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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아산상 수상자 한국해비타트 임유미

경기도 파주시 ‘통일을 여는 마을’에 자리한 한국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 사랑의 집짓기 현장. 2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화단을 만들고, 길바닥을 평평하게 다지며 마무리 공사에 한창이다. 아빠와 함께 온 왕북초등학교 5학년 강승현 군부터, 휴일에도 쉬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온 파슨스브링커호프 코리아와 삼일회계법인 직원들, 60세가 넘은 이웃마을 주민까지 다양한 봉사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점심값, 간식값, 1일 상해보험비 등이 포함된 참가비 1만5,000원을 내고 일하면서도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을 얻는다”며 신바람을 낸다.


해비타트는 그 이름 안에 핵심적인 가치(Habitat:보금자리, Humanity:인류)가 들어있다. 1976년에 창설된 국제해비타트는 밀라드 풀러라는 한 미국인 변호사 부부가 아프리카 자이레에서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기 시작한 데서부터 출발했다. 현재 세계 1백만 명의 무주택자들에게 희망의 삶터를 마련해 주었으며 아울러 건축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삶을 향상시켜 주고 있다.
한국해비타트는 1994년 경기도 양주에 3세대의 집을 지으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4년 동안 전국 15개 지회 및 지부를 중심으로 수혜 가정을 늘려나가 새집 600여 채를 짓고, 400여 채를 고쳤다. 여기에 참여한 해비타트 자원봉사자만 해도 16만여 명이나 된다.
북한이 건너다보일 만큼 가까운 ‘통일을 여는 마을’은 2001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와 29개국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지미 카터 특별건축사업’에 참가해 통일을 염원하며 집을 지은 곳이기도 하다. 당시 입주한 12가구를 포함해 16가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다.
이곳에 새로 4가구가 살 수 있는 2층집을 짓는 동안 5천여 봉사자들의 손길이 모아졌다. 누군가는 건축비로, 누군가는 건축자재 및 공구 등 현물로, 누군가는 전문 기술로, 누군가는 시간과 노동으로 봉사를 했다. 원태웅 경기북부지회 사무국장은 “올해 심각한 경기 침체 속에 건축자재비가 대부분 15% 이상 오른 데다가 기부금도 줄어서 어려운 상황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덕분에 무사히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며 거듭 고마움을 표시한다. 이 집이 더욱 각별한 건, 바로 해비타트 국내 1000번째 집이기 때문이다.
1000번째 집의 주인공은 파주 문산읍 선유리에 사는 한수복(39)·이영실(37) 씨 가족이다. 두 딸과 함께 보증금 500만원, 월세 25만 원짜리 낡은 주택에 살고 있는 부부는 월세를 내기도 빠듯했는데 난생 처음 ‘내 집’을 갖게 됐다며 연신 함박웃음을 짓는다.

 


해비타트 운동은 주거환경의 개선을 통해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해비타트 주택의 입주 대상자 역시 자립의지와 최소한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원태웅 사무국장은 해비타트 주택의 입주가정은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해비타트운동의 주체이자 동역자라고 강조한다.
“후원자 한 분 한 분의 정성이 모여 건축기금을 만들고, 자원봉사자 수 백 명의 땀방울이 커다란 건설장비 역할을 해내지요. 도움을 받아 일어선 가정은 토지 구입비와 인건비를 제외한 건축원금을 상환합니다. 이는 또 다른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건축기금의 밑거름이 되지요. 또한 입주가정의 세대주는 건축현장에서 150시간, 가족 및 이웃은 350시간, 총 500시간 이상을 참여하며 ‘땀의 분담’을 실현합니다. 그래서 떳떳한 집주인, 당당한 이웃, 더불어 해비타트 운동을 지속시켜 나가는 파트너가 되는 거지요.”
해비타트 주택은 전용면적 16평의 소박하면서도 튼튼한 집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온 이들에겐 그지없이 소중하고 편안한 안식처가 된다. 김기선 홍보실장은 입주신청서를 받아 보면 “쥐가 비누를 물어가지 않는 데서 살고 싶다, 곰팡이가 안 피고 햇빛이 들어오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아이들이 주인집 눈치 안 보고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칸셋방에서 벗어나 다 큰 자녀들에게 방을 따로 주고 싶다, 제발 비닐하우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등 절박하지 않는 사연이 없다며,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집짓기와 병행하여 2005년부터 시작한 ‘사랑의 집고치기’는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가정 등 소외계층의 집을 깨끗하고 편리하게 고쳐주는 사업이다. 도배, 장판·싱크대·보일러 교체, 지붕 수리 등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2006년엔 폭우 피해로 시름에 잠긴 강원도 인제군과 평창군 수재민들에게 4,000여 자원봉사자의 손길로 지은 50채의 목조주택을 대형트럭에 실어 보내 힘을 주기도 했다.


한국해비타트는 국내뿐 아니라 스리랑카, 필리핀, 인도네시아, 몽골 등 해외 저개발국가 주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지구촌 건축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3개국에서 676세대의 집을 지어 현지주민에게 제공했다. 특히 2006년엔 대형 산사태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은 필리핀 세인트버나드 지역과 쓰나미 피해지역에 긴급봉사단을 파견해 복구를 도왔다. 지진 피해를 입은 채 추위로 고통 받고있는 파키스탄 카시미르 산악지역 주민을 위해서도 100여 세대의 임시 숙소를 지어주었다.
‘통일을 여는 마을’은 곧 ‘사랑을 여는 마을’이기도 하다. 자원봉사자들은 보름 후면 이곳에 들어와 살게 될 입주자들을 생각하며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한다. 오늘 처음 만난 봉사자들도 손발을 맞춰 수레를 끌고, 돌을 나르고, 삽질을 하면서 어느새 한마음이 되었다.
“지난 봄에 왔을 때는 바닥 기초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완공되어가는 집을 보니까 그야말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얼마나 많은 손길과 마음이 이 집에 모아졌을까, 생각하니 시큰하네요. 해비타트 주택에 들어오는 분들은 아주 행복하게 잘 사실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어요.” 파슨스브링커호프 코리아 김효성 상무의 말에 모두가 이심전심의 눈빛을 보낸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10%대에 달하고 있지만 집이 없는 무주택자가 46%나 된다. 최저 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불량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도 23%, 우리 이웃의 4명 중 1명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쪽방, 비닐하우스, 지하방, 주거환경 개선사업지구에서 살고 있으며, 3인 이상 가족이 단칸방에 거주하는 가구도 10만 가정에 이른다.
내 집 마련의 꿈조차 꾸지 못하는 서민들을 위해 해비타트는 후원자와 자원봉사자와 입주자가 함께 세우는 사랑의 집을 계속해서 지어나갈 것이다. 집으로 고통 받는 우리의 모든 이웃이 자립할 때까지 사랑의 망치소리는 계속 울려 퍼질 것이다. 우리나라 면면촌촌에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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