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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과 친구하기 정보도 얻고, 문화도 즐기고 박미경

같은 곳이되 같은 곳이 아니다. 쉼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은 조금 전의 그 강물이 아니고, 계절 따라 변하는 저 나무는 얼마 전의 그 나무가 아니다. 도도한 한강이 앞뜰처럼 펼쳐져 있고, 우거진 나무들이 울타리처럼 건물을 감싸고 있는 곳. 한시도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자연의 품 안에서, 광진정보도서관은 날마다 흐르고 철마다 변한다. 다짜고짜 뺨을 간질이는 강바람과 코를 찔러오는 꽃향기. 단지 입구에 섰을 뿐인데도, 다리가 휘청거린다.

강물처럼 빛나는 배려
휘청거리게 하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독특하다고밖에 표현할 길 없는 이색 건축물이 낮이면 낮인 대로 밤이면 밤인 대로 방문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리로 덮인 건물 앞면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고, 독립된 두 채의 건물이던 도서관동과 문화동은 4층에 이르러 구름다리로 연결된다. 직선이면서 곡선이고 분리돼 있으면서 연결돼 있는, ‘철학적인’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유리창이 한강을 향해 나있어, 어느 공간 어느 각도에서도 강물이 보인다. 책을 읽다 문득, 자료를 보다 불현듯,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일. 이곳에서 무거운 마음이나 복잡한 생각 따위를 흘려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강물이 햇살로 빛나는 존재라면 광진정보도서관은 ‘배려’로 빛나는 공간이다. 그 가운데 으뜸은 별도로 마련된 어린이도서관. 그 중에서도 엄마들이 갓난아기를 데리고 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 아기열람실은 바닥마저 온돌이어서, 편하게 앉거나 누워야 하는 엄마와 아기들에게는 ‘또 하나의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유 수유공간이 딸려 있는 것은 기본이고, 책보기에 싫증이 난 어린이들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어린이 시청각코너도 곁에 있다. 점자도서와 음성도서는 물론 음성지원컴퓨터와 점자프린터까지 구비해놓은 장애인전용코너에도, 도서관 이용자들의 목과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 독서대까지 비치해둔 종합자료실에도, 체온처럼 따뜻한 배려가 숨쉰다. 

책보다는 영화를 보기 위해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문화동 지하에 마련된 160석 규모의 영화·음악감상실에 가면 개봉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영화들을 ‘영화관 같은 화면’으로 감상할 수 있다. 사이사이 전시회도 열린다. 벚꽃 흩날리는 지난 4월 광진정보도서관의 구름다리에서 열린 ‘세계의 아름다운 도서관 사진전’은 도서관 이용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전시다. 산책하듯 도서관에 온 주민들도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구름다리에서 세계의 아름다운 도서관을 감상하는 행운을 톡톡히 누리고 갔다. 옥상정원의 등나무그늘 아래서 함께 책을 읽는 일, 문화동의 영화감상실에서 나란히 영화를 보는 일, 4층의 구름다리에서 정답게 전시를 감상하는 일. 모든 것이 가능한 이곳이,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다. 

수혜자에서 친구로, 공공도서관을 넘어 교육공동체로
공공도서관이 주민들의 문화교양강좌를 맡기 시작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광진정보도서관에도 주민들이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교육문화 프로그램들이 당연히 있다. 동화 구연, 재미있는 영어동화, 책 만들기 교실, 원어민과 함께하는 영어 스토리텔링,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등이 그것.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교육문화 프로그램의 강사가 광진구 주민들이라는 점이다. 가령 광진구에서 활동하는 독서지도사가 어린이독서회를, 역시 구내에서 활동하는 구연동화지도사가 동화구연교실을 이끄는 식이다. 지역주민 가운데 그 분야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사람이 또 다른 주민에게 자신의 지식이나 재능을 나눠주는, 일종의 교육공동체인 셈. 자원봉사이기 때문에 강사료는 물론 없다. 나눔의 기쁨과 가르침의 행복. 그들이 받는 보수는 단지 그것뿐이다.

“부업으로 영어 과외지도를 하는데,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영어동화를 지도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내 아이의 영어지도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돼서 아들 또래의 아이들 8명을 데리고(아들을 포함해) 수업을 시작했죠. 내 아이의 영어실력도 많이 좋아졌고, 영어 과외지도를 할 때는 느낄 수 없던 보람도 생겼어요.” 3년째 영어독서클럽을 맡고 있는 송경아 씨. 보람 때문일까, 그의 목소리가 밝고 힘차다. 

도서관 서비스의 수혜자를 넘어 도서관 운영의 참여자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또 있다. 광진정보도서관의 운영과 활동을 돕는 ‘도서관친구들’. 설립 3년이 된 올해 600여 주민들이 활동하고 있는 이 모임은 광진정보도서관의 정열적인 자원봉사자그룹이자 든든한 경제후견 모임이다. 도서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지역주민들에게 알려 지역주민 모두가 도서관의 친구가 되도록 이끌고, 도서관 정책결정자들과 만나 도서관 발전을 위한 정책입안을 유도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활동이다. 

“광장중학교 학부모 17명이 학교도서관을 돕던 것이 이 일의 출발이었어요. 아이들이 졸업한 뒤에도 도서관 지원을 계속했는데, 어느 날 한 특강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도서관친구들’이란 주민모임이 지역도서관을 활발히 돕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광진도서관친구들’을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도서관친구들’인 만큼 다른 도서관에도 ‘도서관친구들’이 만들어지도록 돕는 인큐베이터 역할도 하고 있어요. 모든 도서관에 ‘도서관친구들’이 생기고 국민 모두가 도서관의 친구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활동해야죠.” 광진도서관친구들 여희숙 대표의 말이다. 작게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덧붙이는 그의 얼굴빛이 영락없는 소녀의 그것이다. ‘또 한 명의 소녀’ 김성은 대외협력팀장이 여희숙 대표의 말에 힘을 보탠다.

“처음엔 도서관이 단순히 책 빌리고 공부하는 곳인 줄 알았어요. 헌데 ‘도서관친구들’ 활동을 하면서 도서관이 그렇게 단순한 곳이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도서관을 잘 이용하면 사교육의 힘을 빌지 않고도 아이를 똑똑하게 키울 수 있고,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자기계발을 할 수 있더라고요. 도시에서는 좀처럼 맺기 힘든 주민들과의 유대도 도서관을 통해 쌓을 수 있고요. 도서관의 진정한 가치를 알수록 삶이 행복해진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가까이 두고도 그 가치를 몰랐던 ‘친구’가 우리에게 있다. 지금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 친구의 손을 잡을 일이다.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가 돼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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