구… 발가락 열 개가 저려서 깜짝깜짝 놀라, 찌릿찌릿하고 점점 심햐…” 기운 없는 말씀을 천천히 잇는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시다.
정형외과는 대기의자를 다른 곳보다 많이 놓았지만 빈 자리가 없다. 진료를 받고 건물 밖에 있는 검진차량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진료를 봐야 하니까 붐빌 수밖에 없다. 한희돈 전공의의 부드러운 음성이 소나무 숲 바람소리를 닮고 있다. “철분을 먹고 있어… 변도 딱딱햐….” “변비약 드릴까요? ” “눈이 하나도 안보야….  말소리도 안 들려야….” 이쯤 되면 돌부처도 돌아앉을 것 같다. 동문서답하는 어르신을 끈질기게 묻고 또 들어주는 소나무 숲 바람소리가 푸르다. 진료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 할머니의 말씀을 다 들어주면서도 사랑이 물씬 묻어나는 정겨운 모습이 더위를 잊게 한다.
금방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의 할아버지, 약을 한 보따리 타다 놓고 먹고 있다는 김경남(82) 할머니, 녹용장수에게서 산 녹용을 먹은 후부터 다리가 찌릿찌릿 저리다는 안금자(86) 할머니, 엑스레이를 찍고 오면 다시 봐드린다는 말에도 서운함을 지우지 못하는 할머니의 모습에도 정감이 흐른다.
내과 진료하는 이희섭 전임의는 어르신들은 눈으로 말씀을 해서 눈빛을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되고, 더 많은 나눔의 확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행복 바이러스가 퍼지며…
강릉아산병원 직원들은 다양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전 직원이 음식판매와 모은 기금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연말에 쌀과 연탄과 기름을 사드린다. 원무팀 직원들도 틈틈이 모은 돈으로 무료급식봉사를 하며, 간호사들은 국제키비탄 강릉아산클럽을 통해 월 2회씩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장애인시설과 복지단체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한다. 그밖에도 동아리나 개인적으로 하는 다양한 나눔으로, 의료의 중추 역할과 함께 건강사회 구현에도 앞장서고 있다.
‘무릇 반 걸음이라도 쌓이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를 수 없고, 작은 물줄기가 모이지 않으면 강과 바다가 될 수 없다. 천리마도 한 번의 도약으로 열 보를 갈 수 없으며, 둔한 말이라도 열 마리가 끌면 그 결과가 달라진다.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하면 쇠와 돌도 조각할 수 있다’는 순자의 말씀이 행복 바이러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의료인과 봉사자들의 마음과 손길을 적시고 있을 게다.
진료 앞뒤 시간에 어르신들은 쇠고기를 듬뿍 넣은 곰탕을 남김없이 모두 비우고 수박으로 입가심을 했다. 진료도 받고 식사도 했으니 모든 게 내 세상인 듯 밝은 웃음을 쉼 없이 얼굴에 담는 어르신들의 천진함이 꼬리 긴 그늘을 벗어던지게 한다.
오후는 쌀 배달을 나갔다. 산비탈 길을 따라 등대로 올라가는 길섶에 전정녀(85) 할머니의 집이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오밀조밀 화분 서너 개가 먼저 반긴다. 앞마당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툇마
루도 없는 방 한 칸과 부엌 하나의 빈한한 살림살이에 애잔함이 배었다. 사람 가난이 무서웠던 할머니는 우리를 함박웃음으로 맞는다. 몸도 말을 안 들어 출입을 못한 지 오래되었는데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얼싸안는 팔에 힘이 실린다.
김응섭 계장이 쌀을 건네며 “밥을 지어 드려야하는데 그렇질 못해서 죄송해요! ”하자, “이렇게 찾아줘서 고마운데, 쌀도 주고 고마워….” 하며 말을 잇질 못하신다. 산 비탈길을 오를 때 내리던 단비가 마지막 더위를 쫓아내고는 멈춰 섰다. 청아한 바람이 설렘과 그리움으로 가을을 불러들인다.
어르신들의 몸에서 우리들이 나왔고, 그 자식을 기르시느라 몸과 마음이 해어지는 걸 개의치 않은 부모님께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일렁인다. 부박하기 짝이 없는 삶일지라도 자식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주셨다. 소리 없는 울림이 하루 종일 따라다닌 오늘, 잔잔한 바람이 사람 사이를 오가며 행복 바이러스를 번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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