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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개원 20주년 생명 사랑 실천해온 큰 병원 편집부

생명 사랑 실천해온 큰 병원

서울아산병원이 6월 23일 개원 20주년을 맞았다. 서울아산병원은 대한민국 의료계를 선도하며 생명 사랑을 실천하는 큰 병원이 되기까지 정도를 걸어왔으며,  ‘도전과 열정’으로 20년의 세월을 보냈다. 이제 서울아산병원은 미래를 향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10년 안에 세계 10대 병원’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한걸음 한걸음 쉼 없이 전진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의 역사를 돌아본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해, 병원을 설립하여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 한 분, 한 분이 건강을 지키는 역군으로서 의지와 사명감을 갖고, 모든 환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정성을 다하여 치유하고 고통을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재단의 설립 취지에 맞추어 심신장애자, 불우노인과 아동 등에게 인정의 샘이 솟는 훈훈한 병원이 되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1989년 6월 23일 정주영 재단 설립자의 서울아산병원 개원식 인사말 중에서

서울아산병원의 뿌리 ‘아산사회복지재단’
정주영 재단 설립자가 1977년 재단 설립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서울아산병원의 모체인 아산사회복지재단의 핵심 사업은 의료복지사업이었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병고와 가난입니다. 병치레 때문에 가난할 수밖에 없고 가난하기 때문에 온전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괴로움은 악순환됩니다. 건강하고 유능한 수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오늘날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현대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은 본인이 오랫동안 품어온 소망입니다.”
1977년 9월 19일 정주영 재단 설립자가 재단 산하병원의 모(母)병원 역할을 할 병원 건립을 발표하였고, 이듬해 7월 의료단지를 조성할 부지를 구입하여 1986년 10월 병원 건물을 착공하기 시작했다. 1989년 6월 개원하기까지 무려 11년 동안 준비를 해 서울아산병원(당시 병원명 ‘서울중앙병원’)이 탄생했다.

서울아산병원의 기본정신을 세운 설립자  ‘아산 정주영’
‘현대’가  아산(峨山)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한 위대한 업적의 증거라면, ‘서울아산병원’은 불우한 이웃을 돕고자 한 사회사업가로서 아산의 신념과 의지의 상징이다. 아산이 없었다면, 서울아산병원은 개원할 수도 없었고 개원 후 비약적인 성장과 발전도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설립자 아산은 2001년 3월 21일 86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그는 개인 소유인 현대건설 주식의 절반을 출연하여 아산재단을 설립, 우리 사회의 그늘지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 의료사업과 사회복지사업을 조용하고 묵묵히 전개하였다. 국가가 아직 복지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때 복지의 의미를 일깨웠고,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어서 아산재단 제7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정몽준 이사장은 2001년 4월 12일 취임사에서 ‘선친의 박애주의 정신과 아산재단 설립취지를 받들어 국내 최대 사회복지재단으로서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의료사업과 소외된 이웃을 돕는 사회복지 지원사업 등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고 다짐하였다.

메디컬 타운 ‘서울아산병원’
서울아산병원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첫째, 크기에 놀라고,  둘째, 많은 사람에 놀라고,  셋째, 최첨단 의료 시스템과 여러 편의시설에 놀란다고 한다.  서울아산병원은 대지 총 면적 138,800㎡(42,000평), 건축 면적 42,930㎡(12,990평), 연면적 454,790㎡(137,570평)의 규모로, 연면적으로 단순 비교해도 여의도 63빌딩의 약 3배에 달하고, 서관ㆍ동관ㆍ신관 3개 건물동의 연면적은 삼성동 코엑스몰의 약 2.5배를 넘는다. 이밖에 기숙사, 별관(장례식장), 패밀리타운, 어린이집 등 부대시설이 들어서 있어 하나의 작은 도시를 방불케 한다.
2009년 6월 현재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하는 총 직원은 8,008명이고, 2008년 기준 하루 평균 외래환자 8,850명, 재원환자 2,130명, 수술건수 197건으로 보호자와 방문객을 포함해 하루 평균 4만~5만 명 정도의 유동인구가 다녀가는 곳이다.  2008년 5월 지하 3층 지상 15층, 연면적 89,690㎡(27,130평)의 총 772병상 규모의 신관이 새롭게 개관하면서 함께 진행 중이던 동관과 서관의 리모델링 공사에도 박차를 가해 2009년 전 병원의 공간 재배치가 완료되었다.
신관은 소아청소년병원ㆍ산부인과ㆍ안과 등 독립적인 진료과 위주로, 동관에는 뇌신경ㆍ심혈관 등 성인병 중심의 진료과를, 서관에는 국내 최대의 암센터를 배치하였다.

