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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아산병원 정읍아산병원의 '이·미용 봉사' 이선희

 

정읍은 눈도 많고 비도 많은 고장이다. 서설도 가장 빨라 11월 중순 내장산 단풍 구경 왔던 사람들이 신이 났다. 선홍색 단풍을 덮으며 20cm도 넘게 흰눈이 쌓이는 진풍경을 원 없이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끝에서 끝을 가도 5000원 택시요금이면 충분하다는 정읍에서, 정읍아산병원의 위상은 우뚝하다. 쾌적한 실내 공간에 250여 병상을 갖춘 규모와 시설은 물론이고, 환우들을 위한 봉사활동들이 여기저기서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정읍아산병원은 재단이 의료취약지역에 설립한 첫 병원으로 2007년 5월에는 중소규모 종합병원에 대한 보건복지부 평가에서 최상위 병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4층 7병동에서 첫째 주 토요일, 셋째 주 목요일 2~5시면 어김없이 펼치는 이·미용 봉사는 이 병원만의 큰 자랑거리다. 첫째 주는 소망호스피스 이·미용팀이, 셋째 주는 자활후견인센터 이·미용 봉사팀이 원내 입원환자들의 머리를 깎아준다. 미장원을 하던 분들이 솜씨를 발휘하는 옆에서 순번을 정해 봉사를 나온 간호사 몇이 각각 역할을 나눠 환우들의 대기표를 작성하고, 보조미용사가 되어 옆에서 세발과 드라이를 도와주며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쓸어담는 등의 자원봉사를 한다.

이·미용 봉사팀장 김명순(39) 간호사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행해지는 광경을 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난다. 간호사들은 비번인 시간을 택해 봉사를 나오는데 오늘은 1병동 김미소 간호사와 2병동의 김시연 간호사, 중환자실의 서윤정 간호사가 당번이다. 김미소 간호사는 머리를 깎으면 얼른 빗질을 해 의자 아래 떨어뜨린 머리카락을 쓸어담는다. 중환자실에서 밀고 온 간이 세발기 옆에 있다가 머리 깎은 환우가 오면 김시연 간호사가 스펀지로 목과 얼굴 주위의 털 하나까지 깨끗이 털어주고 귀에 파란색 귀마개를 꽂아준다. 세발기에 머리를 눕히고 샴푸를 칠한 뒤 정성껏 머리를 감겨주는 일은 서윤정 간호사가 맡는다.
 머리감기가 끝나면 김시연 간호사는 수건과 드라이기를 들고 있다가 머리의 물기를 털어주고 위잉~ 드라이기를 켠다. 상냥한 간호사들이 머리를 감기고 말려주니 평소에는 아파 찡그리던 환우들이지만 기분이 마냥 좋아지는지 얼굴에 화색이 돌고 미소가 번진다.

목발을 짚고 온 사람,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며 또는 제 발로 걸어온 환우들이 일렬로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머리모양이 거푸집을 인 듯 부스스한 이, 매일 누워 지내다 보니 파마머리 뒤쪽이 눌려 까치방석이 된 이 등등…. 첫째 주는 2~3명의 미용사가 봉사를 나와 순서가 바로 줄어들지만 셋째 주인 오늘은 간병인 이지우(52) 씨혼자 머리를 깎기 때문에 기다리기 지루한 환자들이 가끔은 순서 다툼도 하고 수다를 떠는 등 더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지우 씨는 자신의 아이들 머리를 좀 더 예쁘게 깎아주고 싶은 마음에 미용사 자격증을 딴 뒤 2005년부터 환우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고. 목 뒤쪽에 왕방울만한 혹이 난 노인환자 김희중 씨의 긴 머리를 조심스럽게 다듬어주며 그가 얘기한다.
“처음에 원광노인병원 등에서 이발봉사를 시작했는데 참 좋았어요. 그 뒤 허리가 아파 그만두었는데 1년 전부터 다시 가위를 잡았지요. 나이 들어 여러 사람 머리 깎으려니 손이 저릴 때도 있지만 보람되고 즐거운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봉사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서 간호사는 중환자실 근무를 하며 환자 머리를 감겨주던 기술을 이곳에서 아낌없이 발휘한다. 예전에는 중환자실에서 비닐을 씌우고 대야에 물을 떠서 머리를 감겨주었는데 2년여 전부터 머리감기는 시설을 들여와 훨씬 머리 감기기가 수월해졌단다.

이발이 끝나가는 4시경부터 남자환자들 중 목욕이 필요한 사람들을 이곳 병원의 남성 7인조가 번갈아가며 목욕도 시켜드리고 있다. 오늘은 진단검사의학과의 이경호·이상국·허경태 씨가 방수 앞치마를 입은 채 목욕실에서 대기 중이다. 목욕 대상은 보호자가 없는 거동불편자, 또는 정신지체자나 신경정신계통 병을 앓고 있는 남자환우 등이다. 목욕침대며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는 목욕실은 지금은 금녀구역. 안에서 들려오는 두런거리는 소리와 물 끼얹는 소리로 안의 정경을 짐작해볼 수밖에 없다. “어때요, 물은? 안 뜨겁죠? ” “시원하세요? ” “예, 시원하네요~”
들어갈 때와 달리 새신랑 같은 환우 곽만연 씨다.

오늘 목욕봉사에 나선 이상국 씨는 봉사정신이 투철해 누구나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재간둥이다. ‘1004 데이’ 등 병원의 훈훈한 행사들도 그의 손길 하나에 빛을 얻어 살아난다. ‘1004 데이’는 매년 10월 4일 간호사들이 각자 맡은 병동의 천사가 되는 날. 패티큐어나 봉숭아물을 들여 주는가 하면 소아과에서는 풍선으로 아이들에게 날개며 왕관을 만들어주며 함께 놀이를 하는 등 즐겁게 보내고 있다.

이윤순 간호과장은 봉사하고 싶다는 직원들의 신청을 받아 순번을 짜 봉사에 파견하고 있으며, 작년 3월 보령아산병원에서 이곳으로 부임해온 최영균(65) 원장은 겨울철이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연탄을 직접 배달해주는 연탄 봉사의 역군이다. 최 원장은 보령아산병원에서 이동목욕차량을 만들고 사회복지사 제도를 도입해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펼쳤던 주역으로, 이곳에서도 직원들에게 투철한 봉사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곳 정읍아산병원 간호사들은 독거노인, 무의탁노인의 방문간호와 정읍 애육원 아이들을 위한 ‘1일 엄마 되기’ 봉사도 하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단풍 마라톤대회 때는 의사선생님과 간호봉사팀이 파견되어 쥐가 난 마라토너들을 치료해주었다. 요즘은 장애인복지관 가정간호사업소에서 2명의 간호봉사대를 파견, 지역 내 어려운 사정을 가진 이들의 소식을 더욱 쉽게 알게 되었다. 영상의학과와 업무팀이 출동해 독거노인들 집의 담장을 고쳐주고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제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김명순 이·미용봉사팀장은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은 있지만 봉사할 시간이 없어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데, 그 계기를 병원에서 만들어주니 직장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직장 안에서 봉사의 기쁨을 맘껏 누리는 정읍아산병원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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