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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아산병원 불러만 주세요, 금방 달려갈테니... 이선희

흰 구름 두둥실 떠 있는 사이로 보이는 영덕의 새파란 하늘은 높고 쨍했다. 완연한 가을빛이랄까. 발갛게 볼 붉힌 복숭아와 아직은 푸른 기가 덜 가셨지만 알알이 익어가는 사과들, 따가운 가을 햇살에 벼들이 조금씩 고개 떨구는 들판을 지나 도착한 영해면 영덕아산병원. ’79년 완공되어 5년 전 리모델링했다는 병원 또한 소담하면서도 산뜻한 외양이 영덕의 깨끗한 하늘과 닮아 있다. 멀리서 온 손님을 반기는 아산병원 관계자들의 환한 웃음이 정겹다. 김연수(40) 원장은 젊고 풋풋한 데다 겸손해보여 병원의 수장처럼 생각되지 않지만, 경력이 벌써 10년차나 되는 베테랑급 원장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정주영 초대 이사장님의 뜻을 살려 몇 년 전부터는 찾아가는 낮은 봉사를 통해 지역민의 삶에 스며들 수 있는 병원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처지가 딱하면서도 자녀가 있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 독거노인들을 위한 방문간호와 집수리, 어려운 이웃에게 쌀과 라면, 휴지 등 생필품 지원, 겨울철엔 김장 담가주기, 소년소녀 가장 돕기 활동 및 불우청소년을 위한 장학금 지원 등의 활동이 그것으로, 봉사활동은 주로 공휴일이나 휴일, 퇴근 후에 이뤄진다. 그 이유는 내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5개과와 응급실, 장례식장 등의 체제를 갖추고 있는 종합병원이지만, 각과에 전문의 1명, 직원을 모두 합쳐도 80명 남짓인 작은 규모의 병원이라 의사뿐 아니라 직원들이 제 자리를 뜰 수 없기 때문이란다. 한 사람이라도 맡은 일을 소홀히 하면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5만 명에서 4만 명으로 인구가 감소한 영덕군에서는 출산율도 급격히 저하되어 4년 전부터는 지역실정을 고려하여 산부인과, 소아과는 폐쇄했으며, 소아환자 진료는 대신 신설된 가정의학과에서 맡아 하고 있다는 게 김원장의 설명이다.

남들은 베이징올림픽 시청에 열을 올리고 있는 공휴일의 이른 아침. 병원에 도착하자 안내조로 기다리던 신한식(42) 씨가 부끄러운 듯 선한 미소를 띠며 우리를 황옥녀(66·영해면 연평2리) 할머니 집으로 안내한다. 무너진 블록 담벼락 사이로 호박잎이 우거진 텃밭이 흘깃 엿보이는 슬레이트집이다. 대문을 저쪽에 놔두고 길에서 뚫린 벽 사이로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들어서니 마치 이사를 하는 것처럼 크고 작은 짐들을 모두 한 방에 몰아놓은 채 방방마다 낡은 벽지들이 모두 뜯어져 있고 저마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다. 할머니는 짐을 몰아놓은 방에 오도카니 앉아 피신중이다.

도배를 잘 해야 산뜻한 기분이 살아나기 때문에 전문적인 도배는 도배사를 불러 하고 이들은 도배하기 좋게 썩은 벽에 붙은 벽지를 뜯어내고 짐을 옮기고, 물이 새는 지붕을 손보고 빗자루로 쓰레기를 쓸고 방을 걸레질하는 일을 맡아하는데 각자 할 일을 척척 해내는 품새가 전문 일꾼 부럽지 않다. 총무과장은 지휘와 도배사의 심부름, 시설팀의 지용선 씨는 쓰레질과 걸레질, 전기실의 청년 김동규 씨는 벽지를 긁어내고 먼지 털어내기, 시설과 권용선 씨는 지붕수리며 전기 설비 탈착 및 보수 등등….

황옥녀 할머니는 그동안 적적하던 차에 말벗이 생겨 반가웠던지 이런저런 가정사며 신세한탄을 하시던 끝에 그만 눈물을 보이신다. 오년 전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아들 셋, 딸 둘 남부럽지 않게 자식을 두었건만 큰 아들은 암으로 투병 중이고, 다른 아들들은 공장이 망해 피해 다니고 있다고. “경로당에 낼 돈도 없어 그곳에도 못나다니니 마을 친구도 하나 없고…” 할머니는 이것도 막내사위 집인데 생활이 어려워 사위가 이 집을 내놓아 현재 걱정이 태산 같다. 중풍으로 몸도 불편한데 이제 집도 절도 없이 떠돌게 될 생각을 하면 죽고만 싶으시단다. 몇 번 죽으려 했지만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최대 관심사는 전동휠체어 마련. 지금은 마을 정육점 주인이 쓰던 것을 손 봐 찬거리 사러 갈 때면 끌고 다니는데 성능이 시원찮아 애로가 많다 하신다.