서울아산병원을 최고로 만든 ‘도전 정신’
서울아산병원을 대표하는 단어를 하나만 들라면 모두가 ‘도전’이라는 단어를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의 20년은 도전으로 이루어진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개념조차 낯설었던 시절, 서울아산병원은 ‘장기이식’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위대한 기록을 하나씩 세워나갔다. 1992년 7월 국내 최초로 췌장ㆍ신장 동시 이식에 성공하였다. 간담도췌외과 한덕종 교수팀이 심한 당뇨병으로 췌장과 신장의 기능을 상실한 환자에게 뇌사자의 장기를 기증받아 국내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 췌장과 신장을 동시에 이식한, 의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수술이었다.
1992년 11월에는 우리나라 의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일어났다. 뇌사자로부터 기증받은 심장을 확장성 심근증을 앓고 있던 환자에게 이식하는 심장이식수술을 국내 최초로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팀이 성공시켰다. 이 뉴스를 통해 뇌사와 장기기증에 관한 여론을 불러일으켰고, 반신반의하던 국내 의료계는 깜짝 놀랐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 역사의 또 한 축은 간이식 분야다.  1994년 12월 국내 최초로 혈연간 생체 부분 간이식을 성공한 간이식팀은 이후 세계 최초 변형우엽 간이식술(1999년 1월), 세계 최초 2:1 듀얼 간이식(2000년 3월), 국내 최초 간·심장 동시 이식(2007년 6월) 등 간이식 분야의 수많은 기록을 경신하며 세계 의료계의 인정을 받았다.
서울아산병원은 수술 잘하는 병원으로도 유명하다.  2006년도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감 자료에 따르면, 2006년 국내에서 시행된 수술 총 130만 6,312건 중에서 상위 30대 질환 중 스텐트 삽입술, 관상동맥우회술, 담낭절제술 등 13개 질환에서 수술 건수 1위를 차지하였다.
세계 최초로 특수 약물 처리된 그물망을 이용한 협심증·심근경색증 시술에 성공한 후 발전을 거듭해온 심장내과는 물론, 난치성 폐고혈압의 원인 규명 및 치료법을 개발한 호흡기내과, 세계 최초로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완치율을 5배 높인 치료법을 개발한 혈액내과, 임상연구로 인정받는 소화기내과 등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모든 수술은 의료 전 분야가 관련되어 있어, 진단과 수술을 직접 담당하는 내ㆍ외과계뿐만 아니라 영상의학과, 병리과 등 의료의 전 분야가 수준이 높아야 하고, 의료진 간의 협력체계가 잘 구축되어야 하며, 지원 시스템이 원활해야만 훌륭한 치료성적이 나올 수 있다.
이처럼 서울아산병원이 2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최고’ 의료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의료진과 그들과 동고동락한 여러 분야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지만 공통점이 있다.
첫째, 열정이다. 밤을 새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환자 옆에 있었고 연구했다. 둘째, 도전정신이다. 남들이 하지 않은 분야, 어려운 치료 기술과 연구에 도전해 결국 최고가 되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도전정신이 오늘의 성공을 만들었다.

