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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재단과 함께하는 견학 “전율이 오는 듯 했어요” 남영숙

전율이 오는 듯 했어요

8월 19일, 아산재단 초청으로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변(延邊)대학 아산장학생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아산재단이 2002년부터 해마다 서른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한 이래 처음으로 마련한 한국문화 탐방행사다. 총 열일곱 명의 한국방문단은 천년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나흘 일정을 시작했다.
이틀째인 8월 20일에는 전후 폐허에서 산업화의 꽃을 피워낸 역사적인 현장 울산을 방문했다.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는“한국의 경제성장은 온 국민의 진취적인 기상, 개척정신, 열정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기적의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 끊임없는 기적의 담금질을 한, 바로 그곳 울산이다.

자동차의 바다와 압도적인 배를 보다
첫 견학지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로 걸어서는 일을 할 수 없어 부서별로 업무용 차가 제공된다. 2008년 기준 200여 개국에 200만 여 대를 해외판매했으며 중국에서도 인기 상승 중이란 말에, 중국에서 실제 봤다며 일동 화답한다. 엘란트라, i30의 생산라인과 수출전용 부두에서 끝없이 펼쳐진 자동차의 바다를 목도했다.
방문단이 기다리던 쇼룸의 포토타임. 마케팅 전공 4학년 강익 군이 얼른 에쿠스에 올라탄다. 여학생들 여럿은 빨간 제네시스 쿠페 앞에 섰다. 모두 디카, 폰카 중무장에 45도 얼짱 각도로 셀카 찍는 품이 우리와 같다. “저 마다의 개성에 맞춰 평범한 티셔츠를 가위 하나로 고쳤다”고 임상의학 3학년 류소화 학생이 말했다. 옷차림은 우리 TV 속 연예인들의 그것이다. 민소매는 기본, 옷 끝자락을 묶거나 공들인 어깨 리본 등 각양각색이다. 다들 위성안테나로 한국방송을 실시간 시청한다더니 대중문화가 소통의 코드였다.
다음은 현대중공업.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권 지폐 한 장으로 배를 수주하여 허허벌판 백사장에서 일궈낸 세계 제일의 조선소다. 육상선박건조 등 초유의 신 공법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8월의 태양 아래 작업 중인 배들은 압도적이었다. 아산기념전시실 역시 과거 한국으로  타임머신을 탄 듯 젊은이들에게 흥미로웠다. 특히 구두 하나에 이들의 시선이 멈췄다. 미국 <타임>지가“강철 같은 의지와‘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한국의 번영을 촉진시킨 아시아의 영웅”이라 칭한 매우 검약했던 거인, 아산의 낡은 구두였다.
울산지역 문화예술 허브인 현대예술관을 거쳐 마지막 방문지는 울산과학대학. 천연잔디구장과 영남 유일의 아이스링크가 명소다. 서늘한 북에서 와 뙤약볕에 고생한 모두의 얼굴이 시원한 스케이트장에 들어서자 환해진다. 스케이팅이 졸업 필수과목이라는 연변대 학생들은 금세 신나게 얼음 위를 누볐다.
울산을 섭렵한 오늘의 마무리, 달리는 버스에서 소감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바쁜 일정 속에도 재밌는 활동을 많이 조직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오기 전에는 솔직히‘현대’라는 그룹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많이 공부하고 갑니다. 나중에 차를 한 대 뽑더라도 현대차로 노력해 보겠습니다.”조선어과 3학년 박예화는 이렇게 말하고 <남행열차>를 불렀다. 익숙한 노랫소리로 흥에 겨운 버스는 이제 대기업 현대의 심장부이자 큰 꿈의 진원지를 뒤로 하고 서울행 KTX가 기다리는 동대구역으로 향한다.

어깨동무한 두 나라 아산장학생
8월 21일, 호우가 물러난 자리에 푸른 서울 하늘이 드러났다. 연변장학생들은 서울아산병원에서의 환영행사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연변대 아산장학생 대표 엄설매(조선어과 4)는“(이번 문화체험에) 손끝으로 전율이 올라오는 듯했다. 정주영 재단 설립자님의‘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란 말을 마음으로 느꼈다. 세상은 큰 뜻을 품은 자에게 속하는구나 절감했다”고 말했다. 예정된 한국 아산장학생들과의 일대일 매칭 투어에서 한국 학생들을 통해 우리 문화를 보고 중국에 많이 알리겠다고 끝맺었다.
서울아산병원 투어 전, 두 나라 장학생들이 제 짝을 찾았다. 왁자지껄 대화로 어느새 오랜 친구 같다. 세계적인
 의료진과 환자 중심의 진료시스템, 첨단의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을 둘러보면서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한다. 탁 트인 한강 전망의 병원 옥외공원에서 함께‘체~즈(우리 김치에 해당)’를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런 멋진 병원은 처음 본다. 이런 곳에서 근무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는 서화준 군은 임상의학 전공이다.
남산 N서울타워로 이동했다. 연변학생들은 N서울타워에서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떠올리며 자물쇠 전망대를 배경으로 짝꿍과 연신 사진을 찍었다. 숨가쁜 일정에 때론 지쳐도‘짜이요(중국어로 파이팅)’를 배워 격려하는 활력소, 임우영 군 같은 친구들이 있어 어제와는 다른 생기가 방문단에 흘렀다.

직접 참여해 즐긴 ‘난타’공연
어느덧 점심시간. 우리의 대표 보양식 삼계탕을 맛있게 먹고 국립민속박물관, 경복궁, 인사동 일정이 계속됐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보고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회였다. 생김새가 비슷하고 같은 말을 쓰더라도 식당의 이쑤시개가 낯설고, 서울의 젖줄 한강의‘한(漢)’이 중국 옛 나라의 그것인 줄 알았던 학생들이다.
한국 아산장학생 모임인‘정담회’회장을 맡고 있는 최원상(전주대 언어문화학 3)은 “연변대 아산장학생들과의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런 계기를 통해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상호간 우호를 다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작은 우정의 씨앗이 한 그루 나무가 되고 한중교류의 커다란 숲이 될 것이다.
취재는 인사동까지였다. 소식통 최원상 군에 따르면, 그 뒤엔 ‘환상 그 자체인’ <난타> 공연을 보았는데 연변대생 한 명이 잠시 공연에 직접 참여해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린 곧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서로 이메일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내년에도 만날 수 있기를 기약했다. 정말 버스에서 내리기 싫었다”고 마지막 순간을 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 방문이 젊은 인재들의 삶에 작은 도약의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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