이들이 두 번째 도배를 하러 나선 집은 원당골이라고도 불리는 성내2리 도랑천변의 김분옥(91) 할머니 집이다. “아산병원 분들 너무 고마워요. 치료도 거저 해주더니 도배까지 해주고…” 고령임에도 무척 정정해 보이는 할머니는 지난 정월에 곰국 끓일 재료를 사러 나갔다가 바람이 부는 통에 근처 도랑에 빠져 뼈가 부러졌고, 그 바람에 영덕아산병원에 2달 넘게 입원했던 인연으로 어려운 속사정이 알려지게 됐다고. 복도식 쪽마루에 1평 남짓한 두 칸 방, 부엌이 쪼르르 붙어 있는 할머니의 일자집은 워낙 작아 도배가 금세 마쳐진다. 할머니의 유일한 낙은 3시에 문을 연다는 근처 경로당으로 마실 가는 일인 듯, 도배가 끝나자 한구석에 세워져 있던 헌 유모차에 의지해 경로당으로 향하신다.

이번엔 병원에서 오전 진료를 마친 김연수 원장이 무료진료를 위해 영덕군 자활센터에서 소개받은 김명하(63. 영해면 성내1리) 씨 집으로 향한다. 김씨는 월남전에 보병으로 참전했던 고엽제피해자로, 췌장염 수술 후 중풍으로 13년 전부터 재활운동도 하지 못한 채 집에서 누워만 있는 상태다. 얼마 전에는 급성심근경색까지 와서 혈관확장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의료봉사를 나설 때면 으레 챙겨가는 듯 쌀과 휴지, 라면을 한구석에 내려놓았고, 진찰에 나선 김연수 원장은 오랜 세월 누워 있었다는데 욕창 하나 없는 그의 몸 상태에 먼저 감탄을 한다. 김씨의 부인 최정란(59) 씨가 그만큼 정성을 다해 남편을 보살펴 온 것이다. 예전에 도로공사에서 발파작업을 하는 기술자로 일했다는 김씨는 “아산병원 자리도 내가 닦았다. 그때는 그 자리가 병원이 될지 꿈에도 몰랐다.”며 감회서린 옛 추억을 털어놓는다. 부인 최 씨가 그 말을 받아 “요즘 이사람 정신이 가끔 왔다 갔다 해요. 요즘도 일하러가야 된다며 신발 사오라고도 하고….” 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진찰을 마친 김 원장의 시선이 다른 쪽보다 유난히 부은 김씨의 다리에 머문다. 굽혔다 폈다 하며 그의 감각을 체크해보던 김 원장이 조언을 한다. “마비가 왔다고 해도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자꾸 일어났다 앉았다 하시구요. 이쪽 다리는 평소 누워 계실 때 조금 높이 올려놓으세요. 그래야 부기가 빠집니다.” 

집수리와 무료진료뿐 아니라 영덕아산병원 봉사단은 진료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는 자진해서 봉사에 나서고 있다. 지난 7월 13~14일에는 포항에서 임진각까지 국토대장정에 나선 참가자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었다. 병원 셔틀버스 기사인 신한식 씨도 물집 생긴 참가자들에게 약도 발라주고 ‘꼭 할 수 있을 거다.’ 용기도 심어주며 돌아왔는데, “나중에 대장정 마치고 영덕병원에 들러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 참 뿌듯했다고 말한다.

휴일, 두 팔을 걷어붙이고 새벽부터 오후까지 봉사를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는 영덕아산병원 봉사단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다음에도 지나는 길이 있으면 잊지 말고 꼭 연락하이소. 특히 4월 영덕대게 나는 철에는 꼭 한번 와야죠. 제가 대접할게요.” 하는 순박한 사람들. 그 모습과 함께 “실력 있는 내과의 한 분을 더 충원해야겠다 싶어 여기저기 공고를 냈는데 아직 소식이 없네요. 오지라고 생각해 지원하는 이가 없나 봅니다. 봉사정신이 있는 분들이 선뜻 나섰으면 좋겠는데….” 씁쓸히 웃음 짓던 김연수 원장의 표정이 오버랩 된다. 그가 젊은 나이에 원장이 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쩐지 안타까웠다.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일수록 질 좋은 병원혜택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1979년 영덕아산병원을 개원하고 아산재단을 설립하신 고 정주영 회장님도 꼭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내겐 너무 멀리 있는 분으로만 여겨졌던 그분이 어쩐지 이날만큼은 인정 넘치는 영덕병원 사람들과 함께 내 안으로 성큼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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