의료의 기본에 충실
서울아산병원은 1993년부터 ‘환자 중심의 병원 운영’의 실천 방안 중 하나로 의료 질 향상(QI) 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현재까지 활발히 운영 중에 있다. 병원 내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감염을 줄이기 위해 감염관리실을 독립 운영하고 있으며, 항생제 남용을 막기 위해 전산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그 결과 2006년 2월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항생제 사용 실태조사 결과 서울아산병원은 18.55%의 항생제 처방률을 기록해 종합전문병원 중 가장 낮은 항생제 처방률을 보였다.
환자의 생명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면 시설과 장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서울아산병원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중환자실이다. 현 건강보험수가 체계에서는 규모가 크면 클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곳이지만,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대규모의 203개의 중환자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전체 병상 수 대비 중환자실의 비율이 7.8%에 이른다. 서울아산병원이 장기이식 등 고난도 수술에 과감히 도전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세계적 수준의 중환자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은 첨단 디지털 환경 구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처방전달시스템(OCS)을 시작으로 2007년까지 병동과 외래에 전자의무기록(EMR)을 적용하는 등 한 분야씩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모든 업무의 처리 과정을 전산화하고 안정된 시스템 운영과 다양한 정보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임상시험 인프라 확대와 수준 향상을 위해서 2005년 임상연구센터를 확장 이전하였고, 이듬해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서울 지역 임상시험센터로 지정됨으로써 5년 동안 120억 원(정부출연금 40억 원 포함)을 지원받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땀흘린 노력과 우수한 성적은 2007년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서울아산병원이 ‘혁신형 암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 사업은 미국의 앰디엔더슨 암센터와 같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연구 중심의 병원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5년 간 총 200억원이 지원되는 대형 국책 프로젝트이다.
개원 이전부터 아산재단과 서울아산병원은 국제적 수준의 병원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수 인재 확보라는 점을 인식하였다.  그 첫 과제가 의과대학 설립이었다. 1988년 3월 첫 신입생을 받은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은 의학계에서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통합교육 과정을 도입하였다.
서울아산병원은 전공의 선발과 교육 방법에 독특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1997년 인턴부터 국내 병원 최초로 구술시험과 기본 술기 시험을 시행해 선발하고, 의과대학 성적 반영 비율을 최대한 높였다.
서울아산병원은 1996년 6월 하버드 의대와 공식적으로 협력 협정을 맺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최초의 ‘하버드 협력 의료기관’ 1호가 되었다. 협정 이후 6차례의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고, 2000년 11월에는 5년간 한시적 협력관계를 항구적ㆍ지속적 관계로 격상시켰다.

16만여 명에게 무료진료
‘우리 사회의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아산재단의 설립 취지에 따라 서울아산병원은 1992년부터 무료진료 사업을 시행하였다. 2008년 말까지 서울아산병원은 순회 무료진료 활동을 통해 15만여 명에게 42억 원을, 원내 무료진료 활동을 통해 1만3천여 명에게 54억 원을 지원, 의료복지사업을 비롯 총 190억 원을 투입하였다.
2006년 MBC와 공동 기획으로 진행했던 휴먼 메디컬 프로젝트 ‘산 넘고! 물 건너! ’코너는 전 국민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프로그램이었다. 1년 6개월 동안 26개 의료취약지역을 방문해 1,261명의 주민을 진료하고, 이중 125명을 후송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이밖에 2005년 1월 남아시아 지진ㆍ해일 피해지역에, 2005년 10월에는 파키스탄 지진 피해지역과 동남아시아 의료취약지역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하는 등 설립자의 설립이념을 실천하고, 따뜻한 인술을 펼쳐 인류애를 실천하는 병원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직원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환자와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긍정적인 힘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직원들의 복지후생을 위한 여러 시설과 제도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패밀리타운과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고, 1997년부터 어린 자녀들을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의 건강과 체력관리를 위한 스포츠센터에는 최첨단 시설의 헬스장과 25m, 5레인 규모의 수영장과 사우나 시설이 있어 직원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성장 원동력은 ‘자율적 문화
서울아산병원의 ‘오늘’을 있게 한 주된 요인을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자율적인 문화’이다.
수많은 국내, 세계 최초 의료성과와 수상 등은 바로 자율적인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개원 초 서울아산병원은 ‘병을 잘 고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환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당시 많은 교수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하며, 연구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하고, 일요일에도 출근해 회진하고 입원환자를 돌보는 등 진료 활동의 많은 부분을 직접 맡았고 책임졌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진 아산 정주영 설립자는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병원 경영에 관해서는 간여하지 않았다. 병원 경영은 전적으로 병원장에게 맡겼다.
병원장 역시 큰 방향만 제시하고 각 과별 독립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였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병원장을 역임하며 서울아산병원의 기본을 다진 민병철 전 병원장은 ‘전문가 조직은 일할 환경만 조성해주면 스스로 일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의료진과 직원들을 믿고  신뢰해 스스로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서울아산병원의 성공의 바탕에는 ‘자율적인’ 병원문화가 있었고, 20년이 흐르는 동안 다른 병원들이 부러워하는 서울아산병원만의 전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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