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향기를 찾아서 봄 삽화 한 장 함민복



며칠 해무가 자욱했습니다. 바다 마을에 봄은 안개로부터 옵니다. 오랜만에 안개가 걷혀 바닷가 가는 길로 나섭니다.

“무슨 일 있어? 웬 봉화를 올려.”
“무슨 일이 아니라 이제, 일만 남았시다.”
“난 또 봄이 왔다고 어디로 봉화 올리는 줄 알았네.”

밭에서 고추대궁 태우는 마을 동생에게 멀리서 말을 건넵니다. 우리 고향에서는 한 겨울 눈 쌓였을 때 너구리굴에 고추대궁 불을 피웠는데….

“옛날에 목선 부리던 뱃사람들은 배 밑에다 고추대궁 불을 피웠다지 아느껴. 구적, 따개비도 못 앉게 하고 배도 소독할 겸…. 아이, 이리 와 묵은 고추 터지는 소리 좀 들어보시겨. 경쾌하지 아느꺄?”
“이 사람이, 노총각인 나야 고추 터지는 소리 들으면 슬퍼지지 뭔 소리여.”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됫시다. 와 저것 좀 보시겨.”

매콤한 연기 맡으며 고추밭을 걷습니다.

“뭘 보라고?”
“나뭇가지 물었짜느껴. 까치가 집을 보수하니까 저 은행나무 다시 살아나지 않겠스꺄.”
그러게, 까치는 영리해 봄에 어떻게 알고 여름 태풍에 스러질 나무에는 집을 짓지도 않는다지….

나무 삭정이 나르는 까치를 한참 지켜보다 다시 바닷길로 접어듭니다.

바닷가 제방에 올라서니 멀리 있는 섬들이 가까이 보입니다. 신도, 시도, 모도, 장봉도. 몇 년 전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편지가 한 장 왔습니다. 장봉도가 고향인 할아버지가 제 산문집을 구해 보셨는데 강화도 사투리에 고향 생각이 나 편지를 쓰셨답니다. 할아버지는 신장이 안 좋아 투병 중인데 고향 소식도 물어보고 싶다고 하시며 컴퓨터 통신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오셨습니다. 그때는 컴퓨터도 없을 때라…. 그 할아버지는 몸이 좋아져 고향에 다녀갔는지 궁금합니다. 고향에 봄을 누가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모시조개 캐는 아낙들 머리 위로 나는 갈매기 울음소리에서도 그리움이 배어나오는 봄입니다.