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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초심이 그대로 아름답게 지켜지기를 김수환

인간의 나이로도 30년이면 애기가 태어나 자라서 다시 부모가 될 수 있는 나이, 한 세대를 말합니다. 나무도 한 30년이면 튼실한 둥치에 큰 가지를 많이 뻗은 아름다운 모습과 풍요로운 열매, 또 넉넉한 품의 그늘을 줄 수 있을 만큼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세월입니다.

30년보다 훨씬 오래 전, 아산 정주영 회장님의 마음속에는 이미 하나의 건강한 씨가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고질적인 빈곤에서 구하고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젊은이, 가난 때문에 치료도 받아보지 못하는 불우한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 치료의 기회를 주어 새로운 삶을 열어주려는 집념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가난은 대를 물려 되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그분의 아름다운 집념이 건강한 묘목으로 세상에 태어나 빛을 보면서 아산사회복지재단이 발족되었고,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참으로 기적과도 같은 많은 일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극적이고 무능한 집권층이 마음 편하게 책임회피를 할 수 있는 구실을 주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어느 나라건 가난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예는 없습니다. 사회의 어느 부분에서나 인간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몇몇 개인들이 소외되고 불우한 계층을 도와줌으로써 그들을 끌어 올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들이 국가의 정책보다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분들의 노력과 집념이 결과적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이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남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인간의 생존본능에 절대로 필요한 기본개념입니다.
정주영 회장님이 특정 종교의 계명보다 더 기본적인 올바른 삶의 방식, 건강하고 지속적인 인간사회의 발전을 염두에 두신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본뜻을 좀더 가까이 이해한 결과일 것입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이 그동안 한 많은 일은 내가 여기서 열거할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그러나 최초의 작은 시작이 이제는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 여러 계층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그늘진 곳에 빛을 드리우며 불우한 계층을 돕는 한편 우리나라 학계와 의료계의 첨단에서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 또한 많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양단을 동시에 끌어 올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정주영 회장님의 유업을 이어받은 차세대, 정몽준 회장은 선친과는 달리 현대사회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고 국내에서나 국제사회에서 최고 수준의 경력으로 넓은 안목과 재능을 갖춘 분입니다. 아산재단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에 대해 우리 사회의 미래뿐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 맞는 과제내용의 선택과 그 운영의 세련미를 더욱 염두에 두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재단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더라도, 어떤 내용의 일을 강조하게 되더라도 정주영 회장님이 최초에 가졌던 그 소박한 집념, 즉 ‘우리 사회에서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사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소신은 불변의 기본이념으로 남아야 할 것입니다.

초심은 불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 작심한 마음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선하기 때문에 이런 부처님 같은 마음을 계속 유지해나가는 일이 인간에게는 무척이나 어렵다는 말일 것입니다. 재단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사업분야가 더욱 넓어지더라도 정주영 회장님의 초심이 그대로 아름답게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먼 훗날, 300주년을 맞는 자리에서도 이 재단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그분의 소박한 초심이 그 오랜 세월 동안 변색되지 않았으며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을 이루어냈나를 자랑스럽게 얘기하며 웃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생각만 해도 참으로 흐뭇하고 아름다운 광경이 아니겠습니까?
아산사회복지재단의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재단의 모든 사업을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보시고 함께하시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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