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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레퀴엠' 아시아 초연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주소서” 김승현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주소서

지난 5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아시아 초연한 류재준 씨의 교향곡 1번 ‘영웅을 위하여 - 고 정주영과 한국의 전 세대를 기억하며’는 영화 ‘300’의 강렬함을 떠오르게 했다. 시종 크레셴도로 펼쳐진 이 교향곡은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과 그의 300 용사들이 100만 페르시아군에 맞서 싸운 테르모필레 협곡의 장렬한 전투의 느낌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간단히 줄여 ‘정주영 레퀴엠’으로 더 유명한 이 작품은 지난해 동구권 최고의 클래식 음악축제인 ‘루드비히 반 베토벤 이스터 페스티벌 인 바르샤바 2008’의 개막공연으로 세계 초연됐다. 당시 류씨의 스승인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크쉬스토프 펜데레츠키는 이 작품의 제목을 ‘심포니’에서 좀 더 범위가 넓은 ‘심포니아’로 고쳐주면서 “(더 이상 손볼 데가 없는) 매스터피스(걸작)”라고 칭찬했다.

이번 공연은 초연을 지휘했던 우카슈 보로비츄, 폴란드 국립방송교향악단과 소프라노 김인혜 서울대 교수가 그대로 참여했고, 고양시립합창단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코러스가 가세했다. 오케스트라와 100명 가까운 합창단(정확히 97명)이 콘서트홀 무대를 가득 채워 얼핏 말러의 ‘거인’ 또는 ‘천인교향곡’이 연상되는 등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일단 양적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이 곡은 류씨가 2001년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 타계 직후 고인의 여덟번째 아들인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의 의뢰로 2007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미사 형식인 레퀴엠의 어두운 부분을 걷어내고 장대한 교향곡 형식으로 풀어냈다. 모두 4악장으로 합창단과 교향악단, 소프라노의 각 악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됐고 특히 레퀴엠 본래의 장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밝고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느낌으로 희망을 노래했다.

이 나라 지키는 영웅에 대한 찬미곡
1악장 ‘영원한 안식을’은 레퀴엠 특유의 조용한 엄숙, 고요로 시작했다. 콘트라베이스 등 낮은 음으로 베이스를 놓고 그 위로 실로폰 등이 경쾌하게 움직이면서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면서 장중한 합창이 시작됐다.

‘주님 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시온에서 찬미함이 마땅하오니/ 예루살렘에 내 소원 바치리이다’
영웅의 혼들이 아직 이승에서 마치지 못한 일에 대한 회한이 남아 떠도는 것처럼 음악은 격동의 감정이 교차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격정적 화음의 충돌 사이로 소프라노 김인혜 씨의 목소리가 날카로운 창처럼 뚫고 나와 정점을 찍었다. ‘나의 기도 들어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주소서’
플루트와 오보에 등 환상적이고 부드러운 음색이 한껏 격앙된 감정을 안정시키면서 바순, 피콜로, 실로폰 등이 분위기를 편안하게 변주했다. 하지만 잠시였다. 이내 바이올린, 트럼펫이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하고 콘트라베이스, 첼로, 팀파니 등 모든 악기와 크레셴도와 프레스토로 달리는 합창이 가세, 음악은 절정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1악장은 절정의 순간에서 뚝 떨어지듯이 끝났다.
2악장 ‘진노의 날’은 누가 더 강한 소리를 낼 수 있나 경쟁이나 하듯이 소프라노 김인혜 씨와 오케스트라, 합창이 고조되면서 삼각파도로 객석을 몰아쳤다. 거센 ‘최후 심판의 나팔소리’로 시작해 ‘기록된 책’, ‘가엾은 나’, ‘위엄의 왕이시여’, ‘눈물의 날’까지 격정적이고 날카로우며 깊은 소리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는 영웅들의 회한과 이미 충분한 그들의 업적을 목소리 높여 찬미하면서도, 그들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아픔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관객들을 몰아쳤다.

3악장 ‘봉헌문’은 믿을 수 없는 ‘괴력’으로 객석을 압도했으며, 4악장 ‘거룩하시다’는 여전히 강한 화음을 유지, 격정적으로 전개되다가 환희와 희망을 기원하는 장중한 ‘베네딕투스’의 반복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50여 분간 격정적으로 포효하던 지휘가 스틸 사진으로 정지돼 잠시 잠깐 침묵의 고요가 형성됐을 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마치 제대로 펼쳐진 씻김굿 한 판에 참여한 것처럼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음악을 듣기 전 작곡가 류씨는 “레퀴엠의 어두움을 벗고, 밝고 장엄함으로 풀어냈다”고 했는데 실제 음악은 그 이상이었다. 너무 강하고 희망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레퀴엠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동해바다에 누운 문무왕처럼 몸은 이 땅을 떠났지만 영혼은 남아 이 나라를 지키는 영웅들에 대한 찬미곡처럼 보였다.

음악이 끝나고 집중했던 신경이 편안하게 풀어지면서 영화 ‘300’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그리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을 비롯한 300 용사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병사들의 전의를 북돋우는 달리오스의 웅변이 떠올랐다. ‘스파르타’를 ‘대한민국’으로 바꾸면 음악의 느낌에 딱 들어맞을 것 같다.

‘우리를 기억하라/ 이곳을 지나는 자유인들은 들어라/ 언제까지나 영원히/ 세월이 깃든 바위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그대에게 속삭일지니/ 스파르타에 전하라. 지나는 이여/ 스파르타의 법에 따라 여기, 우리가 누워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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