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친구들 안내견 훈련사 황명화 씨와 큰별이 이야기 이선희



사람의 동반자요, 친구인 개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아프다고 내버리는 사람들을 황씨는 이해할 수 없다. 퍼피워커 중에도 가끔 파양을 해 잠시 맡아 키우는 경우가 있다. 믿었던 주인에게 버림을 받은 것을 느끼면 개들은 잔뜩 주눅이 들고 퇴행현상을 보이기까지 한다. 큰별이를 자신이 기르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란다.

시각장애인의 눈 역할을 하는 안내견 견습생으로 탄생한 개 큰별이! 사람을 따르고 일을 유난히 좋아하는, 수영에는 일가견이 있는 암컷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그러나 다섯 살배기 큰별이는 자신이 숙명처럼 알고 익혀왔던 일들을 할 수가 없다. 유전으로 물려받은 고관절이형증과 특발성 발작으로 인해 안내견 시험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발작으로 인한 뇌손상으로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위기까지 겪었다.

그러나 큰별이는, 생후 7주된 강아지들을 데려와 정식 안내견이 될 때까지 훈련시키는 자원봉사자 퍼피워커로 그를 키워준 작가 황명화 씨(39)의 특별한 사랑으로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개로서 거듭났다. 자신의 사이트(www.bigstar2.com)를 갖고 있으며 지난 해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사랑해 큰별아>라는 책도 출간되었다. 주위의 많은 팬들이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아파하는 사연에 때로는 눈물을 흘려준다.

큰별이가 엄마요, 누이인 황명화 씨와 함께 둥지를 새롭게 튼 곳은 골프장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경기도 수지의 한 아파트다. 공동주택에 살던 황씨가 안내견이 되지 못한 큰별이를 배려해 이사한 이 곳에서 큰별이는 황명화 씨의 반려견으로 생활하고 있다. 집에 들어서자 크림빛 털에 까만 눈동자를 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문 앞에서 반기며 꼬리를 흔들어댄다.

“멀쩡해 보이죠? 하지만 언제 발작이 일어날지 몰라 항경련제를 정기 복용시키고 있어요. 약 부작용 때문인지 식탐이 대단하네요. 안 돼! 큰별아! 손님들 과자까지 탐내면 안 되지.”

테이블 위에 차린 과자를 탐내며 냄새 맡는 큰별이에게 황명화 씨가 주의를 주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은지 개 사료로 만든 과자 통을 들고 온다. 안내견 훈련 때에는 물과 사료만 먹여 과자를 보아도 달려들지 않았는데 애완견이 되더니 버릇이 없어졌단다.

“안내견에게는 물과 사료만 주고 케이지에서 재워야 해요. 또 공놀이도 하지 않지요.” 사료만 주는 이유는 사람 먹는 것에 길들이면 자꾸 음식을 달라고 하거나 어린아이가 들고 있는 먹을 것을 따라가게 돼 시각장애인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어릴 때부터 사료만 주면 다른 먹을거리는 사람만 먹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공놀이 등은 공에 집착이 생길까봐, 케이지에 재우는 이유는 시각장애인의 생활에 불편함을 끼치거나 이물질들을 잘못 삼키는 일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또 보행훈련이 제대로 될 때까지는 함부로 뛰어노는 것도 안 된다고 하니 안내견은 개로서의 작은 즐거움들을 무수히 포기해야 하는 과정인 것 같다.

황씨는 자신이 키운 개가 안내견 역할을 하게 되면 얼마나 보람될까 생각해 퍼피워커가 되었는데, 맡아 키웠던 큰별이와 망고가 모두 안내견이 되지 못했다며 못내 서운해 한다. 큰별이는 병 때문에, 망고는 훈련사에 대한 지나친 애착 때문에 안내견이 되지 못했다. 분양된 안내견 후보생 10마리 가운데 안내견이 되는 비율은 20~50% 정도란다.

안내견 훈련과정은 다양하다. 사람의 왼쪽 옆에 붙어서 얌전하게 걷는 각측 보행, 버스나 지하철 횡단보도 계단 엘리베이터 등에서 동반자를 배려하며 보행에 맞춰 걷는 연습 등. ‘안내견 공부중입니다’라는 빨간 조끼를 입은 개들은 어디나 동행할 수 있도록 법적 보장(장애인 보조견 편의시설 접근권)이 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안내견이 처음 배출된 것은 1994년. 삼성화재가 사회공헌사업의 하나로 번식 분양 훈련까지 책임지는 안내견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창조’라는 이름의 안내견은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 씨와 청와대 영빈관에까지 가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21 세기를 이끌어갈 우수 인재상’을 받게 된 김씨가 안내견과 함께 못가면 상을 포기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란다.


“창조는 정말 특별한 안내견이었죠. 명령을 내려도 위험한 순간이라는 판단이 서면 절대 복종하지 않는, 선의의 불복종도 할 줄 아는…. 창조가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간 적이 한 번 있었는데 쏜살같이 달려오는 택시를 못 보고 건너려는 저를 막아서서 생명을 구해줬지요. 정말 감동이었어요. 안내견들은 이렇게 시각장애인들의 보디가드 역할까지 맡는답니다.”

사람의 동반자요, 친구인 개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아프다고 내버리는 사람들을 황씨는 이해할 수 없다. 퍼피워커 중에도 가끔 파양을 해 잠시 맡아 키우는(보딩) 경우가 있다. 믿었던 주인에게 버림을 받은 것을 느끼면 개들은 잔뜩 주눅이 들고 퇴행현상을 보이기까지 한다. 큰별이를 자신이 기르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란다.

“약도 사 먹여야 되고 진찰료도 많이 드는 큰별이를 누가 일반분양하겠어요. 어떤 분들은 몸값보다 더 많은 값을 앞으로 지불해야 되는데 차라리 안락사 시키라고 하지만…. 큰별이는 제 가족이에요. 가족이 아픈데 제가 책임져야지 어쩌겠어요.”

다행히 큰별이는 안내견 학교의 도움으로 MRI 등 고가의 검진과 항경련제 등 약값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이런 지원이 없었더라도 황씨는 큰별이를 위해 모든 일을 했을 것이다. “발작이 일어나면 기도가 막히지 않게 말려들어가는 혀를 잡아줘야 해요. 그런데 얘가 아픈 중에도 나를 세게 물지 않으려고 배려를 해요. 정말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지난 해 7월, 11개월 만에 재발된 발작은 하루에 31번이나 이어졌다. 진정제를 투여해도 멈추지 않아 황씨를 놀라게 했던 큰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집 안팎을 활보하고 다닌다. 발작이 또 언제 일어날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중에도 황씨는 큰별이가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힘든 발작을 이겨낸 큰별이를 위해서 만 4세가 되던 지난 1월 11일에는 큰별이를 사랑하는 팬 7명과 생일잔치를 근사하게 치러주기도 했다. 큰별이가 좀 괜찮아지면 안내견을 키우는 일에 다시금 도전해 시각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그의 소망이다.

자신의 아이도 버리는 이 세상에서 아픈 개 한 마리를 극진히 보듬어 돌보는 황명화 씨. “한 생명을 곁에 두고 머무르게 한다는 것은 눈요깃거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겠다는 묵언의 맹세가 따르는 일 아닌가요?” 라는 그의 말이 둔중한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