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제1회 아산의학상 수상자 줄기세포 연구하는 세계적인 의학자 이용권

의사에게 수여하는 상은 참 많다. 보건의료계 발전에 공헌해서 받는 상부터 시작해서 우수한 연구결과를 보인 의학자에게 수여하는 상, 또는 의료봉사활동이 뛰어난 의사에게 주는 상 등 하나 하나 열거하면 수십 가지가 넘는다. 이중 의사에게 최고의 영예인 상은 의학적 역량을 인정받는 상이 아닐까 싶다. 이중 유난히 돋보이는 상이 있다. 제1회 아산의학상이 바로 그것. 이 상은 약을 처방하는 의사와 갑을 관계에 있는 제약사에서 선물하는 수많은 연구의학상과는 다르다. 순수 사회복지재단인 아산재단이 선정하는 학술상으로서 논문 제출 등의 응모도 없고 상금도 2억 원으로 국내 최대 액수를 자랑한다. 영광의 첫 수상자는 흔히 동맥경화증으로 알고 있는 죽상경화증의 세계적 권위자 김효수 서울대 교수다.

서울대병원 12층 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김효수 교수는 인터뷰 내내 의학자로서의 자신감과 넘치는 연구애를 드러냈다. 여유로움이랄까? 유난히 새하얀 피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얼굴의 김 교수에게서 연구자체를 즐거워하는 천재 의학자의 모습을 봤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15년간 죽상경화증 연구
김 교수의 연구실은 몇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방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의학서적에서 그의 연구의욕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 김효수 교수는 15년 이상을 죽상경화증 연구에 매진할 만큼 끈질긴 연구자다. 이번 아산의학상 수상도 죽상경화증 연구가 큰 도움이 됐다. 김 교수는 관상동맥 성형술 후 다시 혈관이 합쳐지는 원인을 밝혀냈으며, 소염진통제로서 관절염 치료에 주로 사용되는 성분 ‘셀레콕십(Celecoxib)’이 조직 증식을 억제해, 스텐트 시술 후 재협착률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를 얻어냈다. 이 연구는 곧 영국의 권위 있는 의학학술지 ‘란셋(Lancet)’에 게재됐으며, 김교수는 이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지난 2006년에는 약 3년간 급성 심근경색 환자에게 말초혈액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관상동맥 안으로 주입해 심장기능이 회복되는 효과를 얻었으며, 심근경색에 의한 심근소실 감소, 혈류 개선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는 순환기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서큘레이션(Circulation)’지에 게재됐다.

이 같은 성과로 인해 김 교수는 국제학계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해외학회에서는 수시로 김 교수에게 강연 요청을 해오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매달 해외학회로 강연을 나가기 바쁘다. 물론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현재 7년 전부터 진행해온 심근경색의 세포치료를 연구 중이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서 심근세포로 분화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말초 분화된 세포를 이용해서 배아줄기세포로 역분화를 추진 연구하고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죠. 성공만 되면 정말 꿈이 이루어지는 연구입니다.”

연구와 진료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처음에는 체력이 부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방사선 촬영 시에는 납으로 만든 옷을 입고 10시간 이상을 서있어야 하는데,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이 간다. 보통 납옷은 4∼5kg정도로 굉장히 무겁다.

“평소 달리기, 수영을 좋아해서 헬스클럽을 다녔는데 바쁘다 보니 3년 전부터는 못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1시간 정도는 꼭 3km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또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원칙을 실천함으로써 체력을 기른다. 김 교수의 연구실이 서울대병원 12층임을 감안하면 굉장한 운동이 되는 셈이다.

정부차원 연구지원 절실해
“아산의학상 수상은 동료교수, 후배, 박사과정 학생들의 뒷받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 역할은 단지 연구실 부원들을 하나로 모으고 이끌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아산의학상 수상은 연구원들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김 교수는 아산의학상으로 받은 상금 2억 원을 모두 연구에 활용키로 했다. 1억 원은 연구기자재 확충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선뜻 기부했으며, 나머지 1억 원은 좋은 연구 과제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연구가 활성화되려면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훌륭한 연구자가 필요하고, 두 번째는 공간이나 기자재가 있는 연구소가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시약, 소포품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연구비가 마련돼야 합니다.”

하지만 연구의 성과를 거두기도 전에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연구를 시작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김 교수도 처음에는 협소한 심혈관 연구실에서 시작했으며, 당시 연구원은 한두 명이 전부였다. 이후 괄목할 만한 연구결과가 나오자 지원이 들어와, 현재는 연구원만 30명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연구실을 갖추게 됐다.

김 교수는 기초과학자들을 비롯한 연구자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연구는 공장과 같습니다. 항상 쉴 새 없이 연구를 진행해야 하고, 연구를 멈추면 연구비가 사라지면서 연구실을 꾸려갈 수가 없게 됩니다. 정부를 비롯한 각 단체의 연구자들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지원이 시급합니다.”

김 교수의 연구실은 현재 트렌드와 맞는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는 탓에 지원프로젝트가 간간히 있지만, 정부의 연구 경향과 맞지 않는 기초과학자들은 지원이 전무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정부의 연구지원이 연구경쟁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지만 과학, 의료 등 기초가 되는 학문은 연구비 예산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예산지원 과정과 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정부에서 연구비를 집행하는 공무원들 자체가 연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지원 자체도 드물지만 한번 지원하면, 연구 과정 중에 수시로 연구진행사항을 요구해 제대로 된 연구를 진행하는데 방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진료와 연구를 동시에 하는 행운
연구로도 유명하지만 김효수 교수는 순환기내과에서 진료를 보는 임상의사다. 심장에 이상이 있는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응급실로 뛰어간다. 수술시간이 짧으면 30분에도 끝나지만, 길 경우는 3시간이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대병원의 진료실과 수술실에서 환자들을 대하고, 시간이 남으면 임상의학연구소에서 연구에 몰두한다. 그는 이 같은 바쁨을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 교수는 “임상에서 진료하고, 기초연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연구자는 앞으로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며 “전문성을 갖춘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우수한 의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열악한 연구 환경에서 연구하는 후학자들에게 강조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이 분야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습니다. 실험을 10번 하면 1번의 성공도 얻기 힘들만큼 항상 고난의 길이죠. 그렇지만 생명과학이라는 학문자체가 인간의 질환을 극복하고 생명을 연장한다는 보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힘들고 실망스럽더라도 즐기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실험에 임한다면 모두 아산의학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효수 교수와 같은 열정을 가진 의학자들이 있기에 머지않아 현대의 불치병들이 하나둘씩 완치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이미지 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