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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대한민국 60년과 한국인의 저력 한영우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60년이 되는 8.15를 맞이하면서 한국인의 무서운 저력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건국 초기 국민소득 100달러도 되지 않던 세계 최빈국에서 출발한 한국이 2만 달러를 넘어서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저력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 힘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나왔다고 해야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대목이 있다. 2차대전 후 우리와 똑같은 체제를 받아들인 다른 신생국들은 왜 우리만큼 발전하지 못했는가. 서양과의 접촉도 우리보다 빠르고, 영어도 우리보다 더 잘하는 나라들이 왜 우리보다 한참 뒤져 있는가.

정치지도자나 경제인들의 분발과 지도력이 성공의 비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답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의 성공비결을 열심히 배우는 나라들이 많은데도 성과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국민 전체의 저력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무엇이 한국인의 저력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무서운 교육열과 성취욕에서 찾는 것이 온당할 듯하다.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고, 인구비율로 따져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교육열이 너무 지나쳐 갖가지 부작용도 많지만, 그러나 긍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고 보아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자원빈국인 한국은 인재강국이 아닌가.   

여기서 교육열과 성취욕이 커진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 이유를 유교문화와 과거제도에서 찾고 싶다. ‘논어’는 그 첫머리에서 학습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유교국가인 고려-조선왕조는 공부하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도록 정치 틀을 짜고, 벼슬길에 나가는 길을 시험제도로 열어놓았다. 그것이 과거제도이다. 억울하면 출세하고, 출세하고 싶으면 공부해야 한다는 인생철학이 한국인의 체질이 된 것이다.

한국인의 무서운 교육열과 독서열은 예부터 이웃 나라들을 감동시켰다. 고려 때 사신으로 온 송나라 사신 서긍은 개경의 거리마다 글 읽는 소리에 감동했다고 ‘고려도경’에 적었다. 세계에서 금속활자를 가장 먼저 만들고, 출판문화 선진국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이도 품질이 우수하여 중국인들의 애호를 받았다. 나라가 풍전등화 같았던 개화기에도 한국은 국력은 약하나 교육열과 독서열은 모범국으로 평가받았다.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범한 프랑스군은 가난한 농촌에도 책이 가득하여 자존심이 상했다는 보고를 한 바 있었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정한론’을 주장하면서도, 끄떡하면 칼을 들고 싸우는 일본인이 집집마다 글을 읽고 있는 조선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어떤 서양인은 중국을 ‘상인의 나라’, 일본을 ‘무사의 나라’로 표현하고, 한국을 ‘학자의 나라’로 기록했다. 모두가 서로 맥이 통하는 말들이다.

여기서 일본과 한국의 차이점을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유교를 국가에서 가르친 일이 없고, 과거제도도 없었다. 그래서 무사로 출세하지 못하는 보통사람들은 인생의 꿈을 생업에다 걸었다. 이것이 천하제일의 물건을 만드는 장인정신으로 전개되고 산업화를 앞당기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일본의 산업화가 우리보다 앞서게 된 것은 16세기 중엽부터 서양 여러 나라와 직접 교류한 지정학적 혜택이 크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한 가지 일을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장인기질은 발달했지만, 그 대신 문학, 역사, 철학, 자연과학, 예술 등을 폭넓게 익히는 교양수준에서는 우리의 선비들을 따르지 못했다. 그것은 유교를 배우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서 왜란 후 조선선비들이 통신사로 가면 일본사람들은 글 한수 받는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여기는 풍조가 생겼던 것이다. 엄청난 한류 붐이 일어났던 것이다.

장인기질을 무시하여 산업화에는 다소 불리하게 작용했던 유교문화 전통이 지식정보화사회로 나가는 미래에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풍부한 상상력이 경쟁력을 가지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 점에서는 유교문화의 우등생인 한국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교가 키워준 교육열까지 겸비하게 되었으니 우리의 미래는 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리 전통문화의 장점을 또 하나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생명과 평화와 백성에 대한 사랑이다. 모든 우주자연을 생명체로 보고, 생명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할 때 평화가 오고, 백성도 사랑하게 된다는 마음이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인(仁)은 바로 열매의 씨눈을 말한다. 씨눈에서 생명이 탄생하므로, 생명을 탄생시키는 마음이 바로 ‘인’이다. 이런 마음으로 우주자연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는데 어찌 평화가 오지 않겠는가. 이것이 우리의 선비정신이다.

피라미드나 앙코르 와트 같은 거대한 건축을 보고 기가 죽는 이들이 있으나, 선비들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폭군이나 하는 짓이다. 백성과 자연을 사랑하는 임금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자연을 파괴하고 백성을 부릴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런 건축문화가 없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오늘의 성공을 자축하면서 우리는 조상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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